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견 승차거부, 왜 모두들 가만히 있나요?

[편지] 박원순 서울시장님께... "안내견 인식 개선에 힘써주세요"

등록 2014.07.04 10:58수정 2014.07.0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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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17일, 미국 뉴욕시 125번가 지하철역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실 윌리엄스라는 61세 시각장애인 남성이 승강장에서 현기증으로 비틀거리다가 그만 선로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윌리엄스에게는 동행자가 있었습니다. 동행자는 휘청거리는 윌리엄스를 승강장 안쪽으로 잡아당겼지만, 추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윌리엄스가 추락하자 그는 마구 소리를 질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선로로 뛰어들어 정신을 잃은 윌리엄스의 얼굴을 핥아 깨웠습니다.


시각장애인 윌리엄스를 구하려고 몸 던진 동행자는 누구?

윌리엄스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지만, 전동차가 정거장으로 접근하던 중이라서 대단히 위험했습니다. 그동안 상황을 목격한 역무원과 승객들이 선로 가운데에 움푹하게 들어간 홈에 몸을 최대한 밀착시키라고 둘을 향해 외쳤습니다. 전동차 운전기사도 이 광경을 목격하고 속도를 최대한 줄였습니다. 전동차 두량이 선로에 누워있는 윌리엄과 동행자 위로 지나갔지만, 둘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 사고로 윌리엄스가 입은 부상은 머리의 상처뿐이었습니다. 

윌리엄스를 구하려고 몸을 던진 동행자는 누구일까요? 시각장애인인 윌리엄스의 눈이 되어주는 보조견 '올란도'입니다. 기쁜 소식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10살이 넘은 노령견으로 은퇴를 앞두고 있던 올란도는 현역 보조견에게만 비용을 지원하는 보험 정책 때문에 윌리엄스와 조만간 헤어져야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란도가 여생을 윌리엄스와 함께 보내기를 바라는 소망들이 모여 '인디고고(IndieGoGo)'라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모금이 시작되었습니다.

모금액은 목표액을 달성했고, 윌리엄스는 새로운 보조견 '고디바'를 맞이한 후에도 올란도를 반려견으로 곁에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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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스와 그의 보조견 올란도 올란도가 윌리엄스와 여생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돕는 크라우드펀딩. 인디고고 웹사이트 갈무리. ⓒ Indiegogo, Inc.


각박한 오늘날, 사람들은 돈이 되지 않으면 쉽게 나서지 않습니다. 대가가 없으면 굳이 남을 도우려고 하지도 않죠. 하지만 개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헌신합니다. '짐승'이라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동물들이 때로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사람이라면 아무리 장애인 보조훈련을 받아도 이들처럼 목숨을 걸고 평생 봉사할 수 있을까요? 


네덜란드 왕립 보조견 재단의 TV 광고가 있습니다. 군인이 전쟁터에 쓰러져 있습니다. 그는 부상을 입었는지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합니다. 극도의 공포에 방치된 그에게 다른 군인이 다가와 얼굴을 핥아줍니다. 바로 그 때, 어두웠던 방안이 환해지면서 군인이 벌떡 일어납니다.

방에 불을 켜고 군인을 악몽에서 깨운 것은 한 마리의 개입니다. 그 개는 참전용사와 같이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는 보조견입니다. 시각장애인 보조견이 앞을 못보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준다면, 이들은 '너무 많은 것을 봐 버린'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줍니다.

보조견에 대한 우리 사회 태도는 너무나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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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왕립 보조견 재단이 유튜브에 공개한 TV 광고의 한 장면. 전쟁의 악몽으로 괴로워하는 참전용사를 보조견이 깨워주고 있다. ⓒ KNGF Geleidehonden


보조견의 종류는 시각장애인 보조견으로부터 청각장애인 보조견, 자폐증·근위축증 환자 보조견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런데 보조견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너무나 아쉽습니다. 우리 사회는 인간에게 평생 봉사하는 그들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임무를 수행하는 그들을 방해하기까지 합니다.  

