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제정되지 않으면...
유족들의 다른 모습 보게 될 것"

[세월호 참사 100일] 유경근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대변인 인터뷰 ②

등록 2014.07.24 08:39수정 2014.07.2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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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라도 예은이가 찾아왔으면...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3일 국회 본관앞에서 열흘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참사 100일이 다 되어가도록 딸을 잃은 이유도 모르는 아빠. 꿈에라도 딸 예은이가 찾아왔으면... ⓒ 남소연


그는 먼저 떠난 딸을 위해 대변인 활동을 시작했다. 누군가를 대변하는 일을 태어나 해본 적 없는 그였다. 곡기를 끊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그는 단식농성도 시작했다. 여의도 국회 본청 2층 정문 앞 대리석 바닥에서 노숙하면서 소금과 물로만 버티고 있다. 단식도 딸을 위한 결단이다.

아비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못한 아비로 남지 않기 위해, 그는 "팔자에도 없는 일들을 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유경근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대변인이다.

세월호가 딸 예은(18)양과 함께 바다 속에 가라앉은 지 100일이 되는 시간 동안, 유씨는 사고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딸 앞에서 모든 게 죄스럽다. 100일이 되도록 왜 사고가 났는지조차 밝히지 못했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구해주지 못한 게 지울 수 없는 화인으로 남았다는 유씨에게는 아직 참사 100일인 7월 24일이란 오지 않았다. 여전히 모든 게 '4월 16일'에 멈춰 있다. "죽어서 예은이 곁으로 갔을 때 떳떳하게 딸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그는 멈춰버린 시계바늘을 움직이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죽을 각오"로 스스로와 싸우고 있다. 

"특별법 제정 안 되면 새로운 모습 보게 될 것"

참사로 아이를 잃은 다른 부모들도 매한가지다. 왜 그렇게 어이없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떠난 아이에게 설명해주기 위해, 생전 안 해본 서명운동과 노숙 농성 등에 뛰어들었다. 여전히 아이 생각에 잠드는 것조차 힘든 유가족이지만, 아빠·엄마들은 '오늘은 꿈에서 아이와 만나야지'라는 생각으로 잠을 청하며 내일을 맞이한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100일이 되는 24일까지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그동안 유족들에게서 볼 수 없던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씨는 "우리는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의지가 강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이 부모 곁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지치지 않는다"라며 "우리가 특별법 제정이나 진상규명이 안 된 채로 나이 들어 죽거나 아파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해서 늙어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23일 국회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에서 유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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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 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흘 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 남소연


- 대변인을 비롯해 희생자 부모 500여 명이 지금까지 가족 대책위를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다른 참사 대책위 사례와 다르다는 평이 있습니다. 
"우리가 똘똘 뭉친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요.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도 함께 하고 있지만, 단원고 희생자 가족들만 놓고 봤을 때는 우리 아이들 때문이죠.

육지로 올라온 아이의 장례 치르고 화장하고 추모공원에 안치할 때부터 부모들은 아이 입장에서 모든 걸 생각했습니다. 누가 얘기도 안 했는데 같은 반 친구들이 모인 곳으로 갔거든요. 시설이나 접근성은 전혀 고려 안 하고요. 우리도 원래 안산 하늘공원에 가려고 했는데, 예은이 친구들이 다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있어서 그리로 갔어요.

진상규명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100일이 될 때가지 흐트러지지 않고 한 목소리, 한 뜻으로 움직이는 이유 역시 아이들만 생각해서 그런 거라고 봐요. 회의할 때 각자 의견이 달라서 치고 박고 싸우더라도, 결국 하나 의견으로 모아지거든요. 우리 아이들이 서로 손잡고 부모들을 보고 있는데, 어떻게 부모들끼리 손을 놔 버리냐는 겁니다. 그건 내가 애를 또 죽이는 것밖에 안 되니까. 우리 부모들 심정이 다 그렇기 때문이 흩어지고 싶어도 흩어질 수가 없어요.

평생 시위란 걸 해보지 않은 분들이 서명운동, 노숙농성, 단식농성, 도보행진을 하는 것도 아이들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어이없게 죽었는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하니까요."

