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독 시험, 커닝 유혹 느꼈지만..."

여수석유화학고, 무감독 시험 실시... "양심과 정직 가르치는 게 더 중요"

등록 2014.05.15 17:46수정 2014.05.1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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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독시험으로 중간고사를 보기 전 학부모 연서로 '양심선언서'를 낭독하는 학생들 ⓒ 오문수


국내 유일의 석유화학 마이스터고인 여수석유화학고등학교가 '무감독 시험'을 실시했다. 1학기 중간고사가 치러진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매 1교시 시험을 무감독으로 치렀다.

'정직'을 교훈으로 하는 여수석유화학고는 '글로벌 영 마이스터'가 되기 위한 덕목으로 '양심'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무감독 시험을 도입한 것이다.

무감독 시험에 대한 논의가 있기 전, 선입견을 가졌던 교육계와 인근 주민들은 무감독 시험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교장(조영만)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까지도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20년 동안 대기업인 LG화학에서 직업교육을 하다 작년 초에 공모교장으로 부임한 조영만 교장은 무감독 시험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학생과 교사가 입실하기전 그곳부터는 반드시 행복한 얼굴로 들어오라는 '해피라인'이 발앞에 보인다 ⓒ 오문수


"학생들에게 지식교육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성지도입니다. 인성이 되어 있어야 산업 현장에도 잘 적응하고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인재가 됩니다."

부정행위가 나왔을 때의 어려움을 예상한 교사들은 난상토론을 거쳐 선진학교 탐방을 가기로 했다. 50년 동안 무감독 시험으로 유명한 인천제물포고등학교와 진주의 삼현여자고등학교를 탐방한 교사들은 조금씩 긍정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수차례의 교직원 연수 및 워크숍을 실시해 합의와 동의를 구했고, 학부모들을 초청해 무감독 시험 실시에 따른 안내 및 설명회를 했다. 또한 학생들에게는 무감독 시험실시 방법 및 의의에 대한 사전 교육은 물론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특강을 실시하는 등 학교 구성원들 간에 공동 숙의 과정을 거쳤다.

학교교육계획서에는 '행복한 나'라는 문구가 보인다.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교사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 오문수


학생들은 중간고사를 실시하기 전에 학부모 연서로 '양심선언서'를 작성해 학교에 제출했다. 이후 학생들은 한데 모여 '무감독 시험 선언식'을 가진 후 구성원 서로 간의 신뢰와 존중 속에서 양심을 지키며 정직하게 시험에 응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바른 행동'이라는 양심구호를 합창해 심성 변화를 유도해

이 학교에서 실시하는 무감독 시험은 시험 기간 중  매일 1교시에는 감독 교사가 10분 전에 입실하여 '함께 해요 바른 양심, 함께 해요 바른 행동'이라는 양심 구호를 함께 외친다. 이어 시험지와 답안지를 배부하고 시험 시작과 동시에 퇴실하며 종료 15분 전에 입실하여 잘못 쓴 답안지를 교체해 준 다음 종료와 함께 시험지를 걷어가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조영만 교장은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하는 모든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반갑게 인사한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교장선생님이 "오늘의 행복지수는 몇점?"하고 물었을 때 100점이상이 되지 않으면 학교로 들어올 수 없어서 다시 밝고 환하게 웃으며 100점이상의 환한 얼굴로 웃어야 교내로 들어올 수 있다 ⓒ 오문수


또한 매일 시험이 끝나면 '무감독 시험 소감문'을 작성하여 제출함으로써 당일 시험에 있어 비양심적인 행위가 있었는지를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점을 건의하는 등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실시했다. 김 아무개 학생의 소감문이다.

"커닝에 대한 약간의 유혹을 느꼈지만, 양심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여 끝까지 자존심을 지켰다. 무감독 시험을 치르고 나니 스스로 자긍심이 생겼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찰나에 조영만 교장이 무감독 시험의 의의에 대해 덧붙였다.

"무감독 시험실시에 대한 협의 과정에서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로만 양심과 정직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는 것이 교육적 효과가 더 큽니다. 성적과 스펙보다 아이들에게 양심과 정직을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적이고 성실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요?"

비록 부분적인 무감독 시험이었지만, 구성원들이 만족해 하는 공감대를 끌어낸 교사들은 기말고사부터는 전면적으로 확대 실시할 예정이다. 교육은 한 마디로 변화다. 정민선 연구부장은 "구성원들이 무감독시험에 대한 부정적 기류에서 긍정으로 돌아서는 데 6개월이 걸렸어요"라고 어려움을 전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전교생과 '하이 파이브!'를 하며 '행복한 학교'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교장 선생님. 어려운 환경 때문에 열패감에 시달리며 주눅들어 있던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교사들. 불가능할 것 같던 무감독 시험을 학생의 양심을 믿고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 준 교사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여수석유화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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