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왜 왔어? 창피하게"...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다

[엄마의 밥상②] 엄마의 소울푸드, 뒤늦게 후회했다

등록 2014.08.02 14:37수정 2018.03.0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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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밥은 나의 소울푸드다 ⓒ hu.wikipedia.org


소울푸드(Soul food)라는 게 있다. 흔히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를 말한다. 사전적 의미는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만들고 먹기 시작했던 전통 음식을 가리킨다. 언제부터인가, 각자가 간직한 토속적이면서도 아늑한 고향의 맛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 나는 단언컨대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의 본연은 '집밥'이요, 그 근간에는 엄마가 있다. 집밥만 떠올리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괜스레 울컥하게 되는 건 그런 이유다. 요즘에는 '웰빙'이라는 이름의 음식들이 넘쳐나지만, 어쩌면 내 마음속 깊은 허기는 엄마의 밥상으로 연상되는 소울푸드로 채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만든 음식은 나에게 어떤 명약보다 위대한 치료제가 되어주었으니까.

엄마가 어린 시절 만들어준 음식 맛은 정말 최고였다. 그 맛에 대한 추억은 항상 혀끝을 감돌며 영혼을 어루만지는 위로가 됐다. 내게 최고의 소울푸드는 엄마의 '시래깃국'이다. 어릴 적 아침마다 엄마가 된장을 풀어 시래기와 쏙(갯가재처럼 생긴 새웃국 맛을 내는 절지동물), 그리고 두부와 청양고추를 쏭쏭 썰어 끓여주시던 얼큰한 국물….

지금도 이상하게 몸이 안 좋고 기분이 울적할 때면, 그때 그 시절 그 시래깃국이 떠오른다. 밥 한 그릇을 말아 갓김치와 곁들여 먹고 나면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이, 언제나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초등학교 시절, 아들만 셋을 둔 우리 엄마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도시락을 준비했다. 하루는 그만 밥을 태우고 말았다. 나는 도시락 없이 학교에 갔다. 부랴부랴 새로 밥을 지어 도시락을 준비한 엄마는 학교로 찾아와 교실 밖에서 유리창 안을 기웃거렸다. '몸뻬(일바지)' 차림 그대로 보자기에 도시락을 싸서 찾아온 엄마를 보고 교실 안의 친구들은 술렁였다.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교실 밖으로 살며시 나와 작은 소리로 "학교는 왜 왔어, 창피하게…" 하고는 도시락을 낚아챘다. 돌아서는 나의 귓가에 대고 친구들이 물었다.


"누구니?"
"……."

엄마의 도시락에는 김치 반찬만... "학교는 왜 왔어, 창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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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 꽃보다 아름다운 엄마와 함께 여수 오동도에서 ⓒ 김학용


역시, 그날 엄마가 들고 온 도시락 반찬은 모조리 김치였다. 배추김치, 부추김치, 무김치. 주위 친구들은 손으로 코를 막으며 "아~! 뭔 냄새야, 너희 엄마가 김치 가져왔어?"라고 수군거렸다. 늦게 가져온 도시락에 멸치조림이라도 들었으면 좋으련만…. 내 앞에 놓인 현실은, 저 먼 나라에서 가져온 듯한 원망스런 반찬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 가방 속의 책이며 공책이며 필통에는 온통 김칫국물이 흘러 배인 흔적이 가득한데, 원망스런 김치가 또 나를 반기다니….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도시락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그날 점심은 거르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도시락을 내던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도시락을 싸지 말지, 왜 낯 깎이게 학교까지 찾아와서 창피를 줘?"
"엄마가 미안해, 다음부터는 학교도 절대 안 찾아가고 반찬도 맛있는 걸로 해줄게."

