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대신 붓... 횟집 사장님의 놀라운 변신

[인터뷰] 백발의 '청춘 화가' 박홍규씨... "하고 싶어서 한다"

등록 2014.05.16 10:40수정 2014.05.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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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을 넘긴 나이에 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백발의 청년을 만났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 박홍규(61·사진)씨다. 지난 8일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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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화가 ⓒ 김영숙


1남 2녀를 둔, 흰 머리와 맑은 눈빛이 참 잘 어울리는 박씨는 반세기가 더 된 얘기를 더듬어 꺼내 들려줬다.

"예닐곱 살쯤 됐을 거예요. 부모님께 10원을 달라고 하더니 연필과 공책을 사오더래요. 그러더니 공책에 갈매기를 빼곡하게 그렸대요."

그의 부모가 들려준 이야기란다. 무언가를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그때부터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박씨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학교와 경북 문경군에서 주최한 사생대회에 나가 입상했다. 교사의 추천으로 경상북도에서 연 대회에도 참가했지만 탈락했다.

"대구처럼 큰 도시에서 온 학생도 많았죠. 그 친구들은 학원에서 제대로 공부했지만 저는 한 번도 따로 그림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까, 거기까지가 제 한계였죠."

경북 문경에서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박씨는 전자공업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대학진학을 위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반대로 원치 않은 고교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걸 못하니까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거예요. 공부에 취미를 잃었죠. 물론 고등학교에 미술부가 있었지만 반항심 때문에 거기도 가기 싫었어요."

하지만 수업시간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 그는 무의식 중에 공책에 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화방을 찾아 유화를 처음 배우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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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화가의 그림


대학 기계과를 졸업해 경주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그때 다시 잠재적 욕망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경주에 있는 그림 그리는 곳을 수소문했어요. 찾아간 화방 앞에 '회원 모집'이라는 공고문을 보고도 엄청 망설였어요. 용기가 없고 언변도 없었지만 누구나 참석할 수 있고 나오기만 하면 교수가 지도해줄 거라는 말만 듣고 시작했어요."

'일요 화우회'라는 모임이었다. 당시 동국대 경주캠퍼스 회화과 교수가 회장을 맡고, 화방 주인이 총무를 맡은 유화를 그리는 모임이었다. 박씨는 유화라는 그림의 종류도 몰랐다. 단지 화방이니까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만으로 갔다.

수채화만을 알았던 그는 유화의 특성을 몰라 그림을 그릴수록 물감이 뒤범벅되고 그림이 탁해지는 경험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겁 없이 시작한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교수로부터 평을 들을 수 있었던 그때가 행복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다시 꿈을 접어야 했다. 아이를 낳고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이 그림에 대한 열망을 잠시 접게 했다.

막내 졸업하자마자 미대 입학... "하고 싶어서 했다"

1999년, 그의 큰누나가 사는 인천으로 무작정 올라왔다. 여기저기 입사원서를 내밀었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다. 고육지책으로 부평공원 앞에 '외포리'라는 횟집을 내고 지금까지 14년째 장사하고 있다. 그 노력으로 자식 1남 2녀를 모두 대학까지 졸업 시켰다.

"막내가 졸업하자마자 아내한테 '이제는 내가 대학에 가야겠다'고 했어요. 그전부터 혼자 생각만 하고 있었죠.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지금 우리 수입으로는 꿈도 못 꾸잖아요. 게다가 미술계통은 수업료보다 재료비가 더 많이 드는 실정이라, 아이들이 크기 전까지는 생각도 안 했어요."

대학을 가겠다는 말에 처음에는 부인과 갈등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동의했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절대로 '홍익대 미대'는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부인이 장담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등록금 고지서가 날라 오니, 깜짝 놀랐다고 한다.

미대 입시공부를 별도로 한 적이 없는 박씨가 미대의 명문이라는 대학에 어떻게 들어갔을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쉽게 말했다.

"홍익대 앞에 있는 학원에 가면 몇 년 동안 출제된 실기 시험문제를 밖에 걸어놔요. 예상문제도 학원 앞에 전시하는데, 그걸 보면서 혼자 준비했죠."

