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귀촌했는데... 땅 파는 게 두렵다

[활골마을생존기④] 변화무쌍한 땅속 세계

등록 2014.07.04 08:57수정 2014.07.0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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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로를 내기 위해 땅을 파다 지쳐 잠시 쉬고 있다. 이 땅속에 뭐가 들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 조명신


"도시에서는 감정노동을 하고 시골에서는 중노동을 한다." (네이버 allf****)


'활골마을생존기'가 포털사이트에도 전송되면서 귀농·귀촌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살펴보니, 자신이나 주위의 경험 혹은 들은 이야기들이 섞여 찬성과 반대가 쌍벽을 이루고 있다. 내용에 대해 반박하거나 옹호할 생각은 없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 그만큼 다양한 견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의견도 존중하지만, 시골을 특정한 틀로 정형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다소 위험할 수 있다. 시골이 인심 좋은 천사들만 모여 사는 무릉도원이 아닌 것처럼, 텃세와 왕따가 횡행하는 무법지대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일장일단이 있고 갈등과 협력이 교차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의견 가운데 네이버의 한 이용자가 남긴 댓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기사에서 도시와 시골을 대비시켜 인용했던 명언을 빗댄 것인데 시니컬하면서도 직관적이다. 도시의 삶은 정신노동이고 시골의 삶은 육체노동이라는 의미를 다소 강하게 표현했다. 물론 도시에도 근육노동을 하는 직종이 있고 시골에도 두뇌노동을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대체로 일리 있는 지적이다.

이렇듯 시골에서의 삶은 육체노동을 연상 시킨다. 또한, 사람들은 쉽게 흙 또는 땅과 연관 짓는다. 귀농과 귀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골 생활은 곧 '흙을 만지며 사는 삶'으로 이해된다. 대부분의 땅을 아스팔트 아니면 시멘트로 덮어 버린 도시에 대한 반작용이 클 것이다. 발에 흙이 묻지 않는 환경은 편리하지만 건강한 삶인지에 대한 회의가 담겨 있어 보인다.

두려움의 세 가지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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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밭을 가는데 튀어나온 두꺼비. 자신의 집이 공격당했다고 생각한 탓인지 잔뜩 뿔이 난 듯 한 참을 노려보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조명신


충남 금산군 남이면 활골마을. 지난 3월에 이사 와서 지금까지 원 없이 땅을 팠다. 아니, 파고 있다. 내가 평생 만졌던 흙보다 지난 몇 개월간 활골에서 만진 흙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규모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매일 흙과 동행하는 생활이다. 때로는 호미나 쇠스랑으로, 또 때로는 삽이나 괭이로, 밭을 가느라, 풀을 매느라, 그리고 배수로를 내느라 땅을 판다.

힘드냐고? 힘들다. 즐겁냐고? 즐겁다. 힘들다는 것은 몸을 뜻하고 즐겁다는 것은 정신을 의미한다. 솔직히 말해, 전업 농부이거나 하루 종일 땅 파는 일이 주업이라면 즐겁냐는 질문에 잠시 멈칫할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시멘트로 도배된 서울에서 살아왔고, 시골에 와서는 손바닥만한 텃밭을 가꾸는 어설픈 생활이기 때문에 즐거운 것일 수 있음을 안다.

그렇다고 땅 파는 일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땅 파는 게 살짝 두려워지고 있다. 이 두려움의 정체를 세분화하면 대략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하다. 첫째, 대근하다.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면 당신은 충청도 사람이다. 밖에서 일하다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면 이런저런 말씀 끝에 늘 "대근하지?"하고 물어오셨다.

어르신들의 연세가 높고 억양이 있어 한동안 못 알아들었으나, 알고 보니 '힘들다' '고단하다'는 의미의 충청도 방언이었다. 요즘 같은 날씨에 잠깐이라도 땅을 파면 금세 땀이 난다. 땀이야 운동 삼아 흘린다 생각할 수 있지만 몸이 고단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시골이라 더 힘든 것도 아니고 일의 양과 강도를 조절하면 되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둘째, 놀란다. 땅을 파다 보면 놀랄 일이 허다하다. 처음에는 지렁이였다. 얼마나 길고 토실토실한지 처음엔 작은 뱀인가 싶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굵고 튼실한 녀석이 예고 없이 튀어나오면 놀라기 일쑤다. 더 무서운 녀석은 뱀이다. 땅을 파다 나온 것은 아니지만 텃밭에서 스쳐 지나간 뱀을 발견한 후론 일하면서도 사주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다.

뱀보다 나를 더욱 놀래킨 것은 두꺼비였다. 텃밭이 만석이라 하는 수 없이 마당 한쪽을 일궈 고구마를 심기로 하고 땅을 가는데 갑자기 두꺼비가 튀어나왔다. 생각해 보라. 괭이로 내리쳐 흙을 들어 올리는데 동물이 뛰어오르면 놀라지 않겠는가. 처음엔 웬 개구리인가 했는데 어르신들께 여쭤 보니 땅속에 사는 두꺼비일 거란다.

땅 파기도 초콜릿 상자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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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를 파다 괭이로 깨뜨린 하수도관(위)과 수리한 후의 모습. 같은 크기의 PVC 파이프를 잘라 접착제로 붙인 후 테이프로 감았다. ⓒ 조명신


셋째, 피곤하다. 땅속에는 생명체만 있는 게 아니다. 마당에 빨래 건조대 기둥을 세우기 위해 구덩이를 파던 중이었다. 괭이 끝에 웬 플라스틱 조각이 따라나오는 게 아닌가. 무슨 쓰레기가 묻혀 있나 싶었는데 아뿔싸 PVC 파이프였다. 그 짧은 순간, 이 파이프를 수선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피곤이 몰려왔다. 그렇다. 그 피곤이다.

괭이를 내려놓고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심정으로 조심스레 흙을 파냈더니 깨진 파이프의 위쪽이 보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수도관이 아닌 하수도관이었다. 만약 상수도관이었다면 물 폭탄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우선 깨진 파이프 주변을 넓게 판 후 안으로 흘러들어 간 흙을 꺼내고 보수에 들어갔다. 통째로 교체해야 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조심스럽게 작업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에 거의 반나절을 허비했다.

이 정도면 '땅 파는 게 두렵다'는 말이 큰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흙에서 만나는 변화무쌍함은 도시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새로운 세계인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는 엄마의 말이라며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우리는 어떤 것을 고르게 될지 모른다"는 명언을 남겼다. 땅을 파는 일도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땅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어쩌면 시골 생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삶이 펼쳐질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귀농·귀촌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시골 역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회라는 방증일 것이다. 그것이 도시이건 시골이건 간에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인생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활골닷컴'(hwalgol.com)에도 비슷한 내용이 연재됩니다.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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