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와 박종철 치사사건의 놀라운 공통점

[게릴라칼럼] 세월호 침몰 사고로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

등록 2014.07.29 20:42수정 2014.07.2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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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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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문화제'가 2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유가족과 수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려 아픔을 나누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지났다. 사고의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며, 사고에 대한 책임자 역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왜 해경은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시각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수뇌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알려지지 않은 채 지지부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현재 이와 같은 상황을 방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정부가 오히려 나서서 세월호에 대한 망각을 조장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서는 온갖 발목잡기를 통해 국민들에게 지루한 여야 간 분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끊임없이 유병언 관련 소식들을 흘리며 책임 주체에 대해 물타기 하려는 그들.

최근 뜬금없이 나타나 세월호 이야기가 이젠 지겹다며, 그만 좀 하자고 외치시는 어르신의 등장은 바로 이와 같은 정부의 속내를 의미한다. 그것은 결국 보수층들에게 정부가 던지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이제 100일이 지났으니 떳떳하게 세월호 지겹다는 이야기를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그러나 단언컨대 그것은 정부여당의 착각이다. 세월호 참사는 어물쩍 덮기에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고다. 이는 단순히 사망자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세월호는 그동안 우리가 쌓아올렸던 대한민국의 총체이며, 우리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허울만 좋아 곧 선진국이라고 외칠 뿐, 정작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손을 놓고 있는 대한민국. 도대체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우리가, 대한민국이, 세월호 참사로 잃은 것

세월호 참사는 우선 우리에게서 봄을 앗아갔다. 수많은 청춘을 안은 채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아 버린 세월호. 그곳에는 아직 채 피지도 못한 봄꽃 같은 학생들이 자신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원혼이 되어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우리의 2014년 봄은 사라졌다. 여느 때 같았으면 산수유를 시작으로 벚꽃 필 즈음 전국이 봄놀이의 행락객들로 북적였을 텐데 2014년 한반도 이남의 봄은 참담하고 황망하기만 했다. 그 누구도 차마 봄의 찬란함을 이야기할 수 없었던 그 시간. 혹자들은 그래서 경기가 엉망이라고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것은 결코 죽은 자의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또한 세월호는 우리에게서 상식을 빼앗아 갔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참극 앞에서 모든 이들은 어이를 상실하고 말았다. 어떻게 저런 큰 배가 순식간에 뒤집어지고 가라앉을 수 있으며, 어찌 선장과 선원들은 자기만 살자고 승객들을 버린 채 무책임하게 도망 나왔으며, 또 해경과 해군으로 표상되어지는 국가는 저렇게 무력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세월호와 관련된 막말들이다. 대부분 힘 좀 쓰신다는 기득권층들이 그와 같은 말을 뱉었는데, 이는 그들이 타인의 아픔에 전혀 공감할 줄 모르는 소시오패스라는 것을 의미했고, 결국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종착역이 그런 괴물의 탄생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을 불러일으켰다.

"실종자 가족 행사하며 선동하던 이들..."(4월 20일,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
"국민이 미개하니까..."(4월 21일, 새누리당 정몽준 전의원 막내아들)
"라면에 계란 넣어 먹은 것도 아니고."(4월 21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완전 깡패네. 유족 맞아요?"(4월 25일, 김장겸 MBC 보도국장)
"세월호 사고는....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5월 3일 김시곤 KBS 보도국장)
"순수 유가족분들 요청을 듣는 일이라면..."(5월 9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쌩 난리친다."(5월 9일, 김호월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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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되자 해경 및 어선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 전남도청


마지막으로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해경이 무능해서 승객들을 구하지 못한 사실은 차치해두고, 그 이후에도 국가는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숨기는 데 급급하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세월호 특별법을 받지 않고 있으며, 피눈물 나는 유가족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는가.

그 결과 많은 국민들은 최소한 세월호 관련해서는 정부를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 특히 최근 발견된 '유병언 시신' 관련 논쟁은 현재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어느 수준인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다.

