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8개관 개봉 굴욕 <설국열차>, 장난 아닌데?

[해외리포트] 3주만에 210개관 확대...미국 질주 시작하나

등록 2014.07.22 08:40수정 2014.07.2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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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22일 오전 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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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상영되고 있는 파고 극장 ⓒ 최현정

"미국식 슈퍼히어로 영화에 식상했는데, 너무 신선하고 재밌는 영화였어."
"영상미, 구성, 액션, 연기력... 모든 게 환상의 조합이던데!"
 
영화의 마지막 자막까지 지켜본 세 친구가 극장 복도에 서서 떠들고 있다. 대학생 저스틴(Justin)과 메일리(Meili), 스테판(Stephen)이다. 이들은 '기존 할리우드 영웅물과는 전혀 다른 멋진 영화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던 또래 직원들까지 이들과 한바탕 난상토론을 벌이는 통에 영화관 복도가 떠들썩하다.

영화가 끝날 때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다는 저스틴의 말에 메일리와 스테판도 고개를 끄덕인다. 누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에 메일리는 주인공 커티스를 꼽았다. <캡틴아메리카>에 나왔을 때 근육질에 잘생긴 배우라고만 생각한 터라, 고뇌하는 연기에 몰입하는 커티스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단다. 나중에야 커티스가 크리스 에반스라는 것을 눈치를 챘다고 한다.

스테판은 총리역의 틸다 스윈턴의 연기가 압권이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여기에 존 허트(길리엄)나 제이미 벨(에드가), '남쿵민쑤(송강호)'를 비롯해 최고의 배우들이 딱 제격인 역할을 멋지게 잘 소화한 것엔 모두들 동의한다.

지금 미국의 여름 극장가를 소리 없이 달구고 있는 영화 <Snowpiercer>, 우리 제목 <설국열차> 얘기다.

3주만에 8개관에서 210여개 극장으로

<설국열차>가 파고에서 상영되기 시작한 건 7월 11일부터다. 미국주요 도시 8개 극장에서 상영이 시작되고 정확히 2주만이다. 열차에 탄 이들이 미국에서도 시골인 파고에서 관객들을 만나기엔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이 영화의 북미 배급 판권을 가진 '와인스타인 컴퍼니'의 20분 삭제 조치에 대해 관객들과 배우, 평론가들은 온전한 감독판의 상영을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배급사는 한국에서 개봉된 것과 같은 내용의 영화를 상영하되 '롤 아웃방식'이라는 소규모 개봉 후 반응에 따라 극장을 늘려나가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자국서 900만 관객이 들었던 영화가 세계 가장 큰 시장에서, 1년만에 초라하게 시작한 이유다.

<설국열차>가 미국 관객과 만난 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4(Transformer: Age of Extinction)>가 4233개 극장에서 개봉됐다. <버라이어티>지는 같은 날 개봉한 마이클 베이와 봉준호 감독의 두 SF 영화를 비교하는 기사를 내놓았는데, 애초 8:4233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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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포스터 앞에서 ⓒ 최현정


하지만 뚜껑이 열린 뒤 전세는 달라졌다.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가 있던 7월 첫째 주, 설국열차는 250개 극장으로 확대 개봉된 반면, <트랜스포머4>는 7월 4일(금) 75%의 추락을 보이며 다른 대작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설국열차>는 개봉 4주차가 되는 7월 셋째 주 현재 미국 전 지역 총 210여 개 극장으로 확대 개봉됐다. 지난주부터 VOD(Video On Demand)를 비롯해 아이튠즈 등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음에도 다운로드 순위 1위라는 타이틀과 함께 극장에서의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은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비디오 시장과 극장 관객이 반비례하던 기존의 영화 공식을 <설국열차>는 가볍게 뚫고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극장 관객 반응보다 더 뜨거운 것은 평론가들의 찬사다.

'볼 가치가 충분한 야심찬, 용감한, 그리고 타협하지 않는 영화.' <NPR>
'매년 여름마다 지구 멸망 영화를 보지만, 이렇게 신선한 걸 보긴쉽지 않다.' <뉴욕타임스>
'한국의 천재 감독 봉준호의 야심과 더불어 관객들의 지적 수준을 존중한다는 점이 인상적' <버라이어티>

지난 몇 주 간 미국 유수 영화의 신문 잡지의 영화 리뷰들은 <설국열차>에 대한 호평 일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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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현재(한국시각) 탑 평론가들에게 평점 94%를 얻고 있는 <설국열차> ⓒ 로튼 토마토


봉준호 감독에게 먼저 연락하며 적극적으로 출연을 자청했던 주인공 크리스 에반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무언가 다른 걸 보기 원한다면 설국열차를 봐라. 로튼 토마토가 이를 증명한다."

