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양보하고 욕먹었어요... 뭘 잘못한 거죠?

[공모-출퇴근길의 추억] 호의는 '매의 눈'으로 관찰한 뒤 베풀어야...

등록 2014.06.08 17:59수정 2014.06.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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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의 한 장면. 금빛나(전혜빈 분)는 난생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다가 기절했다. ⓒ KBS


배불뚝이가 되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작년 여름은 너무나도 힘겨운 나날이었다. 임신을 하니 땀은 왜 그렇게 나고, 잠깐만 서 있었을 뿐인데도 어찌나 다리는 저려오던지. 일반석 앞에 서 있으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질끈 눈을 감았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으면 가끔 어떤 노인분들은 내 앞에 서서 '우리는 아무리 배가 불러도 밭에 나가 일도 했었네', '요새 애들은 임신한 게 벼슬이라도 한 듯 너무 당당하네' 등의 이야기를 하시며 도무지 앉아 있기 민망하게 하시기도 했다(이건 물론 정말 가끔이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내가 일어나면 얼른 앉으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서 지하철을 꼬박 65분을 타야 직장까지 갈 수 있는 출근길. 열 정거장을 지날 때까지 서 있어야 했던 날은 회사에 도착하면 마치 저녁 6시는 된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한 지금. 사람은 겪어본 만큼 안다고 했던가? 어쩌다 눈 앞에 임신한 여성들이 보이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얼마나 다리가 터질듯이 부었을까? 한숨은 얼마나 날까? 등골을 따라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을 텐데' 하며. "고맙습니다" 하며 자리에 앉는 그녀들을 보면 "뭘, 당연한 걸요. 오늘도 힘내세요"라는 답인사가 자동응답기 마냥 튀어나온다. 작년 여름날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셨던 많은 분들을 생각하며, 다시금 마음의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말이다.

지난 월요일이었다. 8시까지 출근인 우리 회사. 늘 타던 시간의 전철을 타지 않으면 다소 다급하게 뛰어야만 지각을 면할 수 있다. 그날은 늘 타던 시간의 전철을 겨우 잡아 탄 날이었고, 그 전철을 그대로 쭉 타고 가야 7시 55분쯤 사무실에 "세이프!"를 외치며 들어갈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 금쪽같은 지하철 자리를 양보했더니...


유난히 월요병을 심하게 앓는 난 그날도 지하철에 타자마자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화예고 교복을 입은 학생이 보였다. 그 학생은 분명 한 정거장 뒤면 내릴 것이니. 싱긋 웃으며 그 학생 앞에 섰고, 역시나 그 학생은 다음 역에서 내렸다. 냉큼 자리에 앉아 신나게 '헤드뱅잉'을 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다 언듯 눈이 떠졌는데, 내 눈 앞에 한 임산부가 서 있었다. 만삭이 된 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손잡이를 잡고 깊은 한숨을 쉬고 있는 그녀는 무척 힘겨워 보였다. 임신을 하면 유독 몸무게가 많이 느는 산모들이 있는데, 그녀도 그런 듯했다. 나 또한 20킬로그램 가까이 늘어난 몸무게 때문에 더 힘들어 했는데…. 아무리 월요일이고 내 몸도 힘들지만 양보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가방을 안고 일어나 그녀에게 말했다.

"어유, 제가 잠이 들어서 앞에 이렇게 계신지를 지금 알았네요. 얼른 앉으세요."

그런데 이분, 대답이 없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본다.

"괜찮아요, 이럴 때 다 양보받는 거죠.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얼른요."

다시 한 번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묵묵부답이다. 혹시 귀가 잘 안 들리시나 싶어 다시 또박또박 입 모양을 크게 하며 말을 걸었다.

"얼른 앉으세요. 힘드실 것 같아요."

그런데 그녀가 하는 대답은 "대체 왜 저에게 자릴 양보하시는데요?"였다. 난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그런데 눈치 없던 나는… "임신 중에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앉아 가세요. 얼마 안 되는 거리라도 앉으시는 게 나아요" 라고 말했고, 그녀는 굉장히 불쾌한 얼굴로 변했다.

"기가 막혀! 월요일 아침부터 지금 사람 놀리는 거예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옆 칸으로 휙 걸어갔다. 난 멍해졌다. 그때까지도 난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대체 저 분은 왜 호의를 무시했으며 나에게 화를 내기까지 하는 건가, 내가 무얼 잘못한 건가.

"기가 막혀! 월요일 아침부터 지금 사람 놀리는 거예요?"

그러다 곧 파악이 되었다. 난 임산부가 아닌 보통 여성에게, 배가 조금 나온 여성을 임부라고 칭하며 자리를 양보하려 들었던 것이다. 그 여성은 내가 자길 놀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주변 사람들은 키득거리기 시작했고 난 도무지 그 칸에 그대로 타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난 다음 정거장에서 황급히 내려버렸다. 그리고 다음 전철을 탈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난 결국 8시 3분쯤 회사에 들어와서 지각을 하고 말았다. 잘못된 호의 탓에.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행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결과가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했다면 그건 내가 잘못한 게 맞다. 나의 서툰 호의는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한 여성을 언짢게 만들었고, 난 지난주 내내 늘 타던 지하철 칸에서 앞뒤로 2칸 정도 뒤로 자리를 옮겨 타게 되었다. 행여나 그분을 마주치게 되면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출퇴근길. 모두가 지친 그 길. 하지만 꼭 가야 하는 그 길. 한번 엉덩이 붙인 자리를 쉽게 뜨지 못하는 그 길. 그래서 도무지 호의를 베풀기 어려운 그 길. 그런데도 호의를 베푸는 이 도시의 선한 시민들. 하지만 호의를 베푸시기 전, 혹시 이게 잘못된 호의가 아닌지 한 번 더 꼭 확인해보시길. 내 맘 좋자고 베푼 호의가 타인에게는 불쾌한 기억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PS. 그날 저 때문에 불쾌해진 그분, 정말 죄송합니다. 놀릴 의도는 정말 없었습니다. 부디 기분 푸시고, 다음에 지하철 출근길에서 뵙게 된다면 웃는 얼굴로 뵙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 월요일! 그날의 출근길에서도 힘내세요!
덧붙이는 글 '출퇴근길의 추억' 공모 응모글입니다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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