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밀애를 지켜본 사이프러스 나무의 운명

[모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열 네 번째 이야기

등록 2014.08.21 11:25수정 2014.08.2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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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헤시라스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길 태양의 해안으로 불리는 코스타델솔해안.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과 푸른 바다, 하얀 집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 송진숙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이 비치는 태양의 해안, 코스타델솔

알헤시라스의 아침은 상쾌했다. 날씨는 화창하고 하늘엔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었다. 들뜬 기분으로 평소보다 일찍 준비를 하고 나왔다. 숙소가 바닷가 근처였기에 해변을 따라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모로코에서 계속 헤매느라 앞으로의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에 바로 터미널로 향했다.


다음 여행지인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직원에게 물었더니 직행편과 경유편이 있다고 한다. 직행은 오후4시에 출발하며, 말라가를 경유하는 버스는 11시에 있단다. 그러나 4시간이 넘게 걸린다 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맞은편에 있는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는 11시 45분에 출발하여 3시간 반에서 4시간이 소요된단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출발 시간이 조금이라도 빠른 버스를 타기로 하고 표를 끊었다.

알헤시라스에 그라나다로 가는 길 2 올리브 과수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 세계 최대의 올리브 생산국인 스페인에서도 최대산지인 안달루시아 지방은 고품질 올리브를 생산하기로 손꼽힌다. ⓒ 송진숙


버스는 해안가를 따라 달린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바닷가에 위치한 말라가는 휴양도시로 유명하다고 하더니 이유를 알 것 같다. 반짝이는 지중해와 그 옆에 늘어선 하얀 집들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지중해와 닿아 있는 이 해안을 코스타델솔해안 안, 즉 태양의 해안이라고 부른단다. 그 이름처럼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이 바다와 하얀 집들을 더욱 빛나게 하는 듯하다.

저 멀리 서 있는 눈 덮인 하얀 산은 아마도 시에라 네바다 산맥인 모양이다. 좀 더 달리니 넓게 펼쳐진 올리브 농장도 보인다. 이런 다양하고 빼어난 풍경을 품고 있는 스페인이 부럽다. 함께 경치를 감상하고 싶어서 자고 있는 딸을 깨웠더니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다시 잠에 곯아떨어진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계속 창밖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더니 어느덧 말라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일정이 여유로웠다면 여기서 내려 지중해 해변을 걸어 보았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4시간 반 만에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알헤시라스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길 3 그라나다에 가까워질수록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눈 덮인 산도 가까워진다. ⓒ 송진숙


무사히 그라나다에 도착하긴 했지만 이곳에 알함브라 궁전이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였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검색을 할까 하다가 관광지로 가면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여행 경비를 최대한 줄이고 싶어하는 딸은 택시 대신 버스를 타자고 한다. 시내버스 정류소로 나와서 카테드랄이라는 글씨를 찾아보았다.

큰 도시라면 대성당인 카테드랄이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카테드랄을 지나가는 버스들 중 한 대를 탄 후, 긴장을 하며 밖을 내다보았다. 딸은 안내방송을 알아듣지 못할 것 같다며 지도어플을 켜서 GPS로 현재 위치를 계속해서 살핀다. 무사히 카테드랄 근처에서 내린 후, 성당을 향해 걸었다. 마침 성당 앞에서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청년 둘을 발견했다.


우리는 우선 이 근처에 괜찮은 숙소가 있냐고 물었다. 청년들은 트윈룸을 10유로에 잡았다면서 자기들이 묵는 곳을 알려주었다. 위치 설명을 듣고 있는데 집시처럼 보이는 여자가 나뭇가지 한 다발를 들고 접근한다. No!를 외치며 길을 가려고 하니 여자는 청년들에게 다가가 강제로 나뭇가지를 쥐어 준다. 두 명 다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아서 그 나뭇가지를 받으면 돈을 주어야 하니 받지 말라고 충고했다.

