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국가' 대한민국, 그날이 머지 않았다

EU로부터 '불법조업국' 최종 지정 위기... 서아프리카 불법조업 대책 마련해야

등록 2014.06.25 16:13수정 2014.06.25 16:13
5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해양수산부는 IUU 어업 근절을 위해 지난 17일 환경정의재단(Environmental Justice Foundation)과 양자협의를 개최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고 밝혔다. ⓒ 해양수산부


해양수산부는 지난 17일 국제환경단체인 환경정의재단(EJF)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 내용은 ▲ 서아프리카 수역 내 한국어선에 대한 감시 및 통제 강화 ▲ 한국 정부와 EJF간 정보 공유 ▲ IUU(llegal, Unreported, and Unregulated, 불법, 비보고, 비규제) 어업 근절을 위한 상호 노력 지원 및 홍보 협력 등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해수부는 이번 MOU 체결에 대해 우리나라가 유럽연합(EU)에서 불법조업(IUU)국으로 지정되는 것을 막기 위한 총력전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왜 '예비 불법조업국'이 되었나

a

인도네시아 선원 수기토(Sugito)와 시소로(Sisworo)가 지난 2012년 6월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조오양 본사 앞에서 자신들을 돕고 있는 활동가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사조오양의 인도네시아 선원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임금체불 해결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불법조업국'이란 한마디로 '해적국가'를 뜻한다. 우리가 흔히 해적국가라 하면 소말리아를 떠올리는데, 소말리아는 '해적질'하는 군벌들이 있는 국가이지 국제사회가 말하는 해적국가는 아니다.

반면, 국제사회가 말하는 해적국가는 ▲ 무분별한 남획과 ▲ 허락되지 않은 곳에서의 조업을 일상적으로 일삼으며, ▲ 해양환경과 자원을 해치고 ▲ 조업이 이뤄지는 해역에 인접한 국가와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나라를 뜻한다.


EU는 작년 11월 23일, 우리나라 원양어선들이 서아프리카 연안에서 제한된 어획량을 초과 남획하고 있고, 어선 위치 추적 장치 의무화를 불이행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를 예비 불법조업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예비 불법조업국은 축구 경기로 치면 옐로 카드를 받은 격이고, 불법조업국은 레드 카드를 받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 경기에서 레드 카드를 받으면 퇴장하듯이, 만일 우리나라가 EU에서 불법조업국으로 지정될 경우에는 연간 1억 달러 규모인 EU에 대한 수산물 수출이 전면 금지되고, 우리나라 원양어선들은 EU 항구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거기에 확인 사살하듯 '해적 국가'라는 깃발을 높이 매단 꼴이 되어 엄청난 국가 이미지 실추를 가져오게 된다.

작년 EU에서 불법조업국으로 지정된 국가는 벨리즈, 캄보디아, 기니아였고, 예비 불법조업국으로 지정되었던 나라는 피지, 파나마, 스리랑카, 토고, 바누아투 외에 가나와 네덜란드령 쿠라카오와 대한민국이었다.

그 중 피지와 바누아투, 토고는 불법조업 관련한 시정조치를 충분히 하여 금년 초에 '예비' 딱지를 뗐다. 그와 달리 EU는 우리나라를 예비 불법조업국에서 최종 불법조업국으로 지정하겠다고 통보하고, 지난 5월 9, 10일 양일간 서울과 부산에서 실사를 벌였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는 해적국가 낙인이 찍힐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은 지난해 1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수역 내 어선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한국을 불법조업국으로 지정했다. 지난 2012년에는 뉴질랜드 해역에서 사조오양 소속 원양 어선의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노예노동 문제가 불거지자,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호주 등에서도 한국에 대한 어업 규제 논의와 이미지 추락이 이어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해양수산부가 EU 해양수산국, 통상국 관계자들에게 열심히 우리나라의 불법조업 관련 개선 의지를 설명하고 있으나, 분위기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결국 우리 정부는 불법조업국 지정을 막기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그 와중에 EJF와 MOU를 체결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영향력 높아지고 있는 환경정의재단

환경정의재단(EJF)은 영국에 본부를 두고 유럽과 서아프리카를 거점으로 IUU 어업 근절을 감시하는 단체다. 최근에는 그 활동 영역을 아시아로 넓히고 있고, 환경 외에도 인권, 노동 문제까지 폭넓게 개입하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들의 사회의식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즉 윤리경영은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이런 면에서 선진국에서는 환경, 노동, 인권단체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EJF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이 단체에서 창립 이후 매년 발표하는 보고서는 EU와 미국 등에서 정책 입안 자료로 쓰일 정도로 그 신뢰도가 상당하다. 그 영향력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린피스에 버금간다고 한다.

