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바쁘거든..."... 이런 말 하기 싫어요

[교실이야기] 이청연 인천시교육감 당선인께 쓰는 편지

등록 2014.06.11 19:25수정 2014.06.11 20:17
0
원고료로 응원
안녕하세요. 저는 부평에 있는 인천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그런데 6·4지방선거 투표일에는 출구조사 결과가 정말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온 가족이 큰 텔레비전이 설치된 식당을 찾아가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후 6시정도가 좀 지나니 '이청연 후보가 앞선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요동치고 감격스러운 걸까요.

2003년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나근형 현 교육감이 2001년부터 지금까지 12년 동안 교육감직을 수행했으니, 나 교육감 말고는 다른 교육감을 경험해보지 못한 셈입니다. 그동안 교육감 선거는 임명직에서 선출직으로 바뀌었습니다.

민선 첫 교육감 선거를 실시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나 교육감이 후보 투표용지 기재 순 추첨에서 2순위를 뽑고, 선생님(이청연)이 5순위를 뽑았을 때는 선생님이 야속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선거가 얼마나 아쉬웠으면 숫자를 잘 기억 못하기로 나름 유명한 제가 3000여 표인 0.3%포인트 차를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교육감 직접선거를 두 번 거치며 선생님이 당선되기를 그토록 바랐을까요.

왜, 이청연 교육감이 당선되기를 바랐을까

첫 발령을 받고 배정받은 교실은 어학실로 사용하던 곳이어서 부족한 가구와 물건이 이것저것 많았습니다.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구 선생님, 학교는 다 알아서 해야 해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어요. 선생님이 알아서 필요한 물건들 품의하고 기안해야 해요"라는 같은 학년 선생님의 말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품의는 뭐고 기안은 뭘까,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학년부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 선생, 애들 못 가르치는 건 티 안 나지만, 공문 늦게 내는 건 바로 티가 나요. 공문 제출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 맞춰서 해야 해요."

첫 발령 받은 병아리 교사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학교는 다 알아서 해야하는구나. 그리고 애들 가르치는 것보다 공문이 더 중요한 곳이구나'

첫 학교에서 다음 학교로 옮기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상담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들로 쉴 새 없이 바빠졌고,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나면 모든 교사가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러더니 세 번째 일제고사(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한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평가)를 보던 2010년에는 시험 준비 때문에 아이들이 알아듣든 말든 후다닥 주입식 수업으로 진도를 다 나가버리고는, 한 달 정도를 매일같이 아이들에게 문제집을 나눠주고 풀라고 했습니다.

그걸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남겨서 푼 문제를 또 풀라하고 또 풀라고 해서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외우라고 닦달했어요. 마치 우리 학교에 학업성취도 '미 도달' 학생이 많으면 내 교직인생이 끝날 것처럼, 그렇게 문제풀이로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저를 보았지요.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여름방학을 보낸 후 개학하고 나서 국어 수업을 하는데 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아이들에게 "우리 교실은 모두 평등한가?"라는 질문을 했다가 기막힌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온통 아이들 시험점수만 신경 쓰며 살았던 1학기에 교실 안에서는 일명 '삥 뜯기'부터 심부름시키기까지 다양한 학교폭력이 있었더군요. 그래서 학교생활이 힘들고 괴로웠던 아이들이 있었는데, 너무 무서웠던 건 제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학기에는 아이 한 명 한 명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교실 분위기와 문화를 새로 만드는 데 집중해야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아이들에게 죄스러워서 교사를 앞으로 계속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제 모습이 어땠는지 아세요. 아이들을 복도에 세워놓고 상담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더군요.

"선생님 지금 바쁘거든. 우리 이야기 10분 만에 끝내야해. 그러니까 그때 있었던 일들 빨리 얘기해봐."

편안하고 안정된 공간에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줘도 이야기를 꺼내 놓을까 말까 한 아이들에게 그러고 있더라고요.

그 후 2011년을 넘어가면서 대한민국은 학교폭력 문제로 들썩였습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어른들은 말이 많았지만 이미 학교폭력으로 인한 괴로움 때문에 여러 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였고, 그 이후에는 해병대 캠프 사고로, 세월호 침몰 사고로, 그리고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많은 아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짧은 교직 기간 가장 확실히 깨달은 점은...

제가 짧은 교직 기간 가장 확실히 깨달은 점은 교사가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으면 아이들에게 어떤 배움도 성장도 변화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고, 아이들이 무엇이 힘든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우리가 들어주고 신경 쓰지 않으면 아이들은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다 세상을 등진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교육청은 교사들에게 '너희들이 뭔가 대단한 것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증명해보이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안 한 것도 했다하고, 한 것은 더했다고 하면서 서류를 꾸미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자기계발을 하라고 연수시간까지 정해주면서 다그쳤지만, 정작 교사들이 한계에 부딪혀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교사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원해주는 교육청 관계자는 없었습니다.

교사는 누가 도와주든 안 도와주든 아이들 앞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끝까지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며 아이들을 돌봐야합니다. 하지만 교사도 인간이기에 불완전하고 미성숙합니다. 이 때문에 어떤 조직보다도 서로 힘과 지혜를 모아 협력해나가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전함과 미성숙함을 조금씩 극복해 나가야합니다.

그러나 차등 성과급과 교사 평가, 학교 평가로 인해 교사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기는커녕, 누가 더 일 많이 했는지 누가 더 고생했는지 누가 더 훌륭한 지를 가르며 아귀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당선이 기뻤습니다. 이제는 교육청이라는 거대 권력이 제 비겁함을 자극하기보다는 격려와 지지와 힘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일개 초등학교 교사가 교육감 당선자께 감히 몇 가지 부탁합니다.

첫째, 교사들이 공문 처리하며 실적을 만드는 일보다 수업과 아이들 상담에 집중할 수 있게 배려해주세요. 둘째, 시간 채우기 연수가 아닌 정말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연수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해주세요. 셋째,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성과급 에스(S)와 학교평가 에스(S)가 아닌 아이들이 '학교 가고 싶어요'라고 외치는 함성에서 느낄 수 있게 평가 제도를 개선해주세요.

저도 아이들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4년 뒤에는 인천시민들이 '그래 우리가 교육감은 참 잘 뽑았지'하며 흐뭇해하는 인천교육의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진보교육감 #이청연 #교육감선거 #참교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