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하려면 한국사람 데려와"... 왜 이래야 하나요

[주장] 이주노동자 입원수속에 '내국인 연대보증'... 지나치다

등록 2014.06.07 09:12수정 2014.06.0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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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은 이주노동자 와완(23)씨는 진단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병원 측의 '연대보증' 요구였다. ⓒ freeimage


"퇴직금 받을 돈도 있고, 지난달 받은 월급도 그대로 갖고 있어요.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도와줘서 다 합하면 500만 원은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병원에서 입원이 안 된대요."
"왜요?"
"한국사람 데리고 오래요."
"회사에서 같이 간 사람 없어요?"
"회사에서는 입원하지 말고 인도네시아 가래요. 아무도 안 왔어요."

최근 들어 잦아진 기침과 탁해진 가래 때문에 병원에 들렀던 와완(23)은 엑스레이 촬영 결과, 폐암으로 의심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비록 기침이 오래되긴 했지만 그건 공장 먼지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고만 있었다. 그래서 의사의 권유에 따라 CT촬영과 조직검사를 한 결과 폐암 4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와완은 믿을 수가 없었다. '전이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 1년 정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은 아직 20대 초반인 와완이 받아들이기에는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은 와완이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하겠다고 하자, 회사는 폐암은 장기치료가 필요한 병인 만큼 퇴사 조치한다고 통보했다. 스물 갓 지나 한국에 와서 줄곧 3년을 일한 회사라 원망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6·4 지방선거 다음 날, 와완은 고용해지 통보에도 입원치료를 받고자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병원은 한국인 연대보증을 요구했다. 사측에서는 이미 해고 통보를 한 마당이라, 와완과 그의 친구들은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을 찾아가서 연대보증을 부탁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다행히 와완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의 협조로 입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현재 와완은 국내 진료를 계속할지 출국을 할지 계속 고민 중이다.

연대보증 섰다가 가집행 당한 활동가

입원 약정을 할 때 병원에서 연대 보증인을 요구하는 문제는 오래 전부터 논란이 돼왔다. 내국인도 병원 입원을 할 때 연대보증을 요구받기 때문에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하고 있던 이주노동자가 입원한다고 하면 해고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주노동자에게 내국인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것은 진료 거부와 다를 바 없는 행위다.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의 연대보증이 없으면 입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왜 연대보증을 거절했을까. 단체활동가 중에는 연대보증을 섰다가 상당한 곤란을 겪은 이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연대보증을 섰다가 월급과 집까지 압류되는 일을 경험한 활동가들이 있어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는 쉽게 연대보증을 서주지 않는다.

지난 2005년 9월, 심근경색으로 생명이 위독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의 이아무개 활동가는 "얼른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라는 병원 측의 설명에 급하게 진료비 연대보증을 섰다. 하지만 환자는 심장수술을 받은 지 20여일 뒤 숨졌다. 수술을 받고 사망한 이주노동자에게는 형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병원에서는 외국인은 연대보증을 설 수 없다고 거부했고, 환자를 데리고 갔던 이씨가 연대보증을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씨는 병원으로부터 4300만 원가량의 액수가 적힌 진료비 청구서를 받았다. 이에 이씨는 시민단체 후원회 행사 등을 통해 2200여만 원을 갚았으나 나머지는 갚지 못했다. 2008년, 법원은 이씨에게 진료비 가집행을 통보해왔다. 가집행은 1심 또는 2심 판결에서 원고가 승소할 경우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을지라도 이를 가지고 강제집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이씨는 연대보증 약정 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당시 미지급액 2100만 원은 이주단체 활동가의 1년치 급여와 비슷했다. 누군가가 선한 일을 하다가 월급뿐만 아니라 집에까지 압류가 들어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만일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이 사회에서 누가 선한 일에 발 벗고 나설 수 있을까.

