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금니는 동양형일까, 서양형일까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16] 인종, 개인별로 치아 구조 차이 상당해

등록 2014.06.07 09:12수정 2014.06.07 09:12
0
원고료로 응원
한국인들에게 그것은 '사랑'이었다. 반면 서양인들에게는 '지혜'였다. 입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어금니를 가리키는 말은 이처럼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다.

사랑니. 한국인들은 사랑의 아픔을 어렴풋이나마 알 만한 나이, 즉 보통은 사춘기 이후에 이 치아가 나온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헌데 영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지혜가 싹트기 시작할 무렵 치아가 잇몸을 밀고 나온다 해서 '지혜의 이(wisdom teeth)'라고 한다. 똑같은 치아를 다르게 부르는 데서 동·서양 사람들의 관념 차이가 묻어난다. 동양에서는 감성적 접근이, 서양에서는 이성적 접근이 돋보인다고 할까.

관념은 차치하더라도 생물학적으로 동·서양 사람들의 치아가 똑같다고만은 할 수 없다. 사랑니만 해도 서양인들이 동양 사람에 비해 평균적으로 한두 해 앞서 난다. 또 사랑니가 아예 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동양에서 조금 더 흔하다는 통계도 있다.

충치 불러올 수 있는 '고랑'... 왜 만들어졌을까

a

치아는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이다. ⓒ sxc


치아는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이다. 뼈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물론 치아는 뼈가 아니다. 구성 물질의 비중이 다르고 백혈구·적혈구를 만드는 골수 같은 것이 치아에는 아예 없다.

치아 숫자는 위·아래 턱 각각 16개씩 모두 32개가 기본이다. 이 중 어금니는 전체 치아의 절반이 훨씬 넘는 20개이며 제1·제2 작은어금니와 제1·제2 큰어금니, 그리고 사랑니 등 모두 다섯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어금니는 생김새는 물론 기능도 앞니와는 딴판이다. 어금니의 씹는 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산처럼 솟아 있는 부위와 계곡처럼 푹 꺼져 있는 구조가 확연하다. 산처럼 솟아오른 부분을 '도드리', 계곡 같은 구조를 '고랑'이라 하는데, 어금니마다 도드리와 고랑 숫자가 조금씩 다르다.


위턱 작은어금니에는 보통 2개의 도드리가 있고 위턱 큰어금니에는 4개가 있다. 아래턱 어금니는 위턱 어금니들과 약간 차이가 있어 아래턱 제2 작은어금니에는 2~3개, 제1 큰어금니에는 5개의 도드리가 있다.

한편 도드리 가운데는 '카라벨리 결절'이라 불리는 독특한 것도 있다. 카라벨리 도드리는 위턱 첫째 큰 어금니에서만 나타나는데, 서양인 가운데는 80%에서 관찰될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한국인 가운데 카라벨리 도드리를 가진 사람은 10% 미만이라는 조사도 있을 정도로 드문 편이다.

음식물을 씹고 가는 역할을 하는 어금니를 절구라 치면, 도드리와 고랑은 각각 절굿공이와 절구통이라 할 수 있다. 어금니는 잘 쓸 경우 100년 안팎이라는 세월 동안 제 기능을 할 수 있으니 절구 중에서도 매우 잘 만들어진 절구인 셈이다.

실제로 부단한 사용에도 불구하고 내구력이 어금니만큼 좋은 인체부위도 찾기 힘들다. 치아를 '조물주의 작품'이라고 할 때, 도드리와 고랑 구조의 어금니는 단연 '역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어금니를 만든 조물주의 솜씨도 완벽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어금니 고랑은 음식물 찌꺼기가 끼어들기 딱 좋은 모양을 하고 있다. 치과 의사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피셔(고랑의 영어 이름)가 없다면 밥 굶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어금니 고랑은 충치 발생에 큰 몫을 한다.

그렇다면 왜 어금니에 고랑이 만들어진 걸까. 어금니는 겉으로는 한 덩어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잇몸 속에 감춰진 '뿌리'를 보면 밥상 다리처럼 갈라져 있다. 다시 말해 여러 개(보통 2~4개)의 뿌리가 올라오면서 하나로 뭉쳐져 '한 개'로 보이는 어금니가 형성된다. 고랑은 바로 이들 뿌리 부분이 합쳐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고랑 구조는 씹을 때 마찰을 최소화해 저작 능력을 향상시킨다. 골프 공에 올록볼록 나 있는 딤플이 비행거리를 늘리고 칼등에 뚫어 놓은 구멍이 절단력을 좋게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충치를 불러올 수 있는 고랑 구조의 단점은 철저한 양치로 보완할 수 있다. 나아가 충치에 구조적으로 취약한 어금니 특유의 단점을 좀 더 확실하게 없애려면 고랑 부위를 아예 밀봉할 수도 있다. 이는 적지 않은 국가의 보건당국들이 권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치아는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인 탓에 사람이 죽은 뒤에도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남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어금니의 도드리와 고랑의 예에서 보듯 인종이나 개인마다 차이가 적지 않다. 신원 파악에 치아가 긴요하게 활용되는 이유이다. 하찮은 듯 보여도 숨은 면모가 적지 않은 게 바로 어금니다.

(*도움말 김희진 연세대 치대 교수, 오정현 치과의사)
덧붙이는 글 위클리공감(www.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입니다.
#어금니 #치아 #충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