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꾹 참아온 한 마디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인가"

[단원고 생존 학생들, 입을 열다16] L학생의 법정 증언

등록 2014.07.30 01:04수정 2014.08.1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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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31일 오전 1시 20분]


참사 이후 생존자와 그 가족, 유족들은 끝없이 아프고 또 아팠다. 4월 16일 그날만이 아니라 참사를 교통사고에 빗대고, 생존학생들을 비난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29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401호 법정 증인석에 선 L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그 고통을 털어놨다.

"이 사고 때문에, 다른 분들이 하는 욕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는 "누리꾼들이 포털 같은 데에서 그냥 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단순히 수학여행을 가던 길에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그 대처가 잘못돼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이라며 이런 걸 교통사고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참고 또 꾹 참아온 한 마디였다.

사고 당시 숙소 B-22번방(4층 중앙 좌현 8인실) 침대 위에서 놀고 있던 L학생은 친구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선실 안에 있던 8명 모두 복도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L학생은 "마지막으로 방에서 나올 때, 내 침대 건너편에 있던 친구랑 눈이 마주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 친구는 못 나왔다"고 말했다. 자꾸 그 눈빛이 떠오른다는 뜻이었다.

다음은 L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방송 나오기 전에 Q학생이 구명조끼 꺼내줬다"


[검찰 측 신문]

"사고 당시에는 숙소로 배정받은 B-22번방에서 친구들이랑 침대에서 놀고 있었다. 배가 기울어지자 짐들이 다 왼쪽으로 내려갔다. 침대에 있던 애들 몇 명은 짐 때문에 불편하니까 짐을 다 던지고 침대에서 버티고 있었다."

"충격음은 못 들었고, 컨테이너가 떨어진 것도 못 봤다. 그냥 맨 처음에는 '배가 기울었으니까 움직이면 더 위험하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렇게 방송이 나왔다."

"어떤 남자애가 안내방송이 나오기 전에 구명조끼를 다 꺼내줘서 애들도 입었다. Q학생이다. 그 애가 다른 방들도 돌아다니면서 구명조끼를 꺼내줬다. 사고가 난 시점으로부터 꽤 지난 때였다. 방송이 나오고 한번 불이 꺼졌다가 가만히 몇 분 정도 있다가 와서 구명조끼를 꺼내줬다."

"헬기 타겠다고 손들어...해경은 그때만 도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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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복도에 있는 친구가 손을 잡고 끌어줘서 방밖으로 나왔다. B-22번방에는 모두 8명이 있었는데, 나는 먼저 나와서 헬기를 탔다. 안에 있던 애들은 복도로 나오도록 (다른 친구들이) 끌어올려줬는데 그 뒤는 모르겠다. 선원이나 해경이 이때 도와준 적은 없다. (해경이) 헬기 탈 때만 끌어올려줬다."

"친구가 헬기를 탄다고 해서 나도 타려고 했다. 전해 듣기로 떨어질 위험 있으니까 헬기를 탈 수 있는 사람만 올라오라고 했다고 해서 나는 타겠다고 했다. 애들이 위에서 말을 전해준 거라 (탈 수 있는 사람만 올라오란 얘기는) 누가 그런 건지 모르겠다."

"해경이나 선원이 구해줄 것으로 알고 대기했다. 나는 그냥 쉽게 나올 줄 알았다. 사고 초기에 침몰 상황 알려주고 대피하라고 했다면 많은 학생들이 탈출 시도를 했을 것 같다."

"(로프 등에) 매달려서 나오는데 어깨랑 허리에 충격이 왔고 위로 올라가면서 다리에 타박상을 입었다. 지금은 괜찮다. (정신적으로 힘들진 않냐는 질문에) 마지막에 방에서 복도로 나올 때, 내 침대 건너편에 있던 친구랑 눈이 마주친 다음에 나왔는데 그 친구는 못 나왔다…."

"선원들이 그냥 가벼운 징역 살다가 시간이 흘러서 나오길 바라진 않는다. 그리고 이 사고 때문에, 다른 분들이 하는 욕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누리꾼들이 포털 같은 데서 욕을 많이 했다. 우리는 그냥 수학여행을 가다가 단순히 사고가 난 게 아니다. 사고 후 대처가 잘못돼 이렇게 많이 죽은 것이다. 이런 걸 교통사고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해경은 묻지도, 들어가지도 않았다"

[변호인 측 신문]

"B-22번방 근처에 좌현 갑판으로 나가는 출입문이 있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쪽) 앞까지 물이 다 차올라서 그쪽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방에서 애들이 창문 보면서 물이 차오르고 있다고 해서 (물이 들어오는 걸) 알았다. 잘 보진 못했는데 (좌현 갑판 쪽으로) 물이 올라오는 거 같았다. 그쪽이 기울어진 쪽이라 나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밖에 (구명정이) 오고, 물이 그렇게 많이 차오르지 않았다면 나갈 수 있다. 당시에는 물이 많이 차올라서 나갈 생각을 못했다. 친구들한테 그렇다고 들었다."

"계단 난간 잡고 올라가서 배 외벽을 밟고 좀 걸은 다음에 헬기를 탔다. 해경이 있던 외벽과 복도(B-23번방~28번방 사이)가 거리가 좀 있어서 (승객들을) 보지 못했을 것 같다. 친구들 소리도 헬기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헬기 바람이 세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헬기에 올라타는 걸 도와주거나 그 안에 있던 해경에게 '남아 있는 승객이 많다'고 얘기해준 적은 없다. 해경이 물은 적도 없었다. 해경이 선내로 들어가는 모습도 못 봤다. 들어가지 않고 외벽 쪽에만 있었다."

[관련 기사]

[생존 학생 증언①] "비상구 문 열어준 사람은 해경이 아니라 친구였다"
[생존 학생 증언②] "왜 친구들이 그렇게 됐는지 근본적인 이유 알고 싶다"
[생존 학생 증언③] "파란바지 아저씨가 나를 끌어올렸다"
[생존 학생 증언④] "애들도 '가만히 있으라잖아' 하면서 대기했다"
[생존 학생 증언⑤] "4월 16일 9시 58분, 창문 밖은 바다 속이었다"
[생존 학생 증언⑥] "선원들 엄벌에 처하길 원하는가" - "네"
[생존 학생 증언⑦]"박지영 언니가 복도에서 로비로 훅 떨어졌다"
[생존 학생 증언⑧]"지금도 잠잘 때 가위에 눌린다"
[생존 학생 증언⑨]"올라가 헬기 타겠다고 손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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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학생 증언⑪] '4층의 영웅' 남학생의 일갈 "선원들 1600년형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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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학생 증언21] "선원들, 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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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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