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갈 겁니다

[가다툰의 네버랜드 23] 숨 막히게 행복했던 두 번째 이집트 여행

등록 2014.07.06 18:35수정 2014.07.0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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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흐리르 광장 저 멀리서 그녀가 한 걸음에 달려온다. 나를 안으며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내게 말한다.

"동생 잘 지냈어?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그녀의 이름은 샤이마. 친구보다는 가족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나의 '이집트 언니'다. 그녀는 당시 주이집트 한국 대사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유난히 마음이 잘 맞아 금세 가까워졌는데, 이집트 생활 동안 내게 샤이마는 언제나 기댈 수 있는 가족과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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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집트 언니, 샤이마. ⓒ 김산슬


내가 사랑한 이집트의 사람들, 그리고 그 순간들

사실 이집트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동의 한류열풍이 그렇게 어마어마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특히 이집트의 경우 카이로의 한 대학에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를 통틀어 한국어과를 최초 설립할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이집트의 한류는 그 열기가 다른 아랍 국가들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았다. 이집트를 여행하다 보면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에요?"하고 묻는 이집트 소녀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이집트 전통 음식인 쿠샤리보다 김치와 김밥, 떡볶이를 더 좋아하는 그들의 한국 사랑은 상상 그 이상이다. 한국 사람들도 자주 틀리는 어려운 맞춤법을 어찌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그들이 말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국적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한 소녀에게 " 어떻게 한국말을 그렇게 잘해요?" 물으니 수줍게 대답한다.

"이 정도야 누워서 떡 먹기죠."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랍 사회도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나이'를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샤이마도 여동생 뻘인 내게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무언가를 대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매번 샤이마를 만날 때면 몸둘바를 몰라 쩔쩔 매곤했다. 이번에도 그녀는 나를 위해 선물을 한아름 들고 나타났다. 더불어 카이로의 정신없는 골목을 막힘없이 걸으면서 행여나 짓궂은 이들이 장난을 치지는 않을까 한 손으로 나를 꼭 감싸고 사방을 살폈다. 우리가 만난 지도 삼 년이나 흘렀건만. 언니는 이집트에 처음 왔던 어수룩한 아이마냥 나를 보호했다.

이집트가 언제나 그리운 이유는 샤이마처럼 이곳에 있는 내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그들과 걸었던 거리와 순간들. 그 낮밤의 모든 추억들이 한데 뒤엉켜 내 마음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곳을 가도 이 나라만큼 사랑을 줄 수가 없다. 어리고 무식해서 용감했고, 그래서 얻을 수 있었던 그곳에서의 경험들과 관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 말이다. 내가 나였고, 그들이 그들이어서 가능했던 그 시간들. 그리고 이집트였기에 가능했던 모든 순간들이 애틋하다.

샤이마와의 행복했던 하루를 뒤로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다합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2년만에 다시 찾아온 카이로였다. 아쉽지만 2주간 머무르며 만났던 새로운 인연과, 다시 만난 샤이마와의 추억까지 모든 기억들을 마음속 깊이 고이 접어 다음 기약 때까지 계속 추억하기로 했다.

이집트 여행 마지막 여정지, 여행자의 무덤 '다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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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움이 넘치는 다합은 여행자들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 김산슬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의 경계를 긋는 시나이반도.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역으로 언제나 영토분쟁의 대상이 되어온 곳이다. 여행자들에겐 시나이 반도는 아름다운 홍해와 시나이 산이 있는 장소로 통한다. 이 시나이반도엔 두 군데의 휴양도시가 있는데 샤름 엘 셰이크와 다합이다. 샤름 엘 셰이크는 이집트와 아랍의 부자들이 몰려드는 휴양도시로, 화려하고 비싼 물가를 자랑한다. 호텔과 리조트가 소유한 사설 해변이 즐비하다.

다합은 아랍어로 '금'이라는 뜻이다. 바다 안과 밖 모두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워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다이빙 포인트로 유명하다. 게다가 다합은 '여행자들의 무덤'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데, 한번 발을 디디면 값싼 물건 값과 여유로운 풍경에 매료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다합에선 일 주일을 묵으러 왔다가 한두 달 동안 아예 눌러 앉아버린 여행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두 곳 중 내가 선택한 곳은 당연히 '다합'이었다.

카이로에서 다합까지는 9시간이 걸렸다. 이동하는 동안 냉방을 어찌나 세게 틀어주는지 이보와 나는 밤새 추워서 한숨도 잠들지 못한 채 떨어야 했다. 다합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해 놓은 다이빙 센터 숙소에 짐을 풀었다. 다이빙과 블루홀이 유명한 다합은 다이버 자격증을 따려고 찾는 여행객들이 많다. 가격도 다른 지역의 다이빙 코스보다 더 저렴하다. 우리는 기본과 중급 가운데 중급 다이빙자격인 어드밴스를 신청했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여행의 필수 덕목

"소피, 아무래도 난 도저히 못하겠어."

냉방 버스에서 걸린 감기로 급격히 떨어진 체력으로는 강도 높은 다이빙 훈련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결국 우리는 몸살에 걸려 몸져 눕고 말았다. 첫 날 마지막 다이빙 후 구토까지 한 이보는 결국 포기 선언. 나도 그 없이 혼자 코스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결국 우린 이틀짜리 기본코스인 오픈워터로 계획을 변경했다.

자격증을 따지 못해 아쉬웠지만 여행은 언제나 상황에 맞게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한가롭게 바다를 즐겼다. 깊은 바닷속을 볼 순 없지만 내킬 때마다 스노쿨링을 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선 베드 위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해질녘엔 바다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다신 없을 순간을 위해서였다. 고된 한 달 여정을 마무리하기엔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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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 중급 코스를 포기한 이후 우리는 남은 기간들을 여유롭게 누워서 보내며 무거운 장비를 메고 바다로 가는 일행들을 약올렸다. ⓒ 김산슬


"윽, 또 시작이군."

다합을 떠나 누웨이바 항구에 도착한 내가 신음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깨끗함과 여유가 있던 다합은 신기루 마냥 느껴진다. 모든 것이 뿌옇고, 시간이 지켜지는 법은 없으며,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내가 아는 이집트에 다시 돌아온 거다.

페리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출국장은 한 달 전 내가 밟았던 입국장만큼이나 낡고 지저분하다. 그래도 이번엔 지붕에 벽까지 있는 번듯한 건물이다. 이 페리를 누웨이바에서 나를 다시 요르단의 아까바로 데려다 줄 예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사는 북부 도시 이르비드까지 다시 일곱 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려야겠지.

한 발 한 발 떼는 발걸음이 무겁다. 두 번째 이별인데도 여전히 이리 가슴이 아프다니. 배에 올라 멀어지는 이집트 땅을 바라본다. 다시 만날 수 있음을 알지만, 여전히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2012년의 마지막 날, 카이로에서 새해를 맞으며 나일강에 손을 담그며 빌었던 소원을 생각한다. 다시 이 곳에 돌아오게 해달라는 소원. 머지 않은 미래에 나일강이 다시 나를 불러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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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장이라는 이름이 민망하지만, 그래서 더 이집트다운 누웨이바 항구의 출국장.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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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를 떠나며. ⓒ 김산슬


덧붙이는 글 기자가 다합을 방문한 것은 2013년 1월 중순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현재 이집트의 리비아 국경 지역과 시나이 반도 전체는 여행 경보 3단계로 지정되어 있다. 불필요한 방문을 삼가라는 외교부의 지침을 따르는 것이 좋다.
#이집트 #카이로 #다합 #누웨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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