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아버지' 부장판사가 사회에 던지는 충고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창원 대방중 강연...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등록 2014.07.11 09:11수정 2014.07.1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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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아이들은 잘 보살펴야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부모들이 이혼하면 아이들이 다친다. 아이들이 상처를 덜 받게 해야 하고, 부모들이 그 역할을 하기가 어려우면 나아가 국가가 해야 한다."

"학업중도 탈락자가 점점 늘어나고, 청소년 가출 문제도 심각하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 아이들은 부모, 사회, 국가를 잘못 만나서 힘든다.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누가 해결해 주어야 하나.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을 것이냐. 국가가 해결해 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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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10일 저녁 창원 대방중학교 체육관에서 학부모들을 상대로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라는 제목으로 학교폭력에 대해 강연했다. ⓒ 윤성효


'청소년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가 강조한 말이다. 천 부장판사는 10일 저녁 창원 대방중학교 체육관에서 학부모들을 상대로 학교폭력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천 부장판사는 창원지방법원과 부산가정법원 등에서 주로 청소년 범죄를 맡아 왔다. 그는 사회가 '방황하는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보고 '청소년회복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경남과 서울 등 전국 14곳으로 늘어났다.

학교폭력에 대해, 그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언어폭력과 왕따가 있는데, 언어폭력이 큰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이들한테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교육을 해야"

또 그는 "학교폭력은 집단적, 개인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왕따는 집단행위로, 피해자는 가해자가 집단일 경우에 더 큰 상처를 입는다"고, "또 일대일 사건일 경우 뒤에 보면 선배 등 배후가 있다"는 말도 했다.


천 부장판사는 재판을 담당했던 학교폭력 사례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왕따의 유형은 너무 많다"고 한 그는 "아이들이 시험 볼 때 집단으로 커닝을 했는데 한 학생이 신고를 해서 징계를 받았다"며 "그러나 신고한 학생한테 1년간 보복하며 괴롭히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모가 이혼한 아이가 재판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가 나중에는 가해자가 되었다"며 "다른 아이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하나의 원인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를 하도록 하는 교육을 받지 못하다 보니 폭력으로 이어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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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 윤성효


천 부장판사는 "아이들은 나와 다른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차이에 대한 배려를 해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며 "부잣집 아이거나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그렇지 못한 아이와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폭력은 '관계성'과 '지속성' '공연성'의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 천 부장판사는 "모르는 사이보다 아는 사이에서 갈취 당하는 게 더 힘들다"며 "신고할 때는 최근의 피해만 이야기 하지만 살펴보면 이전부터 피해가 있어 왔던 사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진정한 화해와 반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천 부장판사는 "가해 학생한테 징계를 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혼한 어머니는 힘들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데 아이가 가출하거나 말썽을 피운다고 생각하니까 속에서 천불이 난다. 그렇다고 아이도 잘못했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법정에서 가족들끼리 서로 진정으로 화해를 하도록 한다. 아이한테 '부모님 사랑합니다'는 말을 계속 하도록 하고, 나중에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서로 반성과 화해를 할 때도 있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는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자살하는데, 왜 신고를 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며 "신고를 하면 제대로 처리를 해주지 않고 신고를 해봤자 학교에는 그 문제를 다룰 전문가도 없으며, 관계 개선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벼랑 끝에 놓여 있다는 것. 그는 "학교 현장은 성적 경쟁의 장으로 되어 있고, 경쟁에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학교며 집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교육하며, 학업 중도탈락자 문제가 심각한데 그런 아이들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요즘 청소년 사이에 물품 판매사기와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가출 여학생들은 성매매에 빠진다고 했다. 천 부장판사는 "여자 아이들이 가출하면 성매매를 하고, 원조교제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누구나 나만 잘 산다고 해서 편안한 사회가 되는 게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아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에 재판할 때 괴롭다"

청소년 재판에 대한 괴로움도 토로했다. 그는 "집에 고2, 고3 아이를 두고 있는데, 청소년들을 법정에서 재판할 때마다 괴롭다"며 "한 아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에 괴롭고, 그 아이들이 앞으로 잘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도움이 되는지 고민을 많이 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학교 부적응에 대한 대책을 강조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다름에 대한 인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배려가 없다. 경쟁에서 낙오된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아무런 대책이 없다. 학교에서도 그런 교육을 하지 않고 무조건 성적만 올리려고 한다. 성적이 낮은 아이에 대해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이냐. 대한민국이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건전하게 살도록 우리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 대해 따끔한 충고도 했다.

"세 아이가 한 아이를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교사들이 연대서명을 해서 탄원서를 써왔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한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다른 학생의 탄원서는 없었다. 한 아이는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공부도 잘하니까 탄원서를 써주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탄원서를 받아오지 않았던 것 같다. 다 같은 학생 아니냐. 이게 교육이냐.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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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10일 저녁 창원 대방중학교 체육관에서 학부모들을 상대로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라는 제목으로 학교폭력에 대해 강연했다. ⓒ 윤성효


#천종호 부장판사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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