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노끈으로 친구 깨운 사연... 제겐 기쁨이었죠

[공모 - 출퇴근길의 추억] 먹거리 나누는 출근길

등록 2014.06.12 13:53수정 2014.06.1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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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이나 출근길의 추억 중의 하나는 마음에 둔 사람을 행여나 만날세라 또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 집앞을 지나가다 창문을 쳐다봐도 설레는 낭만적인 것 아닐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고 현실적이 되다 보니 마음이 설레는 일에서 마음이 뿌듯해지는 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졌다.

한때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고 사회복지일을 하면서 출근할 때면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밥과 반찬 등을 배달하는 서비스가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게 없었다.

아픈 동네친구,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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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줄을 달면 어떻겠노? 잠자기 전에는 발목에 줄을 매서 자라고 해라이!" 친정엄마의 말씀 덕분에 친구는 매일 아침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답니다. ⓒ free image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왔던 동네 친구 하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몸이 많이 불편해 스스로 밥을 못해먹었고 늘 약을 먹어서 잠이 많았다. 그리고 나처럼 귀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재활치료를 받으러 가야만 했다.

그 친구는 밥도 먹어야 했고 약을 먹어야 했다. 그때는 카카오톡이 없었던 때라 따로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고, 초인종을 눌러도 안에 있는 친구가 듣지를 못하니 그저 답답할 노릇이었다. 당시에는 살아계셨던 친정 엄마가 아이디어를 내셨다.


"야야, 줄을 달면 어떻겠노? 잠자기 전에는 발목에 줄을 매서 자라고 해라이! 그러면 니가 내가 아침도시락을 너한테 싸주면, 니가 출근할 때 줄을 당겨서 창문으로 전해주면 잠도 깨고 도시락을 묵을 것 같은디…"

그 뒤부터 출근길이면 창문 밑에서 줄을 당겨서 친구를 깨우고 도시락도 전해줬다. 처음에는 줄을 한두 번만 당겨도 금세 창문에 얼굴을 내밀던 친구였다. 하지만, 어떤 때는 줄을 억세게 당겨야 깼다. 어떤 때는 노끈이 끊어지기도 했다. 이런 날은 그냥 도시락만 대문 앞에 두고 지나쳐야만 했다.

그 다음부터는 잘 끊어지지 않는 매듭끈으로 바꿨다. 친정엄마와 나는 한동안 배꼽을 잡고 깔깔 웃으며 재미있어 했다. 친구는 매일 도시락도 잘 먹고, 쾌유도 빨랐다. 그는 무사히 서울로 진출했으며, 본인이 원하는 대로 화가로 성공했다.

나누는 일은 품이 많이 들지만 나누는 사람들 사이의 정겨움과 향기는 아무리 나눠도 줄지 않는다. 마치 꽃향기를 나눠 맡는다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케이크 위의 촛불도 나눠 불을 붙인다고 해서 그 빛이 줄어드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먹거리 나누는 출근길

지금은 시집간 딸을 둔 엄마가 되다 보니 매일 출근길에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옆동네의 딸 집 앞 골목길을 지나간다. 신호등이 없는 골목길이다 보니 출근 시간에는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시간이 단축되기도 한다. 딸이 사는 아파트 정문을 지나가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사랑의 염원을 화살에 묶어 보낸다.

'딸아! 부디 오늘도 무탈하고, 많이 웃고, 잘 보내라!'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나 어젯밤에 담가뒀던 열무김치를 통에 담고, 육개장도 딱 두 번 먹을 것만 보온병에 담았다. 또 물에 불려 삶아 씻어뒀던 메주콩도 곱게 갈아 콩물을 만들어 놨다. 그리고는 옆동네에 사는 딸집 대문에 걸어놓고 연구실로 향했다.

나는 몸이 많이 아프지 않은 날이면 연구실에 가 두 시간 정도 묵향을 피우고 화선지에 글씨 농사를 짓고 난 뒤 일터로 출근한다. 오늘도 "얘야! 대문 앞에 봐! 오늘 하루도 서로 힘내자!"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출근했다. 딸의 대답은 "오우! 엄마 땡큐! 안 그래도 뭐 먹을까 했는데..."

마음이 뿌듯하다. 밤까지 강의를 많이 하는 딸이라 그렇게 먹을 것을 주면 국수를 삶아서 열무국수를 시원하게 먹기도 하고, 콩물을 갖고 다니면서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고 한다. 나는 딸이 속이 든든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뿌듯해지고 넉넉해진다.

으레 출근길의 추억이라 하면 차량 혹은 교통수단에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먹어야만 살 수 있고 정을 나눠야만 마음이 채워지는 인간이다 보니 나는 먹거리와 관련한 추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살아있기에 뭔가 내 손으로 만들 수 있고, 그것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기쁨은 인생의 큰 선물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출퇴근길의 추억 공모 응모글입니다.
#먹거리 나누기 #소중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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