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너무나도 낯선 '청송'

주왕산의 계절은 이미 깊어가고 있다

등록 2014.05.14 09:36수정 2014.05.1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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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너무나도 낯선 '청송'
그러나 주산지의 풍경은 무척 낯익었다. 솔솔 산책로를 따라 푸르른 생명이 기운을 토해내고 있었고, 저수지 안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고목은 투명한 잎사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 고향 충청도 금산에서 어릴 적 보았던 광경들이 이질적이지 않은 자태로 내게 다가왔다. 반가웠다. 자연은 여전히 인간들에게 감성을 끌어내 주는 고귀한 선생이다.

청송이란 곳은 나에게 너무도 낯선 곳이었다. 청송 사과나 주왕산으로 유명하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워낙 생소한 곳이라 선뜻 발길을 돌리지 못한 곳이다.

경북이란 지역적 이유도 있지만 지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고, 특별한 일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그랬다. 영화에도 나왔던 곳인데 맘 속엔 항상 '가 보고 싶다'만 되뇌었을 뿐이다. 드디어 연휴에 시간을 내어 '청송'이란 곳을 다녀오기로 했다. 주산지를 목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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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자락에 자리한 주산지 조선시대 만든 인공저수지로서 작지만 한번도 물이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한다. ⓒ 김승한


주산지란?
주산지는 조선 숙종 1720년에 시작하여 경종 원년인 1721년 완공된 인공저수지이다.

길이 100미터, 너비 50미터, 수심 8미터인 결코 크지 아니한 주산지. 완공 이후 한 번도 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리고 다양한 야생물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천연기념물인 수달, 솔부엉이, 소쩍새, 원앙을 비롯하여 고라니, 너구리, 노루 등이 서식하며, 나무로는 참나무와 소나무를 비롯하여 수령 100년이 넘는 왕버들군이 신비롭게 서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한다.

주산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지 아니한 인간의 심성이다. 인공저수지가 만들어낸 자연스런 자태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산책로를 지키며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됨을 가르쳐 주는 듯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인간됨의 본성일진대 주산지의 생명은 작은 것에서부터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걷다보면 풍기는 녹음의 향취, 취할 듯 한 물 냄새, 솔 향과 각종 나무 군락들이 보여주는 자태는 물위에서도 그대로 비쳐 내가 여기 있음을 잊게 만든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주산지, 인간 최고의 선택

주왕산 자체가 그리 크지 않고, 과거 화산활동으로 인해 화성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이기에 기암단애를 비롯한 절경이 두루두루 펼쳐져 있다. 아담하고 바위가 많고 물이 풍부한 주왕산! 내게 좋은 추억거리를 또 하나 던져 주었다.


대전에서 출발하여 구미를 지나 군위군, 의성군 고개를 넘어 청송의 상징인 사과 모형물이 있는 청송 입구를 지나 주왕산으로 접어들었다. 연휴와 석탄일이 겹쳐 있어 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산을 보러 왔지 사람을 보러 온 건 아니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걸으며 나름 아이들과 재미난 시간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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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전경 과거 화산왈동으로 생성된 주왕산의 대표 명물 기암절애!! ⓒ 김승한


주왕산은 경북 청송에 위치해 있으며, 태백산맥의 지맥으로써 해발 720미터의 아름답고 친근감이 감도는 산이다.

1976년 3월 30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석병산, 대둔산, 주방산이라고도 불린다. 연화봉, 시루봉, 향로봉, 관음봉, 나한봉, 옥녀봉 등의 신봉과 주왕굴, 연화굴 등의 굴. 용추, 절구, 용연폭포, 주산지, 절골 계곡, 내원계곡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늑함과 평온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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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의 계곡과 산책로 주왕산의 계곡은 물이 맑고 또한 많으며, 오를 수록 더한 것 같다. 계곡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역시 넓고 완만하여 오르기 쉽고, 특히 오솔길을 따라 이어지는 바위들의 행렬은 학술적으로도 가치있는 페퍼라이트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 김승한


주왕산을 오르며 특이하게 보았던 것은 여타 다른 산에 비해 물이 많다는 것이다. 계곡마다 넓은 개울을 갖고 있으며 물이 가득 차 있다. 좁은 길을 따라 난 물줄기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산에 나무들이 건강하니 물을 많이 머금고 있다가 다시 산에다 물을 주고 있나 보다. 그래서 일까? 산을 오르는 내내 양쪽에 서 있는 나무나 풀은 유난히 푸르렀으며 그 내음이  진하게 퍼지고 있었다.

또 하나, 주왕산의 바위가 만들어낸 '페퍼라이트!'

페퍼라이트란 용암과 바다의 퇴적물, 혹은 아직 단단히 굳지 않은 퇴적물과 마그마가 뒤섞이며 급격하게 식을 때 생긴 암석이다. 마치 후추를 뿌린 것과 같은 모양이라 해서 지은 이름인데, 주왕산 일대에서 만날 수 있는 페퍼라이트는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것과 달리 한 지역에서 다양한 페퍼라이트가 산출되기 때문에 페퍼라이트 형성과정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대전사

주왕산 입구에 자리 잡은 대전사는 조계종 은해사의 말사라고 한다

창건은 672년 신라 문무왕 의상스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892년 신라 진성여왕때 남공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후에 919년 고려 태조 눌옹이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당우가 소실되었고, 1672년 현종 13년에 중건하였다한다.

사찰의 규모가 작아서 인지 다른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웅보전이라든가 미륵전, 일주문, 천왕문 등은 없었고 관음전과 보광전, 명부전, 삼신각 정도만 볼 수 있었다. 보광전은 개증축을 하느라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석탄일을 하루 앞둔 터라 많은 연등이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고 관람객들 또한 이들과 어울려 때 아닌 가을 단풍을 보는 것만 같았다. 통도사나 금산사, 월정사 같은 큰 사찰이 아니어서 아늑하고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 한결 여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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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대전사 왼쪽 명부전, 오른쪽 관음전... 여느 절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 김승한


주왕산은 진나라의 주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이름이 주왕산이라 불렸다는 데 그 유래는 분명치 않다. 혹자는 신라 무열왕의 16대 손인 김주원이 왕으로 추대되었지만 왕으로 등극하지 이곳으로 몸을 피하게 되어 주왕산으로 명명되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또 근방의 백성들이 전쟁이나 민란이 있을 때마다 이곳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산은 바다와 달리 생물들을 품어내는 곳이다. 한낮의 뜨거움과 매서운 바람을 온 몸으로 견디며, 밤새 올빼미가 울어대고 새벽이 되어 햇살이 비출 때까지 많은 생명들을 잉태하며 보호하는 자연의 품속이다.

인간들이 삶에 회의를 느껴 찾는 곳도 산이요, 즐거움을 갖기 위해 찾는 곳도 산이다. 삶의 아픔과 상처를 피해 발걸음을 옮기는 곳도 산이다.

이처럼 주왕산은 인간을 포용하는 산이다. 지리산처럼 산과 구름을 거슬러 거대한 산맥을 만들지도 않았고, 치악산이나 월악산처럼 우뚝 솟아 관광객들의 모험심을 자극하지도 않고, 오직 자연의 풍광을 즐기고 혹은 자연을 거스르는 사람을 피해 몸을 낮추는 이들을 받아주는 이곳이 바로 주왕산이다.
#주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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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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