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통령 되고 싶다"던 손학규, 꿈을 접다

[인물탐구] 1993년 민자당 입당으로 시작한 손학규 정치역정 '21년'

등록 2014.07.31 19:55수정 2014.08.0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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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웃으며 떠납니다'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국회를 나서며 차량에 올라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7월 31일 오후 4시, 기자회견을 약속한 시각. 회견 장소인 국회 본청 앞에 도착했지만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차 문을 열지 않았다. 3분여 간 미동도 않던 그는 눈가를 훔친 뒤 차 문을 열고 나섰다. 1993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발을 들인 뒤 21년 간 쌓아온 정치 역정을 마무리하러 가는 길이다.

2012년 6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나는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다,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라고 밝혔던 그는 2년여 뒤인 이날 "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대한민국을 만들려 했던 나의 꿈을 이제 접는다, 능력도 안 되면서 짊어지고 가려했던 짐들을 이제 내려 놓는다"라고 담담히 밝혔다. 하루 전 치러진 수원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패배한 손 상임고문은 "지금은 내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20여 년간 정치인으로 살아온 손 상임고문은 "오늘 이 시간부터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라고 말하며 정치인으로서 마침표를 찍었다.

"한나라당 탈당 후 시베리아 땅으로... 순탄치 않았지만 보람 있었다"

손 상임고문의 정치 역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민주당 당 대표를 두 번이나 지냈지만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는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를 시작하며 민주자유당(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 입당한 것이 그에게는 부정적인 꼬리표로 작용했다.

그는 민자당 입당 직후 14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15대 총선에서 재선한 그는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 3선 의원이 됐고, 2002년 민선 3기 경기도지사가 됐다.

그랬던 그는 2007년 돌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빅 3'로 꼽혔던 그는 "한국정치의 낡은 틀을 깨뜨리기 위해 저 자신을 깨뜨리며 광야로 나선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라며 "한때의 돌팔매를 피하려고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을 택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그의 선택을 두고, 한나라당 내에서는 대선후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그가 정치 생명을 걸고 탈당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 창당 과정에 역할을 했고,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대표를 두 차례 역임했음에도 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손 상임고문을 따라다니던 꼬리표가 희미해진 건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2012년 7월 고 김근태 의장을 따르는 당 내 모임인 '민평련'이 주최한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에서 그는 "5년 전 한나라당에서 탈당했다"며 자신의 주홍글씨를 언급했다.

그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를 억지로 벗으려 할 것도 없다"라며 "다만 내가 젊어서부터 추구했던 민주주의의 가치, 사회적 약자, 남북 분단으로 인한 비극을 치유하는 것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김근태 의장이 '학규 좋은 사람이긴 한데…'라면서 뒷말을 잇지는 못하고 돌아가신 데 대한 죗값을 치르겠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주홍글씨를 언급하며 '죗값을 치르겠다'는 그에게 민평련은 대선 후보 지지투표에서 손 상임고문을 1위로 뽑는 것으로 답했다.

"제 이야기도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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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은퇴 선언한 손학규 7.30 경기 수원 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 남소연


실제 그의 뿌리는 '야성'에 있었다. 민자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그는 대학 시절 유신독재 반대운동에 투신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에는 고 김근태 상임고문, 고 조영래 인권변호사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인방'으로 불리며 학생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막을 내리던 때에도 기독교 사회운동에 몸담았었다.

손 상임고문은 박 전 대통령이 시해당한 날 동시에 목숨을 얻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그는 "(부마항쟁 시 체포대 보안대로 끌려가) "이유도 묻지 않고 48시간 동안 두들겨 맞았다, 그러고 나가더니 이틀 밤이 지나서야 헌병이 와 '괜찮으실 거에요'라고 하더라"라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시간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했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돌고 돌아 자신의 뿌리로 돌아온 손 상임고문은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로 선출됐고, 18대 총선(2008년)을 진두지휘했다. 대선 대패 후 총선 참패도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그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이뤄내고 박재승 변호사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영입하며 박수를 받기도 했다. 결국 당시 통합민주당은 81석 확보에 그쳤다. 그는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 당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평당원으로서 책임과 사명을 다할 것"이라며 대표직에서 물러나 강원도 춘천에서 칩거 생활에 돌입했다.

2년여 뒤, 정계에 복귀한 그는 2010년 10월 민주당 당대표로 또 다시 선출됐다. 이후 2011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분당에서 당선됨에 따라 당 안팎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당 대표로서 손 상임고문은 '야권대통합'을 제안하며 야권 지형 확장에 나섰고, 그 결과 정치권 바깥에 있던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이해찬·문성근 등 친노 핵심인사와 김기식·이학영 등 시민사회 인사로 구성된 시민통합당과의 합당을 이뤘다.

'야권 대통합'은 그에게 자부심이었다. 2012년 9월 대선 후보 순회 경선이 이뤄지던 때, 마지막 경선지인 서울에서 손 후보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누가 뭐래도 저는 야권 대통합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야권 대통합으로 우리는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기대를 받고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을 받게 되었다. 야권 대통합이 되었으니 제 역할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새 지도부의 구성을 원혜영 임시 대표에게 맡기고 저는 조용히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갔다.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이 쭉쭉 뻗어 올라 새누리당을 10% 이상 앞섰다.

우리는 총선 승리의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제 이야기도 여기까지다."

당시는 이미 문재인 후보로 대세가 기울어져있던 상황이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듯, 그는 이렇게 연설을 마쳤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으로 호응을 얻었던 손 상임고문은 결국 문 후보에 패해 당의 대선후보가 되지 못했다.

대선 후 독일 유학길에 오르며 정치권 밖에 머물렀던 손 상임고문은 '자의반 타의반' 7·30 재보선에서 수원병에 출마해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결국 패배했다. 20년 정치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자리. 31일 손 상임고문은 회견 내내 웃음을 띄며 정계은퇴 뜻을 밝혔다.

"정치는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합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시민 한 사람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저녁 있는 삶을 위해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국민의 삶이 되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 인생에 대해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시베리아 땅으로 나선이래 민주당과 함께한 저의 정치 역정은 순탄치는 않았지만 보람있는 여정이었다"라고 정리했다. 앞으로의 일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자유로운 시민인데 무슨 특별이 일정이 있겠어요, 여행을 할 수도 있고, 쉴 수도 있고, 책을 볼 수도 있고, 잠을 잘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21년간 정치인으로 살았던 그는 이제 '자유인 손학규'가 됐다.
#손학규 #정계은퇴 #저녁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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