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기획-부채 탕감②] 인권보다 채권 앞서는 나라... '개과천선' 필요

등록 2014.07.31 11:13수정 2014.07.3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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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부채 1000조 원 시대.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장기 연체 채무자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99%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서 비롯된 '롤링 주빌리'가 한국에 더 절실한 이유입니다. <오마이뉴스>는 '99%에 의한, 99%를 위한 빚 탕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희망살림과 함께 장기 연체 부실 채권 '땡처리' 실태와 '대출 권하는 사회'를 고발합니다. 이 글은 그 두번째입니다. [편집자말]
최근 팔레스타인에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유대인들은 중세시대부터 유럽의 왕따였다. 이유는 성서에서 금하는 대금업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구약과 신약을 넘나들면서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꾸어주면 그에게 채권자 같이 이자를 받지 말라'(출애굽기 22장 25절)는 교리가 강하게 담겨 있다.

돈으로 돈을 낳는 일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해 엄하게 규제했으며, 그에 따라 대금업에 종사하는 유대인을 경멸과 조롱의 대상으로 여겼다고 한다.(<금융오딧세이>, 차현진 저)

이처럼 천대받던 대금업이 금융업으로 조금씩 성장하게 된 배경은 그나마 무역업이 활발해지면서 상업 금융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일종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였던 셈이다. 당시의 어음 할인 방식의 상업 금융은 무역업자들에게 사업을 확장하고 무역을 촉진하는 데 윤활유 역할을 했다.

그렇게 발전과 변신을 거듭해온 금융은 이제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는 윤활유 역할 정도에 안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 전체를 거머쥐고 파괴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 정도이다.

연 매출 350억 원 회사 빼앗긴 것도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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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종영한 드라마 <개과천선> ⓒ MBC


6월 말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에서는 은행들이 무리하게 판매한 파생 금융상품에 의해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쓰러졌던 실제 사건을 다뤄 화제가 되었다. 당시 판매된 파생 금융상품은 키코(KIKO)라는 것이었다. 이 상품은 환율이 내려갈 때 기업들이 입는 손해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다.

그러나 정작 키코는 환율이 내려갈 때 기업들이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은 제한적인 반면 환율이 크게 상승할 경우 무한대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사기적 구조로 설계되었다. 키코 사태가 한창이던 2008년 검찰이 의뢰한 미국 선물거래위원회(CFTC)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견해는 우리나라 키코 사태에 대해 '사기죄로 기소해야 한다'였다.


한 중소기업의 조아무개 대표는 바로 그 사기적 파생 금융상품으로 하루아침에 건실한 기업을 빼앗겼다. 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50%도 안되는 연 매출 350억 원, 직원 100명을 고용하던 기업이 금융상품 계약서 한 장으로 350억 원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은행들은 여전히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로펌을 고용해 지난해 소송에서 승소했다. 키코 피해 기업들은 기업을 잘못 경영한 것도 아니고 수출 실적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단지 금융상품 가입서 한 장으로 평생을 일군 기업이 주저앉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그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키코라는 파생 금융상품으로 인해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바로 그 빚으로 기업 자산을 하나둘씩 빼앗기기 시작했다. 빚이 늘었다는 이유로 이자율이 오르고 이자율이 오르니 빚이 더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졌다.

수출업체였기 때문에 해외 거래처와의 영업으로 처음 얼마간은 매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번 돈으로 자신이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갚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오르는 이자율, 늘어나는 빚은 매출마저 잠식하기에 이른다. 결국 기업 자산을 하나둘 매각하고 직원들을 하나둘 내보낼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법정관리 상태가 되어버렸다.

회사에 이어 개인 자산까지 다 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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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9월 8일 오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환헤지 피해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환 헤지를 위해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인 등 관계자들이 '키코아웃'이라고 쓴 종이카드를 들어보이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 금융의 관행은 위험을 함께 부담하지 않고 오로지 소비자와 채무자에게만 전가하는 데 있다. 기업에 필요한 자금 공급으로서의 대출 상품은 은행의 전문성으로 기업평가를 제대로 함으로써 위험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업 대표자의 보증을 통해 대출 위험을 쉽게 처리해 버린다.

물론 어떤 면에서 은행이 망하면 세금이 투입될 수 있기 때문에 은행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은 은행이 망하지 않는 사업을 하도록 많은 영업 규제를 한다. 최악의 세금 투입사태를 예방하려고, 은행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위험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무책임하게 운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납세자의 이익과 소비자의 이익이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우리나라 은행들의 관행은 모든 위험을 소비자에게 전가함으로써 마치 납세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세한다. 그 결과 기업 대출은 언제나 대표자의 보증이 따라붙는다. 이제 파생 금융상품 계약서 한 장으로 법정관리에 들어선 기업의 빚이 대표자 개인의 빚으로 전가된다.

앞서 사례자 조아무개 대표는 350억 원 회사 대출 중 190억 원을 책임져야 했다. 일부는 기업 자산을 매각함으로써 해결했지만, 나머지는 조 대표의 개인 자산을 헐값에 처분하면서 갚아야 했다. 무역인상, 대통령 표창까지 받던 수출 애국자가 하루아침에 모든 자산을 처분하고도 빚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연체자 신분이 되었다.