우리 말을 알아 들었는지 여자는 우리 쪽을 보며 화를 냈다. 결국 청년들은 나뭇가지를 건네받고는 동전 몇 푼을 주었다. 우리의 의아한 표정을 보던 청년 중 하나가 자긴 스페인어를 할 줄 알기에 여자분의 사정을 듣다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머쓱해진 나는 청년들이 알려 준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숙소로 찾아가 방값을 물으니 택스 포함해서 25유로란다. 그 청년들은 숙소를 구하고 바로 카테드랄로 왔다고 했는데 그 사이에 방이 다 나갔나? 다른 곳을 찾기도 번거로우니 그냥 묵기로 하고 25유로를 지불했다. 짐을 내려 놓고 마음 편하게 와이파이가 되는 방에서 그라나다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세비야에서 모로코를 향해 떠난 지 닷새 만에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딸은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검색하더니 나가서 구경을 하자고 한다. 먼 곳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하니 근처에서 거리 구경을 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베라크루즈 세트메뉴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베라크루즈의 코스요리. 주인할아버지의 후한 인심을 느낄 수 있다. ⓒ 송진숙


카테드랄 근처로 가서 성당을 둘러보고 주변 상점과 진열된 기념품들을 구경하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진다. 저녁은 아까 검색해 둔 베라크루즈라는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식당에 들어가니 젊은 여자 직원이 웃으며 '어서오세요.'하며 반긴다. 인터넷에서 알아본 바로는 이곳은 한국인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으로 가격도 저렴하고 친절해서 한국인 사이에서 유명하단다.

한국어로 된 메뉴 설명을 보고 코스로 나오는 세트메뉴와 와인을 시키니 곧 음식이 나왔다. 딸은 오랜만에 국물 요리를 본다며 스프를 허겁지겁 먹는다. 뒤이어 메인 요리를 먹고 있을 때 쯤 주인 할아버지가 들어오신다. 인상 좋은 할아버지는 한국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돌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음식 맛이 좋다고 했더니 할아버지께서는 체리모야라는 과일도 한 번 먹어보라며 서비스로 주신다.

딸과 함께 다니는 모습이 새로웠는지 할아버지는 우리 테이블에 앉으시더니 스페인 어디를 다녀왔느냐며 묻는다. 마드리드와 세비야를 거쳐 왔다고 했더니 스페인 어디가 괜찮은지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신다.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나 가족들과 한국에 들어와서 살다가 젊을 때 전세계 이곳저곳을 다녔다고 한다.

태권도 사범을 하다가 스페인에서 부인을 만나 결혼하며 스페인에 정착하게 된 할아버지는 현재 아들, 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아까 우리에게 한국말로 인사하던 처자가 딸이고 가게 안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이 아들이란다. 가족과 함께 일을 해서 좋으시겠다고 하니 자식들은 월급을 주고 고용한 직원이라며 가족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단다.

딸이 시집을 가지 않고 있지만 자식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 편이라며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이 좋다는 말도 덧붙이신다. 전세계를 다니며 많은 것을 경험해서일까 할아버지는 경직되지 않고 열린 사고로 다양한 말씀을 해 주신다.

알바이신 지구 나스르 궁전에서 내려다본 알바이신 지구 ⓒ 송진숙


내가 스페인에서 꼭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하니 스페인의 정세, 물가, 기후, 한국과의 차이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안달루시아 지방이 날씨가 좋으니 이쪽으로 오게 되면 연락하라며 명함까지 건네신다.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다.

내일도 들르겠다고 하니 내일은 부인분과 둘이 휴가를 가서 없을 수도 있단다. 날이 어둡다며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광장까지 배웅해 주시는 할아버지에게서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무사히 숙소로 돌아와 내일 볼 알함브라 궁전 생각을 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잠에 들었다.

