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발레리나 꿈꾸던 '로사', 누가 처참하게 짓밟았나

[인터뷰] 여성 이주노동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로사'의 맹관표 감독

14.05.27 10:49최종업데이트14.05.27 16:26
원고료로 응원

이주노동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로사>는 29일 개봉된다. ⓒ 예스프로덕션


발레리나를 꿈꾸던 우즈베키스탄의 열여덟 살 소녀가 학비 마련을 위해 한국에 왔다. 소녀는 나이트클럽 무용수로 7개월간 일했지만 월급을 받지 못했고, 다른 이주여성들과 함께 합숙생활을 하면서 술 접대와 성매매 일을 했다. 그러다 경찰에 적발된 소녀는 짓밟힌 코리안 드림을 안고서 강제 출국 당했다.

우즈베키스탄 여성 이주노동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독립영화 <로사>(제작 예스프로덕션)가 오는 29일 개봉된다. <로사>는 볼쇼이 발레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학비를 마련하려고 한국에 온 소녀 로사가 겪는 냉혹하고 처절한 현실을 거침없이 그려냈다. 이것은 주인공 로사에게만 가해진 불행과 고통이 아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여성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성매매와 착취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로사>를 연출한 맹관표(35)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다큐멘터리와 같은 영상을 보여주고자 카메라 기법으로는 핸드헬드(handheld, 사람이 장비를 들고 배우나 사물을 쫓아가면서 촬영하는 기법)를 사용했다"면서 "주인공의 긴 여정을 보여주기 위해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으로의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과감하게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29일 롯데시네마 합정점에서 개봉되는 <로사>는 감독과의 대화도 진행한다. 이외에도 롯데시네마 누리꿈(상암), 서울대입구, 씨티(강남), 황학점 등 5곳의 서울 개봉관과 롯데시네마 인덕원(안양), 검단(인천), 여수점을 비롯해 8곳에서 상영된다.

"한 이주여성의 짓밟힌 코리안 드림, 이 영화의 시작"

맹관표 감독 ⓒ 예스프로덕션


다음은 26일 진행된 맹관표 감독과의 인터뷰다. 서강대 영상대학원을 졸업한 맹 감독은 제6회 대한민국영상대전에서 부자간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영화 <밀물이 들어올 때까지>로 주목받았다.

- <로사>를 만든 계기는?
"'아시아에서 꿈을 가진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란 주제의 3부작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중에 이주여성의 짓밟힌 코리안 드림에 대한 언론보도를 통해 첫 번째 작품으로 만들게 됐다."

- <로사>에 출연한 주인공은 누구인가.
"영화에서 주인공 로사는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녀다. 그래서 진짜 발레리나처럼 보이는 배우가 필요했고, 우즈베키스탄 필름의 지원으로 300여 명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진행했지만 원하는 배우를 찾지 못했다.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몸의 곡선과 비율, 로사라는 인물에 맞는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의 예술극장에서 발레 공연을 볼 기회가 생겼는데, 거기서 진짜 발레리나였던 루츠메토파 다야나(이하 다야나)를 캐스팅하게 됐다. 좋았던 것은 그녀가 한국을 방문한 경험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촬영을 진행할 당시에 다야나는 한국을 많이 낯설어 했다.

그것이 로사라는 인물이 한국을 낯설어 하고, 심리적 거리감을 표현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전문 배우가 아니기에 로사라는 인물의 생활을 더욱 현실감 있게 표현한 것 같다. 로사, 아니 다야나는 지금 한국에 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물론 영화 속 로사와 같은 상황은 아니다."

