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골탑으로 쌓은 월드컵 경기장, 8년 후엔?

"카타르 월드컵 건설 현장, 최소 4천명 사망할 것"... 카팔라 시스템이 문제

등록 2014.05.27 14:04수정 2014.05.2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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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23명의 최종 명단을 확정짓고 소집훈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면, 세월이 참 무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퍼하는 가운데도 세계인의 축제라는 브라질 월드컵 개막일(6월 13일)이 무심한 듯 어느새 한 달 앞으로 다가왔으니 하는 말이다.

한편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은 개막 일정이 코앞인데도 아직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경기장 건설과 곳곳에서 열리는 월드컵 반대 시위 등으로 인한 불안한 치안 문제로 우려를 낳고 있단다.

개막을 목전에 두고도 경기장 건설이 지지부진하다는 브라질 월드컵 소식을 들으며 어이없어 하는 이들도 있겠다. 하지만, 국제이주인권단체 등을 통해 들려오는 8년 뒤에 개최될 카타르 월드컵 건설 현장 소식에 비하면, 오히려 들어줄 만하다.

걸프협력회의, GDP 4만 달러에도 선진국 소리 못 듣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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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자료사진). ⓒ sxc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ncil)는 걸프만 연안의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바레인 6개국이 정치적 불안을 해소하고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결성한 지역협력기구다. 2010년 12월 아랍의 봄 이후, 카타르가 GCC 내에서 일정 부분 배제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구성만 놓고 보면 원유를 기반으로 1인당 국내 총생산(GDP) 평균이 4만 달러를 넘는 중동 부국들의 협의체이다.

영토는 우리나라의 26배에 해당하지만, 인구는 적어서 2013년 말 기준으로 4700만으로 우리나라보다 적다. GCC는 2008년도에 3900만이던 인구가 2013년도에 4700만이 됐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인구 증가가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 주요인은 본토인의 출산 증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주노동자의 증가에 기인하고 있다.

최근 국제축구연맹 FIFA나 국제노동조합연맹(ITUC) 등은 202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유치한 카타르 건설현장에서의 높은 이주노동자 사망률과 사고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GCC 국가들은 산유부국으로 1인당 GDP가 4만 달러가 넘지만, 선진국이라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제도적으로나 관습적으로 너무나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GCC에서의 이주노동자 현황

GCC에서는 대체로 일반 인구와 노동인구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발표하는데, 2008년 말 GCC 전체 인구가 3900만이었을 때, 본국인은 2300만 명인 반면, 이주노동자는 1600만 명이었다. 당시 사우디와 오만은 전체 인구에서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지 않았지만, 카타르나 UAE 등은 이주노동자가 전체 인구의 80%를 이미 넘고 있었다.

당시 전체 인구 중 노동인구가 고작 1650만 명이었으니까, 이주노동자가 인력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임을 알 수 있다. 사우디의 경우 이주노동자가 전체 인구의 30%가 안 되었지만, 노동인구만 놓고 보면 GCC 전체 노동시장의 1/2이 넘는 850만 명이었다. 그 중 이주노동자가 50%를 넘었다. 같은 시기 카타르 같은 경우는 120만 명, 즉 노동력의 95%를 이주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2008년도에 비할 때, 지금은 GCC 국가에서 이주노동자 의존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184만 명 이상의 가사 이주노동자가 일반 가정에서 가사노동 외에 보육과 탁아업무 등의 부모 역할까지 맡고 있어서 이주노동자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가 걸프협력회의 국가들이다.

이 정도 규모의 인구와 인력이면, 체류하고 있는 국가나 사회에서 영향력도 충분히 있을 법하지만, GCC 국가 내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중동 지역 특유의 고용제도인 카팔라 시스템으로 인해 거의 노예 수준의 처우를 받고 있다. 숱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데도 GCC 국가 정부는 다들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인권침해의 원인, 카팔라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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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 제도인 카팔라 철폐 폐지를 위한 캠페인 중동지역의 대표적 인권침해 제도인 카팔라 철폐 폐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migrants right의 캠페인 자료 ⓒ 고기복


중동지역에서의 이주노동자 송출사업은 '신원 보증인 제도'라고 하는 카팔라 시스템과 연관이 깊다. 카팔라 시스템에서 고용주와 이주노동자를 연결 짓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송출국과 송입국 양쪽에서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방법으로 매해 5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얻는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이는 직접적인 금전 착취에 한해서 하는 말이다. 중동지역 외국인력시장은 가사노동자를 비롯하여 주로 건설노동자 등의 비숙련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는 착취구조를 만들고 있다.

카팔라 시스템에선 이주노동자가 사우디에서 일하려면, 반드시 사우디 국적자인 신원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고용주가 신원 보증인을 자처한다. 신원 보증인의 동의하에 입국하면 신원 보증인의 동의 없이는 사업장을 변경할 수도 없고, 심지어는 출국조차 할 수 없다.

고용주는 이주노동자가 입국하면 곧바로 여권을 압류하고, 근로계약을 임의로 변경해 버린다. 게다가 돈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출국에 앞서 송출비용으로 적게는 석 달, 많게는 반 년 정도의 급여를 신원 보증인으로부터 받아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한다. 즉, 고용주들이 이주노동자를 대신하여 송출업자들에게 일정량의 돈을 선지불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입국하자마자 고용주에게 빚을 진 신세가 된다.