7월 20일 현재 <설국열차>는 평단의 지표라 할 <로튼 토마토>에서 34명의 탑 평론가 중 33명, 134명의 평론객 중 126에게 Fresh 평점을 받고 있다. 이런 결과는 최근 수 개월간 미국 개봉작 중 최고의 평가다.

"<설국열차>, 오랜만에 만나는 수작이라 생각해"

미국에서도 시골인 인구 10만의 도시 파고(Fargo)는 대중문화의 혜택에서 좀 비켜난 지역이다. 지역 대학풋볼팀이 기적의 연승을 할 때 ESPN 대학 풋볼 중계팀이 파고 도심에 중계석을 차린 적이 있었는데 지역 신문과 방송들은 몇 날 며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소개하며 흥분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면서.

그런 까닭에 한국서 1000만이 들었다는 <변호인>의 미국 개봉이 확정되었을 때도 역시 그건 대도시 사람들만을 위한 선물이었다. 그런데 <설국열차>는 예외가 됐다. 100년 넘은 지역 문화재급 극장의 낡고 큰 스크린에서 송강호와 '요나' 부녀의 우리 말 대화를 듣는 기분은 반가움을 넘어 짜릿하기까지 했다. 미국인들에겐 낯설 이 영화가 동네 극장에 걸린 이유가 궁금했다. 파고 극장(Fargo Theatre)의 기획을 맡고 있는 에밀리벡(Emily Beck)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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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 극장 기획자 에밀리 ⓒ 최현정


- 7월 18일로 <설국열차> 개봉 2주차다. 관객들 반응은?
"매우 좋다. 어제도 관객들의 반응을 직접 들어봤는데, 다들 별점 4~5를 주며 최고라고 하더라. 아직 정확히 집계해 보진 않았지만 오늘까지 든 관객 수는 500명 정도쯤 될 것 같다. 우선 한 주 상영 후 관객들 반응을 보고 연장 상영 여부를 결정하는데, 우린 다음 주 한 주 더 상영하기로 결정했다. 이 정도 추세면 한동안 가지 않을까 싶다."

-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뭔가.
"난 봉준호 감독을 좋아한다. 2년 전 <마더(Mother)>를 상영하며 매료됐다. DVD를 구해서 <괴물>도 보았다. 그래서 봉 감독의 새로운 영화가 나왔다기에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결정권자를 설득하기 가장 좋은 자료는 비평가들의 평가였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한꺼번에 갖춘 작품은 그리 흔치 않은데 이 영화는 오랜만에 만나는 수작이라 생각한다."

-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크리스 에반스(커티스)가 고뇌하는 장면? 평생 꿈꿔왔던 순간에 다른 선택을 요구받고 고뇌하는 장면이 마음 아팠다. 캡틴 아메리카의 크리스를 더 좋아하게 된 순간이었다."

-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와 <설국열차>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흠… 매우 똑똑한 영화다. SF 액션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에 대한 분석이 탁월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철학적 깊이가 있다."

엔진칸으로 넘어오려는 꼬리칸 사람들

한국에서처럼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은 극장을 나오면서 내가 있는 기차 안의 위치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대학생인 멜리는 자신이 노력해도 엔진칸 앞까지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스테판은 영화 내내 프랑스 혁명을 생각했다며 지금도 역사가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아리조나와 텍사스 국경을 목숨 걸고 넘어오는 가난한 중남미 이민자들, 최신의 무기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우리가 본 꼬리 칸의 사람들인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미국을 흔들던 '월스트리트점령' 시위나 미국 서점가에서 불고 있는 '피케테' 열풍도 결국 <설국열차>가 말하는 "열차 밖의 세상"에 대한 얘기라는 사실에 다들 공감했다.

문화적 현상엔 다 이유가 있다. 설국 열차가 한국을 시작으로 유럽을 지나 지금 미국 땅을 무섭게 질주하는 이유다.
#SNOWPIERCER #설국열차 #봉준호 #피케테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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