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참패했는데 통쾌하다?
도대체 선거 어떻게 치렀길래

[분석] 야권 참패, 우연인가 필연인가... 의제도 전술도 모두 '실종'

등록 2014.07.31 10:39수정 2014.07.3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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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재보선 새누리당 당선자들 7.30재보선 결과 새누리당 후보가 총15곳중 11곳에서 당선된 가운데,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선자들이 꽃다발을 받으며 축하받고 있다. 왼쪽부터 홍철호(김포), 김제식(서산·태안) 이종배(충주), 유의동(평택을), 나경원(동작을), 김용남(수원병), 정미경(수원을), 정용기(대전대덕), 배광덕(부산해운대기장갑). ⓒ 권우성


야권이 대패했다. 종합성적은 11(새누리) : 4(새정치연합). 완패다. 반면, 여당은 압승했다. 이번 선거로 여소야대 국면이 조성되고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 할 것이라는 야당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여당이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됐고,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도 장기화 수순으로 돌입하는 분위기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는 선거 초반 5석을 예상했고 당시 많은 사람들은 '엄살'이라 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새누리당에게 안방까지 내준 새정치연합은 가까스로 4석을 지켰다. 호남 셋, 수원 하나. 전남 순천·곡성 지역구를 이정현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내준 새정치연합은 선거 직후부터 혼란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부산 해운대기장갑은 초장부터 공들이지 않았지만, '수도권 수성'을 주장한 경기 수원에는 천막 당사까지 치고 '요란'을 떨었다. 결과는 수원 영통 하나 지킨 걸로 끝났다. 선거 전날 언론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8 : 7로 비등한 결과를 도출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측도 완벽히 빗나갔다.

휴가철 평일의 재보선이라는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 선거였다. 야권은 퇴근시간대 투표율에 이변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마저도 없었다. 평균투표율은 32.9%. 선거구별로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곳은 전남 순천·곡성 51.0%, 가장 낮았던 지역구는 공천파문과 재산논란이 일었던 권은희 후보가 출마한 광주 광산을 22.3%였다.

휴가 중에도 유권자들이 반드시 투표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선거전략을 짰어야 했는데 그런 요인을 야당은 전혀 만들지 못했다. 막판까지 투표소 앞에서 표를 세서 결과를 예측하는 여당과 달리 야당은 막연한 심판논리에 기대 치밀한 계산을 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대개의 반응은 "최악 중의 최악"이라며 "참담함을 너머 참사 수준"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누가 운을 떼지 않더라도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스스로 알아서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두 대표가 조만간 사퇴서를 쓰고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사퇴하지 않는다면 당내 상황은 급반전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돈다.

문제는 이 같은 선거 결과를 새정치연합이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우발적 상황인가 하는 점이다. 하나씩 꼼꼼히 따져보자. 우선 당 지도부의 공천 문제다.


권은희만 얻고 다 잃은 '수첩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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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민 동작을 출마 선언... 허동준 난입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오른쪽)이 7월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전략공천 수락' 입장을 표명하자,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이 난입해 강력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이번 선거 초반부터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공공연히 "밀실공천"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한길, 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하는 공천의 결과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불만이 제기됐었다. 박근혜 대통령만 수첩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김한길, 안철수 두 공동대표도 '수첩공천'을 한다는 불만이 그것이다. 그 결정판은 '천정배-권은희-기동민-허동준'으로 이어지는 '돌려막기' 공천이었다.

이 돌려막기 공천에 대한 정치권의 분석은 구구했다. 무엇보다 안철수 대표가 대권으로 가는 길목에서 불필요한 당내 경쟁세력을 조기에 정리하고자 했던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우선 천정배 전 법무장관이 호남에서 깃발을 꽂게 될 경우 호남 정치세력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는 게다. 차기 대권에서 그 어떤 지역보다 우선적으로 호남을 세력화해야 하는 안철수 대표의 입장에서 보자면 천 전 장관이 자칫 눈엣가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동민 전 서울시 부시장의 경우는 박원순 세력의 확장을 경계했다는 분석이 있다. 기 전 부시장이 호남에서 세력화 하면 곧장 '박원순 키드의 세력화'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그것 역시 안 대표에게 달갑지 않은 카드로 인식됐을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안철수 대표가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천정배 전 장관과 기동민 전 부시장의 경선을 막은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두 정치인의 호남행을 막고,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게 공천 티켓을 줌으로써 안철수 대표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치세력화엔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권 전 과장은 지난 3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대선개입 수사 당시 민주당은 법치주의를 어겼고, 새누리당은 민주주의를 어겼다. 둘 모두에게 화가 났었다"며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꼈지만, 희망을 본 건 사실 안철수 현상이었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안철수 대표에 대해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원칙을 지킨다는 면에 믿음이 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기동민 전 부시장의 경우는 이번 공천파문으로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그를 '정치적 바보'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이른바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광주 광산을에 후보등록을 하고 선거운동 중이던 기 전 부시장을 느닷없이 서울 동작을로 불러들여서 현직 지역위원장인 허동준 동작을 지역위원장과 싸움을 붙였고 '활극 공천'이 되도록 방치했다.