얼마 전 버스 승차를 거부당하고 기사로부터 폭언을 들은 시각장애인과 보조견의 사연을 알고 계실 겁니다(관련 기사: " 어디서 개를 데리고 타... 당장 내려!"). 이런 사건은 어쩌다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많은 보조견들이 승차 거부는 물론, 식당을 비롯한 각종 시설의 출입 제한에 시달린다고 합니다(관련 기사: " 300만 원이 우스운 사람들, 정말 많네요"). 가해자는 운전기사만이 아닙니다. 개를 싫어하는 승객들 때문에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관련 기사: " 개XX가 왜 전철을 타? 저 XX가...").

시각장애인 보조견의 승차 거부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버려야 버스에 탈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시각장애인은 장거리 외출을 하지 말라'는 선고와 무엇이 다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안내견에 대해 알려줘도 '개는 무조건 싫다'며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에게 모욕을 주는 사람들의 행동이 우리 사회의 빈곤한 의식수준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의 승차 거부 사건과 관련하여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 안양시 건설교통사업소 교통행정과로부터 관내 모든 시내버스 및 마을버스 회사에 장애인 보조견 탑승에 관한 사원교육을 실시하고, 버스 내부에 보조견 탑승 가능 안내문을 부착할 것을 통보했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수동적인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님께 부탁드립니다. 이번 기회에 서울시가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애써주십시오. 서울시내 버스·지하철의 홍보시설을 통해 보조견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려주십시오. 그들의 탑승이 법으로 보장받는다는 것을 알리는 무미건조한 안내문보다는, 안내견이 고마운 존재임을 부각시키고, 그들에게 지켜야 할 공중 에티켓을 알리는 적극적인 홍보를 해주십시오.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안내견에 대한 인식 개선에 힘써주십시오.   

몇 년 전, 대만 신베이시에서는 시각장애인 보조견에게 악취가 난다며 항의하는 승객과 아무 냄새도 나지 않으며 장애인의 승차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버스 기사 간에 실랑이가 벌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고등학생들이 보조견에게서 정말로 냄새가 나는지 다른 승객들에게 물었고, 승객들은 만장일치로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자 항의한 승객이 수치심으로 버스에서 내리면서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안내견 승차 거부, 무관심은 '그들만의 외로운 싸움'

우리나라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떨까요? 시각장애인들을 정말로 외롭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모욕을 당하는 동안 그 많은 승객 가운데 적극적으로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무관심은 승차 거부에 대한 장애인들의 투쟁을 '그들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만듭니다. 부당한 일을 목격하고도 묵인하는 것은 결국 가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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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지하철의 영상화면과 버스정류장의 옥외 광고게시판. 기존 시설만 잘 활용해도 훌륭한 홍보를 할 수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대중교통시설을 이용한 안내견 홍보가 이뤄지고 있다. ⓒ 조세형


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태도 역시 안내견에 대한 성숙한 태도를 방해합니다. 안내견 승차 거부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 사회의 반응은 꽤 뜨거운 편이지만,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을 울리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개를 식용으로 여기는 문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노예제를 용인하면서 인권신장을 이룰 수 없듯이, 어떤 대상을 '먹을 것'으로 여기는 한 그 대상에 대한 태도는 가벼워지고 폭력성을 띌 수밖에 없습니다.

2012년의 '악마 에쿠스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자동차가 살아있는 개를 묶은 채 도로를 질주한 사건입니다. 유사한 학대가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를 넘은 학대임에도 처벌은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어차피 먹을 건데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도 보입니다. 저는 이런 사건들이 개를 혐오하는 사람에 의한 우발적인 학대가 아니라, 생명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내견에 대한 배려가 '상식'으로 자리 잡는 사회에서는 보다 많은 동물들이 보호받을 것입니다.   

시장님! 장애인들과 안내견들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걱정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안내견을 괴롭히는 것은 장애인을 괴롭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시장님의 철학을 존경하는 서울 시민이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시각장애인 #보조견 #홍보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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