시골 촌부에서부터 시장 아낙네까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유병언 시신'과 관련하여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시신 발견 이후 검경을 비롯해 국과수까지 나서  유병언이 맞다고 온갖 증거자료를 들이대고 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정부 발표의 진실 유무보다 더 중요한 건 대다수 국민들이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 우리가 되새겨 볼 수 있는 사례는 5공화국 당시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다. 당시 경찰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관련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국민 중 이를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결국 이는 부메랑이 되어 정권 몰락의 기폭제가 되었다. 요컨대 국민의 신뢰가 사라진 국가는 존립 자체가 위험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계속되는 요사스러운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가, 대한민국이 얻은 것

그렇다면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무엇을 얻었을까? 우선 트라우마다.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해 가는 모습을 보며 이 땅의 모든 이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고를 통해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 능력이 없음을 분명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400명이 넘는 승객들이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우왕좌왕하다가 제대로 구조작업도 못한 정부. 과연 어느 국민이 그런 국가를 믿고 자기희생을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이와 같은 충격이 하나의 트라우마로 각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우리 역사 속에는 국가가 국민의 울타리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배신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수도를 버리고 도망친 뒤 다시 돌아와 남아 있던 시민들을 처단하고, 대한민국 군대가 민주주의를 외치는 일반 국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학살했던 역사.

게다가 현재 대다수 위정자들과 그 배후 세력들은 앞서 언급한 역사적 사례에서 언제나 국가의 이름으로 가해자 역할을 했던 이들의 후손이다. 공동체를 배신한 소수가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많은 이들을 탄압하고도 더 잘 먹고 잘 사는 왜곡된 사회구조. 결국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더욱 끔찍함을 느끼는 것은 아직 우리의 국가가 그런 위정자들의 정치기구일 뿐, 일반 국민들의, 국민들을 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집단기억이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모든 국민들에게 트라우마를 선사했지만, 동시에 우리가 하나로 결속될 수 있는, 우리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 역시 줬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우리 모두가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결국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천박한 의식이 이 모든 것의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들이 청계광장에 나와 유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은 결코 동정과 연민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과 내가 결코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요, 끔찍한 집단기억을 공유한 이들이 함께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과거 한국전쟁에 대한 집단기억이 반공국가 만들기의 초석이 되고, 80년 광주에 대한 집단기억이 민주화의 바탕이 되었듯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집단기억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언론 현실 보여준 세월호 참사, 하지만...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는 우리들에게 참 언론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 주었다. 물론 MB정부 등장 이후부터 지상파 방송들은 어용이 되었고, 태생부터 불공정한 종편은 원래가 수준 미달이었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는 그 수준이 얼마나 처참한 지경인지 국민들에게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고 초기부터 확인도 않은 채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그대로 내보내어 구조에 혼선을 주고, 사람이 빤히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보험 이야기를 하고, 정작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할 때는 월드컵이다 뭐다 해서 세월호과 관련된 진실들을 호도하기 바쁜 언론들. 과연 언론인으로서의 그들의 사명감은 어디로 갔는지.

다행히 세월호 참사는 그 와중에 우리에게 일말의 희망 역시 안겨주었다. 이 시대의 참 언론인이라 부를 수 있는 보석 같은 존재를 다시금 호명한 것이다. 바로 JTBC의 손석희 사장이다. 아직까지 뉴스 첫머리에 세월호 참사 며칠인지를 이야기 해주고 진도 팽목항을 연결하는 그의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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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이다 ⓒ JTBC


사실 처음 그가 JTBC 사장으로 갔을 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MBC가 그가 버틸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종편으로 가는 합당한 이유인가는 논쟁거리였다. 그리고 그 논쟁 뒤에는 확인할 수 없는 소문들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의혹은 세월호 참사 이후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공중파에 남아있든, 종편으로 갔든, 언론인 손석희는 현재 세월호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사건 중심에서 거의 유일하게 바른 보도를 하고 있는 방송인이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이 그에게만 관련 자료들을 보내고, 인터뷰에 응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 그는 보수언론들과 지상파에 맞서 많은 국민들에게 진실을 전하는 가장 큰 버팀목이다.

세월호 참사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으며 해결된 것 또한 없다. 국가는 우리더러 자꾸만 잊으라 하지만,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최소한의 책무이다. 정부는 어서 빨리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라.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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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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