허동준 위원장은 "기동민과 허동준 둘 다 죽이는 길"이라고 날을 세웠지만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는 "미안하다"는 말로 갈음했다. 

정의당의 상징적 존재인 심상정 원내대표와 노회찬 전 대표가 앞서서 당 대 당 야권연대를 주문했을 때도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는 "야권연대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리곤 후보에게 결정권을 넘겼다는 전언이 흘러 다녔다. 실제 기동민 전 부시장은 "노회찬 선배에게 양보하겠다"며 "새누리당을 꼭 심판해달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후보직을 사퇴했다.

결과적으로 기동민 전 부시장의 경우 광주 광산을에서 서울 동작을까지 한 선거에서 두 선거구를 뛰는 기염을 토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후보사퇴라는 비운을 맞게 된 셈이다.

일부 언론은 안철수 공동대표가 이번 선거에서 "권은희는 얻었지만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잃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지역 연고 없는 후보들... '땅개 전략'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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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축하 꽃다발 받는 나경원 후보 7.30재보선 서울 동작을에 출마해 당선된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30일 오후 동작구 선거사무실에서 축하꽃다발을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 권우성


둘째, 지역 연고도 없는 공천 문제다. 선거 때가 되면 왜 그 후보가 해당 지역에 오는가에 유권자들은 예민해진다. 그래서 후보들은 사돈의 팔촌까지 엮어서 그 지역과 관계가 있음을 자랑한다. 나경원 새누리당 서울 동작을 후보의 경우에는 자신의 이름을 상도동에 있는 작명소에서 지었고, 외가가 흑석동에 있었으며 노량진에서 출생했다는 점까지도 '연고'로 들었다.

그런데 김포에 출마한 김두관 후보의 경우는 무슨 연고로 김포에서 출마하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선거구도는 '김포의 아들' 대 '철새'로 치러졌고, 아무리 대선후보급의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라도 '동네선거'에선 맥없이 쓰러지는 결과가 빚어졌다.

선거 경험이 없더라도 대략적으로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는 재보선이란 전국 단위 선거와 달리 철저히 지역에 뿌리박은 '동네선거'로 치러야 한다는 선거 공식이 있다. 이른바 '땅개전략'이다. 바닥을 샅샅이 훑는 '조직선거'라야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는 지역에 전혀 연고가 없는 후보들을 개념 없이 배치해 낙선으로 이끌었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의 경우 뿌리없는 거물급 후보보다는 풀뿌리에 입각한 동네사람이 훨씬 친화적"이라며 "그런 면에서는 후보 전략에서 완벽한 실패"라고 꼬집었다.

셋째, 의제 실종 선거였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6·4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대안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정권심판론'이라는 닳고 닳은 의제로는 아무런 감동도 설득도 안 되는 분위기였는데도 이번 선거 전체를 아우르는 의제 하나 정하지 못했다. 과거 선거 때는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무상보육 보편적 복지국가 같은 담론적 의제를 갖고 나왔지만 이번에는 미니 총선급 선거를 치르면서도 아무런 의제가 없었다.

단순한 '세월호 심판론'을 제기했지만 정작 국회 안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하나 관철하지 못한 채 정부여당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연출해 오히려 유권자들로부터 빈축만 샀다.

또다시 아무런 공감도 이끌어내지 못한 '새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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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새누리당 혁신위원회 위원장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혁신위원회 1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넷째 선거를 앞둔 새누리당은 반드시 '선거용 전술'을 쓴다. 이번엔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박근혜 마케팅이 먹힐 것 같지 않자 '혁신작렬'이라는 표어를 걸고 보수혁신을 내세웠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준석씨 같은 젊은 정치인을 내세워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했다. 선거 뒤에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어도 그 순간 선거에 충실한 후보에게 유권자는 마음이 가는 법이다. 새정치연합은 그조차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세월호 참사 100일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라는 상황과 재보선이라는 상황을 투트랙으로 치러야 했다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성토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 때도 새정치연합은 국민들과 아무런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파워 트위터리안인 '독설닷컴(@dogsul)'은 "야당이 졌는데 왜 이렇게 통쾌한가"라며 "야당이 스스로 이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이 이기게 만들어 주지 않은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소설가 서해성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세월호 대중의 상처 앞에 패배라는 말조차 허영"이라며 "세월호의 진실 단 하나라도 온전히 밝히고 싶었다면 야당은 달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레인메이커(@mettayoon)'는 "이 정도면 궤멸"이라며 "새누리당의 궤멸 위기를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반전시켜주신 야권 지도부의 공이 제일 크다"고 비판했다.
#7.30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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