주부에게도 3억 원 갚아라... 집요한 대부업체 추심

조 대표는 결국 자산을 전부 처분하고도 남은 빚 때문에 법원의 개인회생 절차를 밟았다. 개인회생은 빚 전체를 안 갚는 것이 아니라 소득의 범위 내에서 최대한 갚아나가는 채무 조정 프로그램이다. 기업의 모든 자산과 지분을 빼앗기고 개인의 집도 빼앗겼지만 그래도 거래처가 살아 있고 기술이 있는 한 새 출발에 자신 있다 여겨, 과감히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법원을 통해 조정해 갚았다. 그러나 금융의 탐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집을 처분해서 갚고도 남은 6억 원의 대출 채권을 은행이 대부업체에 헐값에 팔아 넘겼다. 여전히 그 채권은 살아서 채무자를 괴롭힐 틈을 노리고 있었다. 조 대표의 채권은 담보물이 있기 때문에 70% 가격에 팔렸을 것이다. 채권의 2차 시장에서는 6억 원짜리 대출이 5억6천만 원에 팔려 담보물인 집을 처분해 5억 원 이상 회수하는 실적을 챙겼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남은 빚이 3억 원이라는 것이다. 집을 처분해 갚은 빚은 원금부터 계산한 것이 아니라 연체 이자부터 제했다고 한다. 조 대표는 개인회생으로 절반 가까운 빚을 다시 갚았다.

그리고 이제는 법원을 통해 빚을 조정해 다 갚았으니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다고 여긴 순간, 채권 추심회사로부터 다시 추심 통지가 날아왔다. 당시 배우자가 연대보증을 했기 때문에 배우자가 3억 원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채권이 대부업체에 여전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마치 남의 빚을 갚듯 전부 털어 넣었음에도 평범한 주부인 아내에게도 추심을 한다. 이미 충분히 이익을 실현하고도 차고 넘쳤을 금융회사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대부업체에 헐값 매각할 거면서... 왜 채무자에게 적극적 채무조정 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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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서울 명동 열매나눔재단에서 희년함께, 희망살림 등이 주최한 ‘성경의 부채탕감과 한국 교회의 역할’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토론회에서 앞서 참가자들이 채무자 99명의 부채 10억 원을 소각하는 상징 의식을 치르고 있다. ⓒ 김시연


최근 희망살림과 희년함께라는 사단법인은 채무자 99명의 빚 10억 원을 소각했다(관련기사 : "빚 탕감 원조는 하나님... 한국 교회 뭐 하나"). 대부업체로부터 헐값에 매입하거나 기부받은 채권을 소각해 99명의 채무자를 완전히 빚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들의 빚은 최소 10년 이상된 것들이다. 이러한 빚 탕감 운동에 일부는 '빚졌으면 갚아야지'라는 따가운 눈총을 보낸다.

그러나 희망살림에서 만난 채무자들 상당수는 다른 가족이나 지인의 빚, 연대 보증 등으로 본인도 취약계층인데 억울한 빚을 진 경우가 적지 않다. 혹은 절대적으로 낮은 소득으로 생활비가 부족해 고금리 대출을 이용해 이자로만 수 년간 대출 원금 이상을 갚은 경우가 상당하다. 그러나 최후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연체가 시작되고 곧바로 지독한 추심을 견뎌야 한다.

빚 독촉으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고 오히려 더욱 더 빚 갚기 어려운 형편에 내몰린다. 결국 노숙인이 되거나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등 극단적으로 사회에서 퇴출되어버리기도 한다. 상담 중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떠올린다는 채무자도 많다. 10년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에는 뼈까지 다 발라가는 듯한 탐욕스런 금융 앞에서 맨몸으로 웅크린 채 시름시름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대부업체에 헐값에 채권을 팔 것이었으면 왜 채무자에게 적극적으로 채무조정을 해주지 않는가. 10년 동안 이자를 성실히 갚아도 하루아침에 담보물을 처분해 살던 집도 가차 없이 빼앗아가는 동안, 그 채권을 대부업체에 헐값에 팔아 무시무시한 추심까지 당하게 만든다.

총칼 없이 소리 소문 없이 채무자를 노예로 만드는 21세기 노예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인권보다 채권을 중시하는 나라에서는 법과 경찰, 금융감독 당국 모두 금융권의 손을 들어주기 바쁘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상당수 채무자들이 이미 빚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이자로만 원금 이상을 갚으면서도 장기 연체자로 사회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당한다.

여러 군데 대부업체를 전전하며 원금의 0.1%까지 헐값에 거래된 채권을 죽을 때까지 추심하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 중세시대 가난한 사람에게 이자 받는 행위를 천대시하던 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금융이 사람의 모든 노력과 결실을 제로로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현실을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제윤경 기자는 에듀머니 대표입니다.
#부채탕감 #키코 #빚 탕감 프로젝트 #희망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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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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