카를로스 5세 궁전 르네상스식으로 지은 카를로스 5세 궁전. 겉으로 보기엔 사각형이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원형으로 되어 있다. ⓒ 송진숙


빼앗긴 나라와 궁전, 무엇이 더 아까울까

꿈에 그리던 알함브라 궁전을 보는 날이다. 오전, 오후 중 오전 시간으로 예약을 해놓은 터라 서둘러 준비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아침을 챙길 시간이 없어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사서 먹었다. 숙소에서 알함브라 궁전까지는 걸어갈 만한 거리라 생각해서 버스를 타지 않았는데 언덕길이라서인지 올라가는 게 만만치 않았다. 알함브라 궁전은 크게 나스르 궁전, 카를로스 5세 궁전, 알카사바(성채), 헤네랄리페(여름 궁전)의 네 구역으로 나뉜다. 우리는 알함브라 궁전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나스르 궁전 입장을 10시로 예약했기에 숨을 헉헉거리며 뛰어올라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10시가 되자 한 명씩 입장을 했다. 나스르 궁전은 알함브라 궁전의 백미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크지도 않고 소박한 느낌이 들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궁 안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처음 들어가는 방부터 관람객을 압도한다.

처음으로 방문객을 맞는 대사의 방은 우아하고 화려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섬세한 나무조각들을 이어서 만든 마치 작은 조각보처럼 보이는 천장이다. 8,000여개의 나무조각을 이어서 우주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는 장식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이런 화려한 장식은 창문 가장자리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그 사이로 햇살이 비추자 방 전체가 빛나는 느낌이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왕의 모습을 신비롭게 느끼도록 한단다. 대사의 방이란 이름답게 손님에 대한 우호의 표시로 물병이나 꽃병을 놓아두었다는 벽감(벽에 홈을 파서 물건을 둘 수 있게 한 것)도 찾아볼 수 있었다.

나스르 궁전 창문 창문들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빛이 방을 더욱 빛나게 한다. ⓒ 송진숙


천천히 아름다운 궁전의 모습을 감상하다 보니 학창시절에 기타 연주곡으로 들었던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땐 알함브라 궁전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시대의 것인지도 모른 채로 기타 소리가 좋아서 듣고 또 들었다. 트레몰로 주법으로 연주되는 선율은 꼭 물이 흐르는 소리 같다. 이 궁전 어딘가에 기타 선율 만큼 맑은 물이 흐르고 있지 않을까.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꿈에만 그리던 알함브라 궁전을 이렇게 오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나와 똑같이 느낀 이들이 있었다.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 땅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 때 지어진 것으로 14세기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사벨 여왕은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을 매우 탐냈다고 하는데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인 보아브딜은 궁을 파괴하지 말고 유지해 달라는 조건으로 스스로 궁전을 내놓고 퇴각했다.

이렇게 궁을 넘기고 빠져나온 보아브딜 왕은 나라를 빼앗기는 것보다 알함브라 궁전을 두고 오는 것을 더 안타까워 했다고 전해진다. 500여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도 이렇게나 훌륭하니 이사벨 여왕과 보아브딜 왕의 심정이 이해 된다.

모카라베 천장 모카라베 양식으로 장식된 두 자매의 방 천장. 종유석 장식은 마치 레이스자락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 송진숙


이번에는 아벤세라헤스의 방을 둘러보았다. 귀족 아벤세라헤스는 왕비와 사랑에 빠졌는데 이 사실을 들은 왕이 크게 노하여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남자 30여 명을 이 방에서 처형했다고 한다. 그 피가 강처럼 흘렀다고 하니 공포감도 들었지만 한편 운명적인 사랑이 부럽기도 하다.

아벤세라헤스 방과 비슷한 모카라베 양식으로 되어 있는 두 자매의 방은 나스르 궁전에서 가장 화려하다. 종유석 모양의 조각이 마치 레이스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표현된 천장은 정교하고 섬세해서 하염없이 올려다보게 한다. 벽면에 새겨진 코란의 경구는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신을 향해 지혜를 구하는 진정성 있는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코마레스 궁 나스르 궁전의 백미인 코마레스 궁. 물에 비친 모습이 환상적이다. ⓒ 송진숙


