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바로 이겁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⑨] <위대한 개츠비>

등록 2014.05.31 18:37수정 2020.12.2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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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더클래식에서 나온 책 표지 ⓒ 더클래식


사람들이 누구나 이름을 가지듯이 모든 소설은 하나의 제목을 가진다.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처음 만나는 것 역시 제목이고 읽고 난 후 세월이 지나 남는 마지막 인상 역시 제목이기에 소설에 있어 제목은 너무도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에 책의 내용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책의 얼굴'은 곧 제목의 다른 이름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런 면에서 노골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어째서 개츠비가 위대한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답이야 말로 저자의 의도, 혹은 소설의 주제와 같다고 여기기 십상인 것이다. 그렇기에 제목의 '위대한(The Great)'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수식어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독자들은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설은 미국 중서부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난 닉 캐러웨이가 서부와는 달리 '역동적이고 화려한' 동부로 이주해 개츠비라는 인물을 만나고 그를 통해 겪은 일련의 '사건'을 뒤에서 풀어내는 액자식 구조로 전개된다. 소설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는 톰 뷰캐넌의 친구이자 데이지의 친척 오빠이며 개츠비의 이웃으로,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인 동시에 이들이 벌이는 '사건'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서부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동부로 이주했지만 개츠비를 중심으로 한 사건을 계기로 동부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 서부로 돌아가는 합리적이며 관찰자적인 인물이다.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러 닉은 개츠비에게 "저들 모두를 합한 것보다 당신이 더 가치있다"라고 말하는데 이를 통해 볼 때 제목에 쓰인 '위대한'은 상당부분 개츠비에 대한 닉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알기 위해서는 닉이 개츠비를 왜 가치있는, 혹은 위대한 인물로 생각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개츠비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강한 자존감을 지녔으며 성공에 도달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해온 젊은이로 묘사한다. 그런 그의 삶은 장교로 복무하던 1차 대전 중 상류층 자제였던 데이지를 만나면서 혁명적으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군복으로 간신히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던 야망으로 가득한 젊은이가 '다른 세계에 속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느꼈을 끝 모를 행복과 불안감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지 잠시 생각만 해보아도 아득할 지경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과 재회하기 위해 무일푼이었던 사내가 5년 만에 부촌에 자리 잡고 매일같이 화려한 파티를 벌이기까지 어떤 일들을 했고 또 어떤 일들을 겪었을지 궁금증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저자는 개츠비를 다른 인물들보다 늦게 등장시키며 오랫동안 그의 정체를 감추고 뒤에서 들리는 소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그를 신비화한다. 그리고 조금씩 개츠비가 범죄조직과 손을 잡고 돈을 번 인물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사랑한 여인을 되찾기 위해 무려 5년 동안이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애써온 남자 개츠비의 정체가 실은 범죄를 통해 부를 일군 한낮 졸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도 개츠비에 대한 닉의 찬사는 결코 반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이들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개츠비에 대한 믿음과 애정도 커져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개츠비에게 찬사를 한 것이 그에게서 모든 진실을 듣고 난 날 아침의 일인 것을 생각해 보면 이는 더욱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는 무엇 때문일까?

톰과 데이지, 조던은 모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소위 상류층의 인물이다. 그들은 별다른 목표 없이 늘 흥청망청 쓰고 일상을 권태로워 하며 살아간다. 반면 개츠비는 부와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자신의 삶을 통제하며 항상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전력을 다해온 인물이자 데이지를 사랑하게 된 이후부터는 오직 그녀를 사랑하는데 온 힘을 다한 열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온 인생을 쏟아 부은 의지야말로 개츠비와 다른 인물들을 갈라놓는 분명하면서도 현격한 차별점인 것이다.

저자가 닉 캐러웨이의 눈을 빌려 개츠비를 '평생 동안 네다섯 번 밖에 볼 수 없는 미소를 보여준 사람', '지진계와 같이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 '다른 이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 등으로 표현한 것만 보아도 그가 개츠비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투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본다면 개츠비의 이름 앞에 적힌 '위대한'이라는 말은 그의 순수하고 힘찬 영혼에 대한 저자 피츠제럴드의 찬사임에 분명하다.

소설은 일면 작가 그 자신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18세 때 2살 연하의 여인 지니브러 킹에게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고 나중에 결혼하게 되는 젤다에게도 월급쟁이로 미래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파혼을 통보받았으니 개츠비의 삶에서 피츠제럴드를 보는 것이 확대해석만은 아닐 것이다. 성공에 대한 열망과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꿈과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끝없이 좌절했던 저자의 삶이 닉의 시선을 통해 개츠비에 대한 긍정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개츠비의 사랑이 과연 성숙한 것이었는지, 그 방법이 옳은 것이었는지 등의 문제는 그 시비판단을 유보해 두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 온갖 범죄도 서슴지 않으며 지나간 시간마저 되돌려 미래로 삼고자 했던 개츠비의 모습에서 사랑 앞에 진실하고자 했던 한 남자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면 그건 지나친 역설일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배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 끝없이 과거 속으로 물러서면서(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s,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덧붙이는 글 <위대한 개츠비>(F. 스콧 피츠제럴드, 이기선 옮김, 더클래식 펴냄, 2012년 6월, 492쪽, 11800원)

위대한 개츠비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기선 옮김,
더클래식, 2016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이기선 #더클래식 #바즈 루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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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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