예를 들면 미 국무부는 2014년도 인신매매보고서(Tip Report, Trafficking in Persons Report)에서 태국을 최하위 등급인 3등급으로 강등했다고 지난 20일 발표했다. 미 국무부는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각국 정부, NGO, 언론 등을 통해서 입수된 정보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2001년 이래 매년 의회에 제출하고 있다. 미 국무부 인신매매 보고서는 안전 등급인 1등급(Tier 1)부터 2등급(Tier 2), 2등급 요주의(Tier 2 Watch), 최악인 3등급(Tier 3) 등 4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EJF는 지난 5월 '태국에서의 미얀마 이주노동자 해상 노예제도'를 고발한 2014년 보고서 결과를 토대로 미 국무부에 태국의 인신매매 등급을 3등급으로 강등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해 왔다. 중요한 것은 미 국무부가 인신매매보고서에서 요주의 리스트(Tier 2 Watch)에 속한 2등급에 속한 국가의 수를 제한하는 법이 올해 처음 시행되면서 EJF의 요구가 현실화되었다는 점이다.

3등급은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최소 기준도 충족하지 못할 뿐 아니라, 노력조차 없는 국가라는 의미다. 2000년 제정된 미국 인신매매희생자보호법은 3등급 국가에 인도적 지원이나 대외 원조자금 지원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태국은 미국으로부터 원조 중단, 수출 제한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고 국제사회의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EJF는 2013년 3월 '바다의 노예'란 보고서를 통해 EU에 태국에 대한 IUU국 지정을 강력하게 촉구한 바 있다. 이후 EU는 태국 수산업계에서 자행되는 이주노동자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금지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면서 EJF의 영향력을 확인 시켜 주었다.

이런 태국의 예를 통해 해수부는 EJF의 협조 여부에 따라 불법조업국으로 지정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MOU 체결을 한 것이다.

한국은 해적국가 지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EJF와의 MOU가 해적국가 지정을 벗어나는 유일한 해법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 정부는 알아야 한다.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EJF는 민간단체이긴 하지만, 한국 어업을 견제하고 자신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영국의 이익을 일정 부분 대변하기도 한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 말은 EJF의 보고서가 인권적인 관점에서 작성되기는 했지만, 이 보고서가 영국 수산업을 보호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즉, 해수부가 EJF만을 믿고 있다가 오히려 망신을 더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수부는 우리나라가 IUU국 지정 경고를 받는 배경으로, 서아프리카에서의 불법 조업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외에도 원양 어선만이 아니라 국내 취업 중인 선원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돼 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간 원양 어업은 오래전부터 남획과 국제적인 규칙 내지 기준의 위반 그리고 선원들 특히 이주노동자 선원들의 인권 유린이라는 세 가지 큰 문제점들로 인해 비판 받아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라도 한국이 '해적국가'라는 낙인을 벗고 싶다면, 세계 어업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해양생물 다양성 보존과 인권보호 등을 위한 시스템 마련과 우리 스스로 감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사실상 현재 불법조업국으로 지정된 나라들은 모두 생존형 조업을 할 수밖에 없는 저개발국가들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연간 무역규모가 2011년에 이미 1조 달러가 넘었고, 이는 세계 7~8위 수준이다. 그런 나라가 해적 국가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것은 국격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대외신인도 역시 추락해 수산업 이외 수출에 있어서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들과 아시아 각국에 개발원조를 하면서도 불법조업과 인권침해 문제 해결에는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 없이는 해적국가 지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해적국가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해적국가 #환경정의재단 EJF #불법조업국 IUU #인신매매보고서 TIP REPORT #이주노동자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