지급능력 없는 환자와 연대보증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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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육종으로 치료받았던 몽골 아이수술 후 약해진 체력으로 심정지를 당하기도 하고, 투석을 받기도 했었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보호자인 아빠가 사라져 버린 일이었다. ⓒ 고기복


연대보증인은 주채무자와 똑같은 법적 책임을 진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가 사망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자의 경우, 환자는 병상에 누워있는데 보호자가 사라져 크게 곤란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2010년도에 골수육종, 즉 암에 걸린 몽골 아이가 입원할 때 연대보증을 섰었다. 당시 나를 찾아왔던 환자의 아버지는 딸아이 치료를 위해 몽골에 있는 집과 전 재산을 처분하고 한국에 왔다고 했었다. 처음 병원에 입원할 때는 열흘 정도의 항암치료 후, 10개월 정도 동안 주기적인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입국 당시 너무 많이 진행된 암으로 인해 체력이 소진됐던 아이의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절단 밖에는 방법이 없었고, 결국 한 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 후 아이는 생사를 넘나들며 한동안 응급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야 했다. 그런데 입원 치료를 시작한 지 다섯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보호자인 아버지가 사라져 버렸다. 아이 아빠는 아이가 절단된 다리와 항암치료 중 발생했던 심정지로 뇌기능 손상을 안고 출국하기까지 3주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환자의 퇴원을 앞두고 보호자가 사라져 버린 셈이었다. 병원에서는 입원 당시 보증을 섰다는 이유로 나에게 보호자의 행방을 물었지만, 나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당시 퇴원 한 달 전에 중간정산을 할 때 4600만 원의 병원비가 청구돼 있었는데, 모 기독교 사회복지 모금단체의 협조를 얻어 170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중간 정산한 상황이었다. 아이 아빠가 사라지면서 아이와 아이 엄마의 귀국항공료, 귀국 준비금 등을 포함하면 3000만 원 넘는 돈을 연대보증인인 내가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경로로 후원자들을 찾아야 했다. 결국 모든 금액을 지급하진 못하고 병원 측의 양해를 얻어 정산을 끝냈던 기억이 있다. 사립병원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국립병원이나 대학병원은 병원비 감면에 대한 병원장의 재량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강제집행, 압류가 들어온다.

병원이 영리법인도 아닌데... 연대보증은 왜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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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입원 수속에 연대보증인을 두게 하고, 이 연대보증인을 내국인으로 한정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 freeimage


병원은 영리법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선단체도 아니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입원할 때 일종의 진료계약서라고 할 수 있는 입원약정서를 받는다. 입원약정서는 환자가 입원생활 등 지켜야 할 의무사항 또는 협조사항을 확인하고 서명 날인하도록 돼 있다. 입원약정서의 주된 목적은 환자로 하여금 진료비를 부담하겠다고 하는 약속을 받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 약정서를 쓸 때 병원에서는 진료비에 대한 채권행사를 용이하기 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연대지불보증을 요구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악성 미수금 발생을 최소화하고, 진료비 회수를 원활하게 하는 적극적인 수단인 셈이다.

좋게 보면 보증인 없이 입원한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 혹은 보호자가 사라져 버릴 경우 발생할 문제를 미리 막겠다는 취지에서 연대보증을 세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와 달리 이주노동자의 경우 내국인이 보증을 서지 않으면 입원 수속을 거부하는 진료 거부 행위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논란의 빌미가 된다.

흔히 하는 말로 '돈 없으면 입원도 못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된 환자의 경우 60%의 의료비를 공단에서 보장하고, 의료급여는 비급여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료비를 국가가 보장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연대보증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와완은 상해보험 가입자였다. 질병에 의해 장해나 사망을 할 경우 최대 1500만 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 즉 병원 입장에서는 보험가입 환자가 생길 경우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 입원 수속에 연대보증인을 두게 하고, 이 연대보증인을 내국인으로 한정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이주노동자 건강권이 내국인 연대보증인 제도로 인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입원수속 때 국적에 따른 차별 없어야

지난해 7월부로 모든 제2금융권에서 연대보증이 폐지된 것과 달리 병원에서는 아직까지 연대보증으로 인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는 의료기관이 스스로 자정 노력을 통해 입원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면 가장 좋게 해결될 수 있다. 사실 그 이상의 해결책은 없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해결책은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주노동자가 입원수속에서 국적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에 연대보증인 금지 규정을 추가하면 된다. 만일 의료계의 반대로 의료법 개정이 어렵다면 최소한 '내국인'에 한해 보증을 서도록 하고 있는 관행이라도 뜯어고쳐야 한다.

이것은 명백하게 국적에 의한 차별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아프고 힘들 때 내국인이 힘이 돼 줄 수 있긴 하지만, 1차적으로 힘이 돼 줄 수 있는 사람은 동료 이주노동자다. 이주노동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돕고자 하는 노력을 병원이 제도적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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