합격하고 나서 기분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벅찼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자부심이 생겼단다. 그 열매는 요행이 아닌 박씨가 거둔 정신력의 승리였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장사하러 내려와서 가게 문을 닫으면 새벽 3시 정도 돼요. 학교 가야 하니까 아침 7시에 일어나죠. 그걸 4년 정도 하니까 아는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내가 해야 하니까, 하고 싶은 마음과 열의가 있으니까 하지요. 내가 하기 싫은데 다른 사람이 학교 가서 공부하라고 하면 절대 못하죠.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예요."

좋은 사람 만나 못다 이룬 꿈을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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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화가의 그림


박씨는 내년 초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다. 부인의 반응이 궁금했다.

"얘기는 해놨어요. 지금은 반대는 안 합니다."

대학 진학과는 다르게 이제는 적극적 후원자가 된 아내. 박씨는 아내에게 남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저 사람이 헌신적으로 밀어주지 않았으면 절대로 할 수 없죠. 제가 아무리 뜻이 강해도 못했어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잘해야지 생각하지만 잘 못하죠(웃음). 좋은 사람 만나서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있는 중입니다. 만족하고 있고 고맙게 생각해요."

자녀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처음엔 얘기를 안 해서 자식들이 제가 학교에 다니는 걸 몰랐어요. 다른 지역에서 직장 다니는 아이들한테 일부러 얘기하지 않았고요. 지금은 아빠로서 좋아 보이는가 봐요. 전시회장도 찾아와 보고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문경 사계(四季) 전시회 열어

박씨는 지난해 말,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것도 개인전이었다.

"저는 자연을 좋아해요. 그림을 시작하고 주로 풍경화 같은 순수자연을 그렸죠. 자연이란 게 우리가 보기엔 똑같아 보여도 매일매일 달라요. 시골에서 태어나 보고 자란 게 시골 풍경이라 내 머릿속에는 자연밖에 없어요. 변화하는 사계절이나 물에 비친 자연풍경이 투영된 모습들을 좋아해요."

첫 개인전은 고향에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림의 소재로 태어나서 보고 자란 문경의 자연과 풍경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문경의 사계 그리고…'라는 제목으로 준비했다. 2012년 겨울에 기획하기 시작해 1년간 준비했다.

"겨울 풍경부터 그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2013년 1월 1일에 눈이 엄청 많이 왔어요. 그때 문경에 내려가야겠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모두 말리는 거예요. 30~40센티미터 정도 와서 차도 못 다닐 정도였죠. 하지만 이때 꼭 가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문경시 농암면에 있는 쌍용계곡에 차를 몰고 갔다. 눈이 너무 쌓여 차를 세우고 무릎까지 빠지는 곳을 걸어서 들어갔다.

"하얗게 쌓인 눈이 발자국 하나 없이 펼쳐진 풍경을 봤을 때는 그냥 감탄이 나와요. 오지 않았으면 결코 볼 수 없는 진짜 풍경이요."

그 겨울의 쌍용계곡에서 작품 세 개가 나왔다. 그렇게 문경의 사계절에 빠져 살았던 1년이었다. 2013년 11월 2일부터 열흘 동안 문경새재 안에 있는 '옛길 박물관'에서 작품 20점을 전시했다. 공교롭게도 단풍철이라 관광객들이 많이 왔다. 준비한 도록(圖錄)이나 명함이 동날 지경이었다.

"다음 전시는 내년쯤 생각하고 있어요. 새로운 소재와 주제로 비구상(추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해 비구상 쪽으로 전시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림이란 나의 남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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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화가의 그림


박씨는 대학원을 졸업하면 고향 문경으로 내려갈 생각이다. 물론 부인의 동의도 벌써 얻은 상태다.

"나에게 미술이란 인생이죠. 그림이란 '남은 인생'이고요. 시골에 내려가면 그림만 그릴 겁니다. 남은 인생을 그림에 모두 쏟을 예정입니다."

15년간 산 인천에 대한 애정도 결코 작지 않다.

"소래라든지 월미도라든지 바다풍경과 갯벌 등, 그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실행을 못하고 있죠. 그곳이 변하더라도 작품은 변함없이 남아있으니까 자료로도 쓸 수 있고요. 기회가 된다면 인천을 남기는 작업도 꼭 하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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