다음 날 내 도시락에는 엄마의 영혼을 담은 환상적인 반찬이 담겨 있었음은 물론이다. 다른 친구에게 혹시라도 뺏길까봐 도시락 밥 속에 숨겨 넣어주신 달걀부침 한쪽. 거기에다 아들 기죽을까 봐 어떻게 챙기셨는지 함께 준비한 분홍빛 소시지 반찬을 생각하면 왠지 마음 한편이 시큰해진다.

나의 철없는 투정 때문에 엄마는 상처받고 서운했을 텐데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게 내 먹을 것만 생각하고 투정만 부리던 마냥 철이 없는 아들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기억하는 것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관한 것들뿐이다.

생선 대가리와 그 뼈에 붙은 얄팍한 살점, 쉬어 빠진 나물로 비빈 밥, 먹다 남은 시래깃국, 알맹이는 다 깎고 남은 사과 꼬투리…. 나는 오랫동안 그것들이 정말로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인 줄 알고 있었다. 사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에는 관심도 없었고, 또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몇 년 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도가니>를 엄마와 함께 보러 갔다. 그런데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나를 부르더니 슬며시 한마디 던진다.

"저기 젊은 애들이 맛있게 먹는 거, 우리도 저런 거 하나 먹자!"

알고 보니 주위의 젊은 연인들이 들고 있는 팝콘을 말한 거였다. 젊은 사람들이 하나씩 들고 가는 팝콘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귀여운 우리 엄마를 위해 매점에서 주스 2잔과 가장 큰 팝콘 세트를 주문했다. 그것도 초콜릿이 묻어 있는 달콤한 팝콘으로.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보물단지도 아닌 팝콘 상자를 끌어안고 계신 엄마를 보니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가득한 밥상... 엄마가 좋아하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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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 김학용


불혹의 나이를 벌써 훌쩍 넘어버린 못난 아들. 엄마와 지척에 살면서도 한 달에 몇 번 찾아가지도 않는 못난 아들인데도, 나는 엄마한테 가는 길에 어김없이 전화로 이렇게 얘기한다.

"엄마! 나 지금 가니까 뭐 맛있는 것 좀 해놓아 봐요~!"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고향집 밥상에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 엄마의 흔적이 여기저기 배어 있다. 아들이 좋아하는 갯고둥은 언제 구했을까. 함께 준비한 양념게장, 서대회, 겉절이 등이 감탄사를 절로 부른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언제 어디서나 '어머나'라는 감탄사를 만들어내는 여신(女神)임이 틀림없다.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세상 그 어느 것에 견주랴, 어느 엄마가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 먹고 싶은 음식을 모르실까.

여러분께 감히 묻고 싶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알고 있는지.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바로 말할 수 있다면 대단한 효자이리라. 아니, 상을 줄 만큼 존경스러운 자식이라 확신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닌가. 아니,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항상 곁에 있어주었고, 언제나 나를 믿어준 존재. 하지만 나한테는 언제나 뒷전이었던 나의 어머니. 말로는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뿐이지는 않았는가. 행동으로 보인 적이 없는 어머니를 향한 사랑. 눈물 흘리기 전에 잠시나마 나를 뒤돌아볼 수 있음은 다행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소울푸드라는 게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의 소울푸드는 무엇일까? 지난 5월 차 안에서 우연히 들은 라디오 방송. 어버이날 특집으로, 엄마에게 보내는 세심하고 따뜻한 사랑의 편지와 사연들이 소개됐다. 감동적인 사연들은 듣는 내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어지는 진행자의 한마디.

"다음 사연입니다. '시골에 계신 엄마에게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라고 보내주신 청취자님 문자메시지네요. 아 그런데 이런 사연 보낼 시간 있다면, 어머님에게 직접 하셔도 좋겠는데요? 이왕이면 직접 찾아 뵈어도 좋고요."

이번 주말, 아름다운 엄마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엄마의 이불을 널며 엄마의 잠자리를 정돈해보지 않겠는가?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리라. 엄마의 소울푸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소울푸드 #엄마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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