대통령이 세월호 주인도 아닌데 왜 난리냐고?

[주장] 대통령 만나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건 '권리'다

등록 2014.05.12 13:37수정 2014.05.12 14:55
24
원고료로 응원
a

꿈에서라도 만났으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입구에서 밤샘 노숙을 한 가운데 9일 새벽 아들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한 부모가 잠들어 있다. ⓒ 권우성


"대통령이 세월호 주인인가? 왜 유가족은 청와대에 가서 시위하나?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쌩 난리 친다. 이래서 미개인이란 욕을 먹는 거다." - 김호월 홍익대 광고홍보대학원 겸임교수

"세월호 침몰 사건 때문에 대통령과 정부가 아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무슨 큰 사건만 나면 우선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다른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이 가서 수색하겠다는데도 소리지르고 욕하고 국무총리에게 물세례한다.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하다. 대통령만 신적인 존재가 돼서 국민의 모든 니즈(요구)를 충족시키길 기대하는 게 말이 안 된다. 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된다.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 - 정몽준 의원의 막내아들

"바른 소리 했다고 격려해주시고 위로를 해주시기는 하는데, 시기가 안 좋았다. 어린 아이다 보니까 말 선택이 좀 안 좋았던 것 같다." - 정몽준 의원 부인 김영명씨.

"반드시 승리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내고 새누리당의 승리를 이끌겠다." - 남경필 새누리당 경기지사 후보

"찬바람 속 언 발 동동거리며 만든 박 대통령을 지킵시다!" - 김황식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진짜 몰라서' 굳어진 날소리들의 철옹성


a

조화 대신 이름표만... 지난 4월 2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안쪽 벽에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표가 내걸려 있는 모습. 이날 오전 박 대통령이 조문하는 과정에서 유족들의 항의로 박 대통령의 조화가 영결식장 밖으로 쫒겨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 권우성


저마다 나이, 신분, 배운 게 다르지만 발언의 본질은 같다. '왜 세월호 참사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을 탓하느냐'는 안타까움이요, 억울함이다. "그럼 박근혜 대통령이 배를 뒤집기라도 했다는 말이냐"라는 날소리와도 실로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한 무리의 인간들이 떼로 뱉어내는 이런 소리들은 어쩌면 "시체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는가? 세월호 참사는 ('무능한 박근혜 퇴진'과 아울러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봉기를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 "드디어 북한에서 선동의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입니다"라는 일부 극우인사들의 독기 가득한 돌출발언들보다 훨씬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

걸핏하면 북한을 끌어들이려는 계산된 발언이 아니라 '진짜 몰라서' 굳어진 철옹성같은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옛날 임금들은 인재(人災)가 아니라 가뭄 같은 천재(天災)가 들어도 자신의 책임이라며 근신했다"는 실록 차원의 역사 이야기는 씨도 안 먹힐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대한민국 헌법을 꺼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제10조)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5조 제⑥항)라는 조항을 읽어줘도 별 반응이 없을 것이다.

더불어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제7조 제①항)는 헌법에 따라 '공무원의 수장'인 대통령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을 해도 설득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이들에게 임금의 근신과 자책은 임금이 곧 국가였던 전제시대의 고리타분한 비과학적(미개한!) 관습일 뿐이다. 헌법에서 유추되는 대통령의 책임이란 다만 선언적인 의미일 뿐이다.

세월호에 사람과 짐을 규정 이상으로 실었으면 선박회사 현장 직원들이나 그걸 관리감독하는 공무원, 경찰의 책임이다. 배가 침몰할 때까지 관련 문제를 몰랐으면 해경 등 공무원의 근무 태만이다. 

대통령을 '방어'하는 이들에 따르면, 가라앉는 배에 사람들을 그대로 방치한 것은 선장의 '살인 행위'다. 승객을 재빨리 구조하지 못한 것은 현장의 해경과 해군의 능력 부족이지, 어찌 대통령의 잘못인가라고 한다. 더 위로 올라가더라도 선박회사 임직원들과 그 소유주, 해경과 해운항만청 간부들의 관리감독 책임이지, 해당 장관들도 이번 사건에서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다. 이것이 이들의 논리구조다.

a

청와대 앞 띄워진 노란 종이배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전날 밤부터 길거리에 앉아 항의하던 곳에 노란 종이배들이 놓여 있다. ⓒ 이희훈


요약하면, 자본의 탐욕이 사고를 만들었고 관료의 무능과 무책임이 사태를 악화시켰는데 왜 대통령을 붙들고 늘어지느냐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자본의 탐욕과 관료의 무능·무책임)에서 유족과 시민들이 '대통령의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센 이들은 자본가와 관료집단이다. 일반 국민들은 일상적으로 이 두 계급에게 지배당하고 산다. 더구나 이 두 계급은 점점 더 자신의 권한과 이익을 강화하려 한다. 국민이 이 두 지배계급의 횡포를 제어하고 헌법상의 의무(자본가에게는 119조 2항, 관료에게는 제7조 제1항)를 강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투표(정치)뿐이다. 

민주국가에서 투표는 국민이 가진 유일한 힘이다. 국민이 투표로 대통령, 국회의원 등을 뽑고 권력을 준 건, 자본가와 관료에 맞서 국민의 이익을 지켜내라를 것이지, 그들과 한패가 되라는 뜻은 아니다. 

누가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생난리를 치나

a

세월호 유가족 '박 대통령 면담 빨간불'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 옆으로 세워진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져 있다. ⓒ 이희훈


그래서 세월호 참사 관련 가족들은 박 대통령을 호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식이 탄 배가 눈앞에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는데, 제복입은 자들은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참담한 현실. 실종자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믿고 기대고 싶었던 것은 가장 힘 센 정치인,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아니었겠나. 대통령이 발벗고 나서서 막강한 관료 조직을 총동원해 '내 자식을 당장 살려내라'는 절실한 요구인 것이다. 그 이후 책임질 이들에게는 철저히 책임을 묻고, 확실한 재발방지책을 세워 달라는 요구,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하지만 가족들은 박 대통령에게서 더 큰 차원의 무지·무능·무책임을 발견했을 뿐이다. 가족들이 보기에 대통령은 시혜 차원의 '위로 퍼포먼스'를 위해 진도에 내려왔을 뿐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일말의 책임 의식조차 없었다. 이것은 그 이후 팽목항, 안산분향소, 청와대 앞길에서 거듭 확인됐다.

국민이 대통령을 부르는 건 무리한 것도, 불경스런 일도 아니다. 권리다. 역으로, 국민의 부름에 성실하게 응하는 건 대통령의 당연한 의무다. 대통령은 결코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을 호출하려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 마치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생난리를" 치는 것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국민의 권리와 대통령의 의무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정작 '생난리'의 주인공은 대통령과 그를 바라만보는 국회의원과 장관들이다.
#세월호참사 #김호월 #정몽준 #박근혜
댓글2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4. 4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5. 5 김종인 "윤 대통령 경제에 문외한...민생 파탄나면 정권은 붕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