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후보자들이 꼭 가봐야 할 곳, 여기!

‘청백리’의 상징 유물이 된 아곡 박수량 선생 백비

등록 2014.06.01 09:46수정 2014.06.0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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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량 선생의 백비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금계국. 활짝 핀 노란 꽃이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노란 리본 같다. 하나의 작은 꽃들이 모여 큰 물결을 이루고 있다. ⓒ 이돈삼


6·4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 와중에서도 선거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선거 입후보자들은 저마다 청렴과 봉사를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서도 나중에 부정부패와 연루되곤 한다. 경험칙(經驗則)이다.

사실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부정과 부패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갖가지 비리로 옷을 벗는 공직자가 끊이지 않는다. 세월호 침몰 사고 땐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정치인과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일차적으로 자신들의 몫이다. 하지만 유권자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을 뽑았거나 최소한 방치했기 때문이다.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있다. 후보자 가족과 선거운동원 그리고 유권자도 매한가지다. 선거가 끝나고라도 당선자들이라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찾아간다. 박수량 선생의 백비가 있는 전남 장성이다. 사전 투표를 앞둔 지난 5월 28일이다.

부산한 선거판만큼이나 들녘이 모내기 준비로 분주하다. 일찍 모를 낸 논에서는 황로가 먹잇감을 찾아 나섰다. 매실은 토실토실 살을 찌우고 있다. 도로변에 금계국이 줄지어 피어 있다. 활짝 핀 꽃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 같다. 하나의 작은 꽃들이 모여 큰 물결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꽃향기는 미미하다. 꽃물결도 우리의 큰 슬픔을 헤아리는 것 같다.

도로변 논두렁에 피어난 노란 금계국.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 같다. ⓒ 이돈삼


박수량 선생의 백비. 비석에 이름은 커녕 지위나 업적이 새겨져 있지 않다. 글자라고는 한 자도 없다. 그래서 백비다. 청백리의 상징이 됐다. ⓒ 이돈삼


백비(白碑)는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뒷산에 있다.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가서 만나는 양지바른 곳이다. 묘는 일반적인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비석이 별나다. 고인의 이름과 직위는 커녕 글자 한 자가 없다. 그렇다고 대충 세워놓은 것도 아니다. 높이 130∼140㎝, 폭 40∼50㎝로 반듯하다.

이 비석의 주인인 아곡 박수량(1491∼1554) 선생은 39년을 고위 공직자로 살았다. 23살에 진사, 24살에 문과에 합격해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호조참판, 예조참판, 한성부윤, 의정부 우참찬과 좌참찬, 도총관, 전라도관찰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럼에도 요즘말로 그 흔한 접대 한 번 안 받았다. 뇌물도 받지 않았다. 부정한 뒷거래도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은 채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살았다. 시쳇말로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선생이 죽는 순간 남긴 유언도 소박했다. 고향에 장사를 지내되 묘를 크게 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 것을 가족들에 당부했다. 어찌나 청빈하게 살았던지 장례비용조차 없어 가족들의 걱정이 컸다.

박수량 선생의 백비. 비석의 크기나 폭은 일반적인 것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글자가 한 자도 새겨져 있지 않다. ⓒ 이돈삼


박수량 선생의 묘와 백비 전경.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뒷산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이 소식을 전해들은 명종이 장례비용을 보내고, 서해안에서 쓸만한 돌을 골라 비를 세우도록 했다. 그러면서 비석에 공적을 나열하지 말고, 그냥 세워 놓으라고 덧붙였다. 비문에 이런저런 공적을 새기는 게 오히려 선생의 생애에 누(累)가 될까 우려해서였다. 이렇게 세워진 백비가 오늘날 청백리(淸白吏)의 상징이 됐다.

백비를 돌아보고 있는데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연이어 날아든다.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지지 당부 글이다. 깨끗한 사람, 청렴한 일꾼임을 자처하고 있다. 큰 봉사 할 사람, 초지일관할 사람, 안전한 지역 만들기 적임자라는 것도 내세우고 있다.

