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e사람53화

"쌀 헐값 수입, 국내농업 망한다
'개방 막겠다'던 박 대통령 나서야"

[인터뷰]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중앙대 명예교수)의 쓴소리

등록 2014.07.23 08:12수정 2014.08.1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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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전 장관. ⓒ 권우성


"정말 쌀, 농업이 얼마나 국가적으로 중요한지 몰라요. 농민없는 국가가 있을 수 있어요? 농업없는 나라가 있을 수 있어요? 지금 정부에는 '쌀 시장 완전개방'만이 국익이라는 '어용'들이 판을 치고 있어요."

노(老)교수의 입담이 여전하다.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지난 18일 김 교수는 정부의 쌀 시장개방 발표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한다"고도 했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이 농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했던 말을 꺼내 들었다. 실제 지난 2012년 11월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대선후보 토론회 때 박 후보는 "농업은 시장논리에 맡길 수 없다, 농업 만큼은 제가 직접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에 그런 말을 했었군요.
"그래요. 약속한대로 이제 박 대통령이 나서야죠. 시장논리에 맡길 수 없다고 해놓고, 관세화 완전개방을 발표하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비겁하게 힘없는 농림부 장관 뒤에 숨지말고..."

- 장관의 발표가 곧 대통령의 생각과 다름없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더더욱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나서서 이야기를 해야지요. 대선 때 그렇게 약속해놓고, 아무리 농민들 표가 필요해도 그렇지요. 지금 쌀 시장 개방에 대해 박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죠."

그는 박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화도 소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농업 보호와 육성만큼은 진정성있게 추진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경제기획원에서 2000불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 소고기 개방론을 펼쳤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불같이 화를 냈어요. 그 이후부터 경제부처에서 쌀이나 소고기 수입 이야기가 쏙 들어갔지요."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최소한 아버지의 뜻이라도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20년넘게 국내 농업과 농촌 개혁을 위해 일해온 사람이다. 20년 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때는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우리쌀 지키기 범국민비상대책위'를 꾸리기도했다.


"'시장 논리에 안 맡기겠다'고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당시 경실련 농업개혁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비대위 활동을 이끌면서 대정부 투쟁을 주도했다. 이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과정에서 농민과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지난 김대중 정부 때 농림부장관까지 역임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중인 쌀 관세화를 통한 시장개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시장만능주의와 개방론자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정부는 올해 말로 세계무역기구(WTO)와의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끝나는 점을 들면서, 시장개방의 불가피성을 말하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내년부터 쌀에 관세를 매기면서 시장을 푼다는 거 아니예요? 정부는 마치 WTO 협정문에 (따라) 20년의 유예기간 후 관세화를 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요. 그런 내용은 협정문 어디에도 없어요.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 이제껏 쌀시장 개방을 유보하는 대신 의무적으로 우리가 쌀을 수입해왔고, 이 물량이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하니까요.
"그렇지요. 지금 우리가 해외에서 수입하는 쌀이 40만9000톤이에요. 이게 전체 쌀 소비량의 9% 수준이에요. 이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는데, 만약 정부말대로 관세화로 시장을 개방한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이 물량이 안들어오는 게 아니에요."

- 시장개방을 해도 계속해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그래요. 우리가 쌀 시장을 개방하든, 안 하든 이 물량은 계속해서 수입해야 해요."

- 지금 정부 주변에선 이미 내년 1월 쌀 시장 개방을 기정사실화로 놓고, 관세율을 어떻게 잡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고개를 절레 흔들며) 그 어디에도 우리가 내년 1월에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의무나 근거가 없어요. 오로지 시장개방론자들의 잘못된 상상력에 따른 억측일뿐이에요. 예전에도 국내 쌀시장 개방 이야기 나왔을 때, WTO 사무총장이 우리나라에 와서 '협정문 어디에도 근거 없다'고 말을 했어요. 한국과 쌀 수출국이 협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 현재의 쌀 자급도 등을 봤을 때 400% 이상 쌀에 관세를 매기면 충분히 우리 쌀도 경쟁력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것도 문제예요. 우리가 이제껏 해외로부터 공식적으로 쌀을 수입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관세를 매길 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가격자체가 없는거예요. 일본이나 대만은 관세화 개방을 하기 전에 부분적으로 수입한 예가 있어서, 그에 맞게 500~800%의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었지요. 그런데 우리는..."

"쌀에 매길 관세 기준이나 근거도 없어... 시장개방은 농업 붕괴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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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전 장관. ⓒ 권우성


- 우리는 고율 관세를 매기고 싶어도 가격기준 자체가 없으니까 힘들다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수입쌀에 높은 관세를 매기려고 해도 무슨 근거나 기준이 있어야죠. 그런데 그것을 매길 마땅한 근거가 없는 거예요. 관세화로 개방을 하려면 상대국과 협상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500, 600% 정하면 뭐합니까. 미국에서 '노(NO)' 하면 끝인데..."

- 관세율 자체가 상대가 있는만큼 정부도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 같던데요.
"작년에 미국쌀과 한국쌀 가격 차이를 봅시다. 거의 500% 정도 돼요. 중국쌀과는 400% 차이가 나요. 그런데 지금 300~400% 정도의 관세만 매기더라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나온는데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예요. 농림부 일부 간부는 '쌀 관세율 200%'까지 언급했다고 하는데, 제정신인지..."

농림부 간부가 누구인지, 그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대신 정부 당국자들의 안일한 태도를 문제삼고 있었다. 오로지 시장개방만이 살길이라는 편협된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관세율과 상관없이 쌀 시장 개방이 가져올 한국 농업의 붕괴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의 말이다.

"자 보세요. 우리가 얼마인지 높은 관세를 매긴다고 칩시다. 하지만 쌀이 주 식량이 아닌 미국의 거대 곡물 기업들이 쌀 수출 값을 크게 내려보세요. 단 1년만이라도 쌀 수출 가격을 내려버리면, 아무리 관세를 높게 매겨도 값이 높지 않아요. 그렇게 미국쌀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면 우리 농업은 망하게 돼요."

그는 "국내 쌀시장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농민들은 땅을 떠나게 될 것이고, 그 자리에 공장이나 상업단지 등이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쌀 농사가 사라지게 되면 우리 국민들의 식량 주권과 먹거리 안전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기자에게 계속 반문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농업이 없는 나라, 농촌 없는 도시, 농민없는 국민이 존재할 수 있어요? 쌀농사가 사라지면 거대 다국적기업의 유전자조작 식품이 우리 식탁을 장악하겠지요. 식량주권은 말할 것도 없어요. 옛 소련 연방이 왜 여러 나라로 나뉜지 아세요? 식량 주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이제라도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 호도를 그만하라고 충고한다. 일방적인 여론몰이나 일부 농민단체장을 회유하는 데 정부가 급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정부가 할일은 국민에게 진정성있는 사과와 동의를 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협상은 미국이나 다른 상대국을 대상으로 치밀하게 준비하라는 것이다. 노(老)교수의 마지막 쓴소리이자 충고였다. 
#쌀시장개방 #WTO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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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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