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덫에 걸린 크롬캐스트, 대안방송 '대안'될까

[오마이뷰] 구글 크롬캐스트 대 IPTV... '거실 쟁탈전' 승자는?

등록 2014.06.06 09:57수정 2014.06.0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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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크롬캐스트는 스마트폰으로 보던 영상을 TV 화면으로도 볼 수 있게 해주는 미디어 스트리밍 기기다. ⓒ 김시연


구글 크롬캐스트 초기 반응이 뜨겁다. 지난해 7월 미국 시장에서 처음 등장한 뒤 품귀 현상을 빚으며 수백 만 대가 팔리더니, 지난 5월 14일 늦장 출시한 한국에서도 보름 만에 2만 대 넘게 팔렸다고 한다.

크롬캐스트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보던 영상이나 콘텐츠를 대형 TV 화면에서도 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무선 연결 장치다. 사람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TV에 HDMI(고선명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 단자만 있으면 꽂아 쓸 수 있고, 가격도 4만9900원(미국 35달러)이다.

미국에선 넷플릭스, 훌루 같은 VO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와 손잡고 값비싼 유료방송을 해지하는 '코드 커팅' 현상을 부추겼다. 반면 우리나라는 케이블TV나 IPTV 같은 유료방송 요금이 미국에 비해 싼 데다 넷플릭스 같이 시선을 끄는 '킬러 콘텐츠'도 없어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과연 크롬캐스트는 한국에서도 통할까? 우리 집 거실 TV를 둘러싼 크롬캐스트와 IPTV의 20일에 걸친 쟁탈전을 공개한다.

'굴러온 돌' 크롬캐스트, '거실 터줏대감'에 도전하다

애초부터 무모한 도전이었다. 우리 집 42인치 TV는 이미 '스마트'했다. 요즘 잘 나가는 '스마트TV'는 아니지만 IPTV 셋톱박스 덕에 170개가 넘는 채널과 VOD(주문형 비디오)는 물론 유튜브 영상도 거실에 앉아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었다. 더구나 채널 주도권조차 애니메이션 채널에 푹 빠진 아이들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제 아무리 잘난 크롬캐스트도 우리 집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실제 지난달 15일 처음 우리 집에 온 크롬캐스트는 바로 한동안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설치는 간단했다. 마침 TV 뒷면에 HDMI 단자 여유가 있어 크롬캐스트를 꽂기만 하면 됐다. 다행히 전원공급선을 꽂을 USB 단자도 여유가 있었다. USB 단자가 없는 TV는 전원 어댑터와 연결해 콘센트에 꽂아 쓰면 되지만, HDMI 단자가 없는 구형 TV는 크롬캐스트를 사용할 수 없다.

문제는 인터넷 연결이었다. '유선 랜'에 연결하는 기존 IPTV 셋톱박스와 달리, 크롬캐스트는 '무선 랜(와이파이)' 연결이 필수였다. 크롬캐스트와 연동할 스마트기기도 반드시 같은 와이파이망에 접속해 있어야 했다. TV가 있는 거실에선 와이파이가 잘 안 잡혀 부득이 방에 있던 무선공유기를 옮겨와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유튜브 캐스트'? 티빙 아이폰 지원 늦고 지상파 시청도 제한

구글 크롬캐스트는 국내에서 호핀, 티빙 서비스를 지원한다. 사진은 SK플래닛 VOD 서비스인 호핀 모바일 앱에서 jTBC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 장면을 크롬캐스트로 전송해 TV로 보여주는 모습. 모바일 앱 상단 오른쪽의 초록색 마크가 크롬캐스트 연결 중임을 알려준다. ⓒ 김시연


가까스로 인터넷 연결엔 성공했지만 이번엔 애플리케이션(앱)이 문제였다. 사실 크롬캐스트를 처음 연결했을 때 뜨는 건 텅 빈 화면뿐이다. 스마트TV 셋톱박스인 '다음TV+'처럼 아기자기한 메뉴 화면과 콘텐츠가 뜨길 기대했기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크롬캐스트는 단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앱으로 구현한 영상을 TV 화면으로 보여줄 뿐이다.

5일 현재 미국에서 크롬캐스트를 이용할 수 있는 앱은 넷플릭스를 비롯해 훌루, 판도라TV 등 20개에 이르는 반면 한국은 국내 파트너인 CJ헬로비전 '티빙'과 SK플래닛 '호핀'을 포함해 13개 정도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크롬캐스트로 볼만한 게 유튜브 밖에 없어 '유튜브 캐스트'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또 구글 안드로이드 기기뿐 아니라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iOS 기기에서도 크롬캐스트를 이용할 수 있지만 티빙과 호핀 iOS용 앱은 지난달 말까지 사용할 수 없었다. 이들 앱에서 크롬캐스트를 사용하려면 앱 상단에 뜬 '크롬캐스트 마크'를 통해 TV와 연결해야 한다. 다행히 호핀은 지난 6월 1일부터 아이폰으로 VOD 영상을 볼 수 있었지만, 모바일TV 앱인 '티빙'은 5일 현재까지도 업데이트가 안 돼 결국 크롬캐스트를 통한 실시간 방송 체험은 포기해야 했다.  

지상파 방송의 견제도 큰 걸림돌이다. MBC, SBS, KBS, EBS 등 지상파방송 모바일TV인 '푹(Pooq)' 서비스가 제휴 대상에서 빠졌을 뿐 아니라, 티빙도 지상파 방송사들의 반대로 크롬캐스트를 통한 지상파 실시간 방송은 물론 VOD 서비스도 제한하고 있는 상태다. 