문자는 내가 투표권을 행사할 선거구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수백 리 떨어진 곳에서도 날아온다. 백비를 보고 내려오는데 마을 담벼락에 지방선거 공보가 붙어 있다. 저마다 공이나 직위를 크게 치장해 놓았다. 특별히 보잘 것 없는 것인데도 그랬다. 달콤한 공약도 펼쳐 놓았다.

명종이 박수량 선생에 하사했다는 청백당을 복원해 지은 청백한옥 체험관. 홍길동테마파크 앞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홍길동테마파크 내 홍길동 생가. 집을 떠나는 홍길동이 하직 인사를 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 이돈삼


새삼스레 박수량 선생의 백비가 더 귀하게 다가온다. 부러 이름을 남기지 않았는데도, 선생의 이름 석 자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름마저도 새기지 않은 백비는 청백리를 상징하는 유물이 됐다. 선거 공보를 보면서 선생의 삶이 더 큰 울림으로 남는다.

백비길을 따라 아곡리 아치실마을로 간다. 백비에서 1㎞ 가량 떨어져 있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가는 길이지만 오가는 차량이 없다. 경운기와 트랙터만 두 대 지난다. 오가는 사람도 없다. 한적한 시골마을 도로다.

아치실은 선생의 탯자리로 추정되는 곳이다. 그러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명종이 하사한 '청백당'을 복원한 청백한옥 체험관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장성군이 조성한 홍길동테마파크와 맞닿아 있다.

황룡전적지 기념탑에 조각된 동학농민군들. 장태를 굴리며 관군에 맞서는 모습이다. ⓒ 이돈삼


관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학농민군들. 황룡전적지 기념탑에 새겨진 부조물이다. ⓒ 이돈삼


아치실은 홍길동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홍길동은 만민평등의 기치를 내걸고 봉건제도에 맞선 의인이었다. 활빈당을 이끌고 이상국 건설에 나섰다. 홍길동의 만민평등 사상도 오늘을 사는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이념이란 생각이 든다.

청백리와 의인을 만나고 장성읍 쪽으로 홍길동길을 따라간다. 황룡전적지 기념탑이 보인다. 1894년 4월 반봉건과 반외세를 기치로 일어선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처음 무찔렀던 곳이다. 이 전투는 역사상 유례없는 동학군의 농민통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산자락에서 내려다 본 박수량 선생의 묘소와 백비. 지금 청백리의 상직적인 유물이 돼 있다. 지방선거 입후보자와 유권자, 그리고 고위 공직자들이 한번쯤은 반드시 다녀가야 할 곳이다. ⓒ 이돈삼


동학군은 당시 '충과 효로 세상을 건지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강령을 채택하고 장태를 굴리며 관군의 총탄에 맞섰다. 장태는 둥글게 엮은 대의 속에 짚을 넣어 만든 총알막이였다. 장태를 굴리는 농민군의 형상 위로 죽창 모형이 탑이 우뚝 서 있다.

기념탑 앞에서 6·4 지방선거를 생각해본다. 이번 선거에서 어떤 후보에게 나의 소중한 표를 줄까. 먼저 청렴하게 일할 수 있는 후보를 찾아야겠다. 입후보하면서 다졌던 마음이 변치 않을 후보, 박수량 선생처럼 끝까지 청렴하게 살 후보를. 세월호 참사도 부정과 부패가 시작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심이 아닌 양심을 지닌 후보, 자신보다 유권자를 먼저 생각하는 후보, 착복보다 베풀기를 실천할 후보를 가려내야겠다.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박수량 선생의 백비 입구에 세워져 있는 표지석. 이름도 남기지 않은 백비이지만 지금은 청백리의 상징적인 유물이 돼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장성나들목에서 상무대 방면으로 24번국도를 탄다. 제2황룡교를 건너 장산사거리에서 통안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황룡전적지와 홍길동테마파크, 백비를 차례로 만난다.
#청백리 #백비 #박수량 백비 #황룡전적지 #홍길동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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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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