게다가 중동의 배타적인 인종주의에 따라 같은 미숙련 일을 하고도, 남자의 경우 외국인은 본토인보다 215%를 덜 받고, 여자인 경우에는 본토인보다 145%를 덜 받는다. 이런 사회적 관습 속에서 카팔라 시스템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더욱 고약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매매 피해 여성이나 인신매매의 덫에 빠진 피해자들을 보면, 선불금이라는 명목으로 차용한 돈이 이자에 이자가 붙고, 결국 현대판 노비문서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카팔라 시스템 피해자들도 유사하다.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을 선불금을 주고 데려온 노예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주가 계약조건을 지키지 않거나 속여도 달리 벗어날 방도가 없다. 여권도 없고, 문서로 작성된 계약에 의해 빚까지 진 입장에서는, 카팔라 시스템에 저항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는 없다. 그래서 GCC 국가에서 카팔라 시스템에 희생 당한 이주노동자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인권침해 피해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무슬림들은 성전이라고 하는 '지하드' 외에는 자살을 범죄행위로 치부한다. 때문에 많은 중동 국가들은 자살 관련 통계를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레인과 오만의 경우 이주노동자의 자살에 대한 최근 통계가 있다.

바레인은 2013년 한 해 동안 최소 60명의 이주노동자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만은 362만 명의 인구 중에 이주노동자가 145만 명으로 이주노동자 비율이 사우디보다는 높고, 카타르나 UAE, 쿠웨이트 등보다는 낮은 수준인데, 매 6일마다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자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에는 인도 출신 이주노동자가 1/4분기에만 25명이 자살할 정도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비극적이었다.

자살이 아니더라도 GCC 내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인권상황을 알 수 있는 지표들이 있다.

네팔의 경우 본국에 체류하고 있는 인구의 10%에 가까운 270만 명이 GCC 국가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GCC 국가 중 쿠웨이트만 보더라도, 2010년에 347명, 2011년에 902명, 2012년 812명, 2013년 4월까지 186명, 총 2247명의 가사 이주노동자가 구조를 요청해 네팔로 송환됐다.

이들이 구조를 요청한 이유는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근로계약 외의 강제노동,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 지연, 상습적인 폭력과 성폭행 등의 학대, 격리와 여권압류 등의 문제 때문이었다. 쿠웨이트 사회노동부는 2007년도에 1만4840명의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임금체불과 수당 미지급 등의 이유로 민원을 받았다. 민원을 제기하지 못한 이주노동자가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은 카팔라 시스템에서 묻지 않아도 자명하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가사노동부에서 운영하는 민원센터에 매일 30~50명의 여성 이주노동자가 학대를 피해 도망쳐 오거나, 신원 보증인 문제로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아울러 매달 평균 30명이 넘는 네팔 출신 가사 이주노동자가 고용주의 학대와 강제노동을 피해 네팔 대사관에 구조 요청을 하여 대사관의 도움으로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지난 2년 동안 탈출을 희망하다 부당하게 사우디 감옥에 갇힌 네팔 이주노동자가 대사관에 의해 구조된 수만 1만3000명이 넘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09년도에만 5만6000명의 이주노동자가 사우디의 신원 보증인, 즉 고용주로부터 탈출해 도움을 요청했다.

탈출만이 고용주의 학대와 강제노동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이주노동자들은 탈출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기도 하고, 태형과 같은 형벌이나 벌금형을 받기도 한다. 참고 견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다. 카타르 월드컵 건설현장에서의 잦은 사망·사건 사고는 그 비참함의 끝인 경우다.

카타르 월드컵 건설 현장에서 빈번한 사망 사고

국제노동연맹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최소 4000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타르가 2010년 12월 월드컵을 유치한 이후, 이미 1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2012년에는 276명, 2013년엔 151명의 네팔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인도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매월 평균 20명씩 죽어나간다고 인도 대사관이 밝였다. 인도대사관이 지난 2월 공개한 사망자 수에 의하면, 2010년부터 지난 2월까지 750명이 죽었다. 가히 죽음의 월드컵이요, 인골탑으로 쌓는 월드컵 경기장이라고 할 만하다. 숱한 죽음으로 만든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그 모습을 보며 전 세계가 열광한다는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한편 카타르 정부는 지난 15일자로 카팔라 시스템에 의한 보증인 제도와 사업장 이동 제한 등에 대한 철폐가 포함된 노동법 개정을 단행했다. 이같은 조처에도 카타르 내 인권단체들은 카팔라 시스템 철폐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칭찬만 받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이주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죽어가는 데도 카타르 당국이나 주재국 대사관, 건설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기업들은 그러한 사망을 '통상적 수준, 있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문명한 국가에서 수백 명이 죽어나가는 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치부되는 상식 밖의 현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현실 가운데에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한 몫 하고 있다.

열사병을 유발할 정도의 고온다습한 날씨와 열악한 근무환경, 점심시간도 없이 하루 12시간을 넘게 일하면서도 휴식을 취할 공간마저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다 유명을 달리한 이주노동자들은 15세에서 44세 사이의 건장한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죽음을 통상적 수준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국가와 그 죽음을 사실상 방조해 왔던 기업에겐 소망이 없다. 인권이라는 이름의 꽃이 필 수도 없고, 훈훈한 인류애를 기대할 수도 없다. 결국 세계 각국의 감시와 비판만이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 #월드컵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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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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