이밖에 '비키'나 '포스트TV', 'MLB.TV' 같이 해외 동영상 서비스도 일부 포함돼 있지만 국내에서 인기를 끌만한 콘텐츠를 찾아보기 어렵다.

또 '리얼플레이어 클라우드'나 'Avia' 같은 동영상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면 스마트폰이나 PC에 저장된 영상이나 사진을 TV에서 볼 수 있다. 다만 리얼플레이어 앱을 이용해 내 아이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TV에서 보려고 했더니 3~4분짜리 영상을 크롬캐스트용으로 전환하는 데만 10분 가까이 걸렸다.

평소 클라우드 공간에 콘텐츠를 저장해 두는 습관이 있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스마트기기와 TV 간 콘텐츠 연동은 이미 국내 통신사와 스마트폰 제조사에서도 자체 생태계를 만들고 있어, 크롬캐스트만의 차별화된 가치로 보기 어렵다.

구글 크롬캐스트를 이용할 수 있는 주요 앱(왼쪽)과 리얼플레이어 클라우드 앱을 이용해 아이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크롬캐스트를 통해 TV화면에 재생하기 위해 파일을 최적화하는 모습 ⓒ 김시연


결국 남는 건 유튜브와 구글 플레이 무비, 구글 플러스 같은 구글 서비스다. 4~5인치 스마트폰과 같이 작은 화면에서 보던 영상을 40인치 이상 대형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삼성 LG 스마트TV나 케이블TV, IPTV에서도 이미 유튜브나 플레이무비를 부가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특히 유튜브 TV 페어링 기능을 이용하면 스마트폰에서 재생한 유튜브 영상을 바로 대형 TV 화면으로 옮겨 볼 수 있다.

또 유튜브 영상 가운데 영화처럼 온가족이 함께 볼만한 영상이 제한적이라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 뮤직비디오나 UGC처럼 개인 맞춤형 소비에 적합한 영상이어서 10인치대 태블릿이나 노트북PC, 20~30인치대로 PC 모니터로 충분해 보인다.

지상파 덫에 걸린 크롬캐스트, 대안방송 '대안'될까

사실 크롬캐스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국내 언론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 이유는 기존 지상파나 유료방송에 맞선 대안방송 플랫폼이 되리란 기대감 때문이다. 그동안 뉴스타파나 오마이TV, 팩트TV, 고발뉴스, 국민TV 같은 대안방송들은 인터넷을 통해 유통돼 PC나 모바일 기기를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크롬캐스트를 통하면 얼마든지 거실 TV에 진출할 수 있다.

아직 이들 대안 방송 가운데 크롬캐스트를 지원하는 곳은 없지만, 지금도 유튜브를 이용하면 실시간 방송이나 지난 방송을 TV로 시청할 수 있다. 실제 팩트TV의 경우 지난 6월 4일 지방선거 개표 방송을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아직 영상 품질 면에서 지상파나 종편 등 기성 방송에 못 미치지만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시청자들에게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엔 큰 걸림돌이 있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보고 싶은 방송을 선택하는 수동적 시청자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방송은 검색해서라도 찾아보는 적극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롬캐스트를 통해 대안방송들을 모아 볼 수 있는 앱과 같은 적극적 행동도 필요하다. 국내 크롬캐스트 사용자가 앞으로 10만 명을 넘어 계속 늘어난다면 자연스럽게 국내 콘텐츠도 늘어날 것이다.

6월4일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유튜브로 생중계한 팩트TV(위)와 박원순 서울 시장 후보 마지막 유세 장면을 취재한 오마이TV 유튜브 영상을 크롬캐스트를 이용해 TV 화면에 띄운 모습 ⓒ 김시연


크롬캐스트 맞대결 '완패'... '한국판 코드 커팅' 앞당길 수도 

결론적으로 지난 20일 동안 우리 집 거실TV 쟁탈전 결과는 크롬캐스트의 '완패'였다. 아이폰으로 찍은 영상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뮤직비디오 정도를 빼면 크롬캐스트로 볼 수 있는 '뻔한' 콘텐츠들로는 가족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찾아볼 시간에 IPTV는 이미 아이들을 자극하는 영상들을 실시간 내보내고 있었다. 결국 하루에 4시간 정도 TV를 본다고 했을 때 온 가족이 둘러앉은 3시간은 IPTV나 DVD에 할애했고, 크롬캐스트는 혼자서 1시간 정도 보는 데 그쳤다.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는 전체 TV 수신 가구의 90%가 넘는다. 이미 케이블TV나 IPTV의 다양한 채널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크롬캐스트로 넘어가기란 쉽지 않다. 전화나 인터넷과 결합 약정 같은 현실적 걸림돌도 있다. 

하지만 크롬캐스트는 단말기 값 외에 추가 요금이 거의 없는 반면 유료방송은 매달 1만 원 정도를 꼬박꼬박 부담해야 한다. 또 우리 가족만 해도 무분별한 TV 시청을 줄이려고 IPTV 해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크롬캐스트가 더 많은 사용자, 콘텐츠와 결합할수록 이와같은 '한국판 코드 커팅'도 늘 것이고,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재평가도 이뤄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크롬캐스트 리뷰용 제품은 제조업체에서 제공했습니다. 오마이뷰 리뷰를 마친 제품은 반납하고 있습니다.
#크롬캐스트 #대안방송 #구글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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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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