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천재'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서평] 한국사회를 30개의 키워드로 읽는 <사회를 말하는 사회>

등록 2014.07.17 11:26수정 2014.07.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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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삼성전자 부사장 이원성이 자살했다. 그는 반도체 기술공정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였다. 세계적인 '반도체 신화'를 이끈 삼성의 '천재'였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카이스트 전자공학 석사, 미국 스탠퍼드 공학박사 출신이었던 그는 최고의 기술자에 주어지는 삼성 펠로우에 선정되었다. 삼성전자 보유주식만도 76억 원에 이를 만큼 재산 또한 남 부러울 것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살던 서울 강남의 고층빌딩에서 생을 마감했다. 발견된 세 장의 유서는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업무 과다와 보직인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우리 사회의 '1등'이었던 그의 죽음은 무엇을 뜻할까.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로 대표되는 승자독식 문화의 비극이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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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말하는 사회 ⓒ 북바이북

1등주의나 승자독식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열쇳말은 차고 넘친다. 이 책 <사회를 말하는 사회>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최근 몇 년간 '○○사회' 식의 제목으로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책들이 대거 쏟아졌다. 이 책은 그 '○○사회'류의 책들을 한 자리에 묶어 한국사회가 벼려야 할 새로운 가치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모두 30개의 열쇳말을 다루는 이 책은 4장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각각 결핍('1장 나는 항상 배고프다'), 불안과 위험('2장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파편화한 개인주의('3장 괴물들이 사는 나라'), 단절과 소외('4장 어느 날 차단되었습니다') 등에 관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 사회는 다양한 가치와 삶의 태도가 역동하는 곳이다. 그런 사회를 단 하나의 열쇳말로 분석하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사회의 한 단면을 근거로 전체를 설명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불러올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그런 시도들이 무용하지만은 않다. 이 책에 실린 30개의 열쇳말들은 분명 우리 시대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진실의 일면을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데 좋은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얼핏 단순한 서평 모음집 같은 이 책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30개의 열쇳말

이 책이, 그리고 이 책이 다루는 '○○사회'식의 책이 전하는 우리 시대는 거칠고 우울하다. '자기절제사회'(대니얼 액스트, <자기절제사회>)를 분석하는 필자는 현대를 유혹이 넘쳐나는 시대로 규정한다. 그런데 그 유혹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매년 1월 1일 새아침에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하고, 체중 감량을 약속하고, ··· 약속하고 또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늘 깨진다. 우리의 직업적·사회적 실패는 자제력 부족 탓인가. 그렇지 않다. 심리학자 로런 노드그렌의 연구에 따르면 금연에서 가장 높은 실패율을 기록한 사례는 자신의 의지력에 최고로 높은 점수를 준 사람들이었다. 한 개인의 의지력에만 의존해 욕망을 거부하기에는 현대사회의 유혹이 너무 교묘하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22쪽)

4·16 세월호 사태는 우리 앞에 드리운 거대한 '탈신뢰사회'(래그나 로프슈테트, <탈신뢰사회의 위험관리)의 그림자를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이 책이 인용하는, 지난 5월 8일 오이시디(OECD)가 공표한 <2014 더 나은 삶 지수>가 그 적나라한 현실을 잘 드러낸다.

오이시디는 이날 공표에서 한국을 조사 대상국 36개국 중 29위로 소개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는 사회통합과 국민의 복지, 안녕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한국에선 불과 23퍼센트의 국민만 정부를 신뢰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지난 5월 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트라우마와 우리 사회에 만면한 불신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승객들은 "밖으로 나오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밀치며 탈출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필자의 분석대로, '믿지 못하는 사회'가 아니라 '믿음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인 탈신뢰사회의 본질이 잘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두 개의 숫자'를 통해 '격차사회'(다치바나키 도시아키, <격차사회>)가 돼버린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있는 부분도 우리 사회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필자가 강조하는 '두 개의 숫자'는 최근 20년 동안의 한국을 보여주는 일종의 열쇳말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현격하게 두드러지는 1인당 국민소득과 자살률이 그 '두 개의 숫자'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1990년대 초반 간신히 1만 달러대에 진입했다가 현재는 2만 달러를 훌쩍 넘어선 상태다. 자살률은 1990년대 초반 10만 명당 10명을 넘지 않은 수준이었다가 2013년 현재 10만 명당 33.5명으로 급증했다. 우리 시대의 '신'인 돈을 더 많이 벌게 되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왜 이렇게 가파르게 증가한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점점 커져가는 '격차'에 있다는 게 내 잠정적 결론이다. 하지만 단순히 빈부격차라든지 자산격차가 아니라, 기업과 개인 사이의 격차를 꼼꼼히 들여다봐야 문제가 제대로 보인다. ··· 1990년대 중반부터 둘(가계소득과 기업소득) 사이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특히 가계소득의 증가 속도는 점점 떨어져서 경제성장률보다 뒤처지는 정도가 점차 심해졌다. 한국의 가계소득 증가율과 경제성장률 사이의 격차는 오디시디국가들 중 가장 크다. ··· 1992년에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사이 격차가 0이라고 가정하고 계산해보면, 그 격차는 점점 넓어져서 2010년대에는 3.5를 오르내리는 숫자가 된다. (136쪽)

어느 사이엔가 우리나라는 '팔꿈치사회'(강수돌, <팔꿈치사회>)가 되었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된다는 신념으로 무한 경쟁을 내면화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우리 사회는 '피로사회'(한병철, <피로사회>)이기도 하다. 성과를 최우선시하는 사회에서 쉬지 않고 일하면서 피곤해하며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와 '무연', 그 사이의 한국 사회

우리는 또한 '잉여'(최태섭, <잉여사회>)나 '부품'(피터 카펠리, <부품사회>)이 되어 '탈감정'(스테판 메스트로비치, <탈감정사회>)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네트워크'(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링크>) 가 넘쳐나지만 '무연'(NHK 무연사회 프로젝트 팀, <무연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 종잡을 수 없는 세상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개인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깨달은 개인, 각성한 개인,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개인들이 모이면 세상은 조금씩 바뀔 수 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는 데 뭐'가 아니라 '우선 나 한 사람만이라도'라는 정신이 없는 한 세상은 지금까지 굴러온 방식대로 계속될 것이다. (268쪽)

요며칠 내가 가르치는 중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이 책을 소개했다. 덤으로 30권이나 되는 좋은 책들을 동시에 알릴 수 있지 않은가. 책을 소개한 뒤, 아이들에게 열쇳말 30개가 적힌 활동지를 제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더듬어보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열쇳말을 고르고 그 이유를 쓰게 한 것이다. 아이들이 써낸 활동지에 등장하는 열쇳말 상위 5개는 다음과 같았다.

1위 낭비사회, 2위 네트워크사회, 3위 피로사회, 4위 승자독식사회, 5위 위험사회

당신은 우리 사회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에 나오는 30개의 열쇳말로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남들도'가 아니라 '나만이라도'를 외칠 수 있게 말이다.

<사회를 말하는 사회>(정수복 외 지음 / 북바이북 / 2014. 6. 30. / 295쪽 / 15,000원)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사회를 말하는 사회 - 한국사회를 읽는 30개 키워드

정수복 외 30인 지음,
북바이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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