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미고, 함백산을 오른다

등록 2014.05.27 16:03수정 2014.05.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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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가슴이 아프게 뛴다. 모든 게 달리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 전 국민들이 그렇다. 진도 팽목항, 그 거센 물결 속에서 안타깝게 스러져간 생명들 앞에 한없이 미안한 마음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다른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인간이 이토록 무능하고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허무하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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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그렇다고 가던 길을 멈추고 하염없이 그 일을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마음을 여미고 가던 길을 계속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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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함백산 ⓒ 홍순종


어떤 선택을 하건, 잘못된 선택이라 할 수 없다. 가변적인 세상에서 고정적인 답을 찾아 사는 것은 결코 온전한 삶,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행복이란 결과가 아니라 숨쉬며 살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목표지향적인 사람은 행복하기 쉽지 않다. 행복은 삶을 즐기는 순간들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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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함백산 ⓒ 홍순종


지금 즐거운 사람은 내일도 즐거울 수 있다. 지금 행복한 사람은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소중한 시간들이 고통으로 얼룩진다면, 내일 역시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 지금의 마음이 내일 그리고 모레로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모하게 일탈하거나, 무분별하게 현재를 즐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든, 오늘의 고통을 담보로 내일을 기약하든, 선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든 지난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오늘과 내일 역시 후회하지 않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행복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산을 오른다는 것 또한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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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행복에 대한 그와 같은 마음 자세로, 이달에도 '한출 산악회'는 강원도 태백에 있는 함백산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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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사악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산천은 그 푸르름이 짙어가고 있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시끌벅적 했을 차 안이 조용했다. 집행부의 사전 고지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마음들이 그렇게 무거웠지만 만항재에 도착하니 사람들 표정들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강 대장의 리드로 몸풀기가 끝나고 누림 출판사 임 사장이 앞장을 서자 모두들 따라걷기 시작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양 옆으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니 함백산 정상으로 가는 오르막이 나타났다. 사람들 숨소리가 커지면서 대오가 조금씩 흐트러졌다. 힘에 버거운 사람들은 뒤로 처지고 있었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15년 전 그 길을 올랐을 땐 나무들이 빽빽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은 그 나무들이 모두 고사되었고 등산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새로 만들어진 등산로가 편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진정한 함백산의 정기가 훼손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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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함백산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주목 군락지로 내려오는데 그곳도 많이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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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주목들이 고사되어 앙상한 뼈대만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울울창창했던 모습들은 오간데 없었다.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그런 현상들은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이대로 10년 정도가 지나면 상상하기 싫은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능선 길은 잘 보존되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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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갈림길을 가기 전 평상에 앉아 즐겁게 식사를 하고 다시 정암사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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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야생화도 보고 멀리 산 그림자와 구비치는 능선들을 구경하면서 내려갔다. 별안간 누군가 "한출, 한출" 우리들을 불렀다. 찰리였다. 반가운 해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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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하산 길. 처음 오신 노랑우산 출판사 정 사장님이 일행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앞장을 세웠지만 많이 힘들어 하셨다. 그런 상황에서는 말 한마디가 굉장히 중요하다. 섣불리 위로할 요량으로 '힘들어서 어떻게 해요.' '여기 좀 쉬었다 가세요'와 같은 표현은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 때는 '아~잘하시는데요.' '조금만 힘내세요'와 같은 말들로 상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좋다. 쉽지 않은 산행이었겠지만 정 사장님은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 출판사를 운영하던 정신력이 완주의 동력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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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만항재 아래 마을에서 즐거운 뒷풀이 시간을 가졌다. 정암사를 들린 후 뒤풀이를 하기로 했는데 산행이 늦어져 뒤풀이를 한 다음 정암사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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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정암사는 자장율사가 창건한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다.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하고 뒤늦게 깨달아 문수보살을 쫓아갔을 때 문수보살이 사자 등을 타고 날아가는 것을 보고 열반에 든 곳이 거기에 있는 적조암이다. 그 곳은 수마노 탑이 있는 국내 유일의 적멸보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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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자연과 사람의 부조화가 결국 인간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아닐까, 산행을 하면서 늘 생각한다. 자연과 합일되는 상태가 된다면 산에 갔을 때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산행을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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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백산 ⓒ 홍순종


모두가 늘 푸르름을 간직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함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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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의 역사는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저도 오마이뉴스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내 삶의 역사를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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