- <로사>를 통해 한국 사회 혹은,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이주여성의 꿈과 희망 그리고 처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주여성을 주제로 제작된 영화는 많다. 그러한 영화의 대부분은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내가 본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처참하게 짓밟힌 이주여성 인터뷰 기사, 이주여성들의 다양한 피해사례들을 접하면서 이주여성들의 꿈과 희망에 비해 참혹한 현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로사>가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이주여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해가 지는 거리를 걸어가는 로사. ⓒ 예스프로덕션


- <로사>는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어떤 내용인가.
"로사를 특정 이주여성으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주여성들의 피해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로사>의 포맷을 확정짓게 한 것은 특정 이주여성의 짓밟힌 코리안 드림에 관한 기사였다.

2000년 학비 마련을 위해 서울의 나이트클럽 무용수로 취직한 러시아 여성 루나(22)는 7개월간 일하고도 월급을 받지 못했고, 결국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됐다. 다른 이주여성 3명과 함께 논현동의 빌라에서 합숙생활을 하면서 술 접대와 성매매를 하던 이 여성은 경찰에 적발돼 강제출국 당할 처지에 놓였는데, 이들의 성매매 비용을 챙긴 업소 사장은 러시아로 도망갔다는 내용이었다."

- 영화를 만들면서 성매매로 착취당하는 이주여성들을 만난 적이 있는가.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찾는 과정에서 놀랄만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례로 1999년도인가, 러시아에서 온 8명의 무희들이 한국 생활을 비관하고 집단 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수도권 한 신도시의 오피스텔 화장실에만 봐도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여성의 성매매를 알선하는 광고 전단지가 수두룩하게 붙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처절한 현실을 떠나서 이주여성이 상품화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불법 접대·성매매 문제 해결돼야 이주여성 피해 사라질 것"

- 우리는 일본정부를 향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는 이주여성들을 성노예로 착취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이주여성 성매매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는 식민지배시 강제적으로 동원되어 성적 착취가 발생한 문제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야 마땅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주여성의 경우는 성매매의 착취를 떠나 전반적으로 인권과 도덕적 측면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똑같이 일하면서 최소의 임금을 받거나 임금체불 등의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래서 이주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일을 구할 수 있다는 이유와 한국인 브로커들의 유혹 등으로 인해  술 접대와 성매매 일을 시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부차원에서 불법적인 술 접대 및 성매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하고,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어야 이주여성의 피해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흥업소에서 손님 접대를 하고 있는 로사 ⓒ 예스프로덕션


- 이주여성 성매매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유흥문화다. 촬영을 위해 방문했던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도 한국식 유흥업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업소들은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그만큼 술과 성매매를 즐긴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촬영을 하면서 일부 한국 남성들이 백인 여성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들과의 성매매 경험을 자랑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 인권단체나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문제 제기를 해도 해결되지 않았던 사건들이 <부러진 화살> <도가니> <변호인> 등의 영화를 통해 해결되거나 이슈화가 됐다. <로사>가 이주여성의 문제를 어느 정도 이슈화 할 것으로 기대하는가?
"이들 영화들은 개인적으로 모두 재미있게 본 영화다. 이 영화들은 <로사>보다는 좋은 제작 환경에서 만들어졌다. <로사>는 이들 영화처럼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정말 적은 예산에다 개봉되는 상영관도 많지 않다. 그래서 <로사>를 통해 이주여성의 문제가 이슈화 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이슈화 되어서 현실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 영화감독이 본 이주노동자의 현실 그리고, 이주민 인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영화감독을 떠나 국민의 한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매우 가혹하고, 이주여성들의 고통은 생각 이상인 것 같다.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은 꿈과 희망이 넘치는 기회의 땅이었을 텐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관심이 지금보다 더욱 커져야 될 것 같다."

- 한국은 코리안 드림의 나라인가? 아니면 이주민의 꿈을 짓밟는 나라인가?
"사례(case by case)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만, <로사>를 통해 보이는 한국은 이주민의 꿈을 짓밟는 나라다. 관객들도 로사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영화의 결말은 열어 놨으니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시골 모습. ⓒ 예스프로덕션



로사 이주노동자 맹관표 코리안드림 우즈베키스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