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로 손꼽히는 코마레스 궁전으로 향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이곳을 직접 눈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아라야네스 중정에 비친 궁의 모습을 같은 각도에서 찍으니 전문가의 사진과 똑같이 찍힌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코마레스 궁이 연못에 반사되어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을 방불케 한다.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리면 물에 반사된 모습을 보기 어렵다던데 오늘은 하늘이 나의 편인 듯하다. 작지만 아름다운 나스르 궁전은 3세기 후에 인도 타지마할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귀부인의 탑 귀부인의 탑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탑의 모습 ⓒ 송진숙


나스르 궁전을 나와 알카사바로 향했다. 절벽 위에 이중의 성벽으로 견고하게 지어진 성채는 가톨릭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슬람 세력이 어떻게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오래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망루로 올라가니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하게 보이는 눈맛이 좋다. 발걸음을 돌려 귀부인의 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알함브라 궁전이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더니 점점 추위가 느껴진다.

우리가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지 한국 여자 분이 다가와서는 여긴 핫팩을 반드시 챙겨와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는 이곳이 고지대라 그렇기도 하지만 여기저기에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춥게 느껴지는 것이란다. 이슬람 사람들은 물이 귀한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알함브라 궁전 내 여러 군데에 연못과 분수를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알함브라 궁전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그녀는 투어에서 알게 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는 홀연히 떠났다.

헤네랄리페 정원 멀리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서 끌어온 물로 만든 분수가 경탄을 자아낸다. ⓒ 송진숙


왕비의 밀애를 지켜본 사이프러스나무의 종말은

마지막으로 헤네랄리페를 입장하기 위해 표를 냈더니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혹시나 안 들여보내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입장하란다. 오전표를 구매했기에 입장 시간이 8시 반부터 14시까지로 제한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여름 궁전이라는 헤네랄리페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건만 들어가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 키가 큰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도열해 서 있는 길을 걸으니 점점 설레어 기대감이 커져갔다.

헤네랄리페 정원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헤네랄리페 정원의 물소리에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곡이라더니 정말 물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헤네랄리페 정원의 백미라는 아세키아 중정에는 세로로 긴 수로에 좌우로 분수가 설치되어 있는데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아치를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다. 담 옆으로는 아벤세라헤스와 왕비의 사랑을 지켜본 죄로 베어진 사이프러스 나무가 보인다. 말 못하는 나무까지 베어버릴 만큼 왕의 노여움이 극에 달했던 모양이다.

물의 궁전이라고도 불리는 헤네랄리페 정원은 이슬람 건축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이슬람인의 물에 대한 애정은 지극하다. 사막에 살던 이슬람인에게 물은 생명처럼 여겨졌을 터이다. 그래서일까 정원 안 곳곳에는 크고 작은 연못과 분수들이 있다. 이곳에 흐르는 물은 멀리 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만년설에서 끌어온 것으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의 물을 사용하는 기술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헤네랄리페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 사이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죽임을 당한 사이프러스 나무 아벤세라헤스와 왕비의 사랑을 지켜보았다 하여 죽임을 당한 사이프러스 나무 ⓒ 송진숙


어제 갔던 베라크루즈 식당을 다시 찾았다. 그라나다를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가 보고 싶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인지 어제보단 여유로웠다. 오늘은 그라나다 지역의 특산물인 알함브라 맥주를 시켰다. 알함브라 궁전을 충분히 보고 알함브라 맥주까지 마시니 온몸으로 알함브라 궁전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어제와는 달리 김치도 나왔다. 외국 여행 중에 가장 땡기는 음식은 바로 김치가 아닐까 한다. 후식으로는 어제 처음으로 맛본 체리모야를 선택했다. 남미가 원산지인 체리모야는 배처럼 생긴 과일로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달다. 망고, 망고스틴과 함께 세계 3대 과일로 꼽힌다는데 그 맛을 보니 바로 수긍이 된다. 주인 할아버지는 아직 휴가를 떠나지 않으셨는지 식당에 계셨다. 저녁 때쯤 말라가에 있는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신단다.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멋지다.

꿈에 그리던 알함브라 궁전. 하루종일 보아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알함브라를 떠나려니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 아디오스!
#ㅏ다산맥에서 물을 끌어다. #그라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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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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