- 세월호 사고 초기부터 지금까지 가족대책위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변인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때가 언제입니까?
"대변인은 대신해서 얘기하는 사람이잖아요. 개인 의사를 멋대로 얘기해선 안 됩니다. 철저하게 대책위 부모님들이 동의하고 허락한 이야기들만 해야 해요. 그런데 사실 그게 쉽지 않거든요. 부모님들과 내 의견이 다르다는 뜻은 아니에요. 내가 항상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해서 힘들다는 겁니다. 너무 앞서가거나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항상 대책위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부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 일부 언론사에서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유도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원하는 답을 안 해주면 돌려서 또 물어보더라고요.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없는 걸 만들어내고 싶진 않습니다. 우리 모습을 미화시키고 싶지도 않고, 일부러 절절하게 보이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우냐'고 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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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 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흘 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유씨의 시계는 사고 당일인 4월16일에서 멈춰버렸다. ⓒ 남소연


- 어떻게 대변인 직을 맡았나요?
"집에서 예은이 흔적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아이 쳐다만 봐도 눈물이 나고 예은이가 쓰던 물건만 봐도 눈물이 나니까. 바쁘게 지내면 예은이 생각이 안 날 것 같아서 대책위에 나가서 일거리를 찾다가 대변인을 맡았습니다. 실제로 워낙 바쁘니까 낮에는 아이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단식 농성하기 전에는 안산에서 종일 회의하고 인터뷰하고 부모들 만나서 얘기하다가 오후 9시에 분향소 가서 아이 사진 본 다음 새벽 2시쯤에나 집에 들어갔습니다.

솔직히 일 다 끝나고 집에 가서 자려고 하는 그 시간이 정말 힘들어요. 모든 행동이 죄스럽기 때문에. 자려고 누우면 '아빠가 돼서 피곤하다는 건가'라는 생각에 힘들고, 누워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것도 미안하고, 막 울면 예은이가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미련하게 눈물만 흘린다'고 할 것 같다 미안하고, 배고파서 컵라면 먹으려고 물을 부으면 '이 와중에 먹냐'는 생각에 미안하고…. 모든 게 미안해요."

- 100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 예은양에게 무엇이 가장 미안한가요?
"진상규명이 조금이라도 됐으면 덜 미안할 텐데, 여전히 4월 16일에 멈춰있으니까 미안하죠.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상황은 4월 16일이니 모든 게 미안할 수밖에요. 뭐하나 바꾸지도 못하는 아빠니까. 죽어갈 때 아이를 꺼내주지도 못했으면서, 아이가 죽어갈 때 옆에 있어주지도 못했으면서, 모든 게 여전히 4월 16일에 멈춰있으니까. 어떻게 안 미안할 수가 있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제 자신을 위해서 대변인 일을 하는 겁니다. 나중에 죽어서 예은이 만나러 갔을 때, 얼굴 똑바로 쳐다보고 싶어서요. 여기서 포기하면 죽어서도 예은이 얼굴 못 볼 것 같아요."

- 도보행진이나 노숙 농성하는 다른 부모님들도 같은 심정일까요?
"당연하죠. 다들 힘들어요. 낮에 이것저것 일하는 것도 힘들고, 마음은 더 힘들고. 사실 부모들은 여전히 집에 누우면 잠이 안 와요. 억지로 잠이 들면 눈 뜨기 싫어서 힘들기도 하고요. 그나마 잠 잘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예요. 혹시 꿈에서 아이를 볼 수도 있으니까. 그 이유 때문에 억지로 잠을 청하는 거죠. 간혹 분향소에서 부모들을 만나면 유난히 그날따라 표정이 밝은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은 분명 전날 아이 꿈을 꾼 거예요. 결론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이 부모 곁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지치진 않을 겁니다."

"포기하고 죽진 않겠다"

-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 농성으로 가족들이 쓰러지는 일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무기한으로 농성을 이어가기는 무리 아닐까요?
"무기한으로 할 수 있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잖아요. 긴 싸움이니까 건강 지켜가면서 싸워야 할 것 아니냐고 얘기들 해주시는데요. 우리도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죠.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우리는 그렇게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이 순간 우리가 쏟아 부을 수 있는 걸 다 안 쏟아 부으면 아이에게 미안하니까. 특별법 제정이나 진상규명이 안 된 채로 나이 들어 죽거나 아파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해서 늙어죽는 일은 없을 겁니다."

- '세월호 특별법이 24일까지 처리가 안 되면 그동안 저희 유가족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SNS에 예고했는데요. 무슨 뜻입니까?
"우리 가족들이 그만큼 절박해서 어떻게든 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하는 의지가 강하다는 거죠. 통과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 사실 특별법은 하나의 관문일 뿐입니다. 100일을 기점으로 더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국민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304명의 희생자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그동안 숱하게 반복된 여러 참사 희생자들이 우리에게 해내라고 명령하는 겁니다. '우리 죽었을 때, 너희는 바로 잊었지? 그래서 결국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지? 그런데도 또 잊을래? 이번에는 제발 제대로 고리 좀 끊어봐. 우리도 이렇게 죽을지 몰랐어. 남의 이야기인줄 알았어. 그런데 우리도 이렇게 죽더라. 너희는 예외일 것 같아? 또 잊으면 너의 차례일지도 몰라'라고요.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모든 국민들이 들으셔야 합니다. 그것을 이뤄나가는데 저희가 가장 앞에 설게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겁니다."
#유경근 #세월호 #세월호 특별법 #박근혜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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