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모르는 게 창피해 몰래 공부한 어르신들

[공연소개] 어르신들의 유쾌한 음악극 <내 나이가 어때서>

등록 2014.08.01 17:15수정 2014.08.02 12:23
4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어르신들. ⓒ 이은주


전북 진안에서 의미 있는 음악극이 상연된다. 음악극의 이름은 <내 나이가 어때서>. 이 연극은 1일부터 이틀간 진안문화의 집 마이홀에서 열린다. 공연 시각은 1일 오후 7시 30분, 2일 오후 4시다. 이번 공연은 진안군 귀농귀촌인 지역사회 기여사업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a

공연 포스터 ⓒ 행복한 노인학교

이 연극의 연출자인 윤수진씨가 내게 팸플릿을 보내 이 연극을 소개해줬다.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에 나이가 있나요. 나이는 많아도 열정은 넘쳐요. 젊었을 땐 정말 일만했지요….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팸플릿 내용 중)

음악극 <내 나이가 어때서>의 기획자 박후임씨는 팸플릿을 통해 "어르신들이 살아온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한 개인의 삶을 넘어 이 시대의 아픔과 맞닿아 있기에 모두에게 전승돼야 한다는 강한 내적 바람이 씨앗이 됐다"고 설명했다. 나는 이 팸플릿을 읽으면서 아래 대목에 눈길이 갔다.

"어르신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바쁜 농사철에도 책가방을 메고, 유모차를 밀고, 지팡이를 짚고 학교에 오시며 참으로 해맑게 웃으며 행복해하시는 모습은 눈물겹게 아름다웠습니다. 이 연극을 통해 잃었던 소중한 꿈을 다시 찾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르신들은 동네사람들이 볼까봐 공부가방을 유모차에 또는 가슴팍에 숨겨가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연극 <내 나이가 어때서>는 어르신들께서 한글을 익히고 터득해 직접 자서전을 쓰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음악극을 제작했다는 점과 지역의 귀농·귀촌한 분들이 함께 힘을 모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1년 3개월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존재와 존재로 만날 수 있었던 건, 어르신들과 만나는 시간이 그만큼 순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이자 연출가이며 예술치료사로서 공연을 돕겠다고 왔지만,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제가 더 많은 걸 얻었고, 치유 받았다는 걸 알겠습니다. 어르신들의 삶을 통해 배우고 얻은 지혜로, 앞으로 제가 만드는 공연들은 더 깊어지고, 더 생생한 삶을 담아내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공연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가면 어르신들이 많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팸플릿 내용 중)

a

어르신들. ⓒ 이은주


음악극 <내 나이가 어때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에 생긴 '행복한 노인학교'. 이 학교에 다니게 된 권정이, 성영경, 정안순, 최순이, 최한순 어르신들은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창피해 책보를 가슴팍에 숨기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학교에 나가느라 고생을 한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면서 글자를 배우고, 시도 읽고, 노래도 부르면서 부끄러움은 어느덧 사라지고 학교에 다니는 걸 즐거워하게 된다. 그런 어느 날, 과거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던 정안순, 성영경, 권정이 어르신들은 과거 속 인물들과의 해후를 통해 응어리진 마음을 풀게 된다.

한편, 폐암 수술로 몸이 힘들어 저 세상에 가고 싶어 하던 성영경 어르신은 어느 봄날, 죽음의 천사와 만나 춤을 추면서 앞으로는 인생을 즐기며 살아보기로 한다. 모두들 행복한 노인학교에 다니는 게 감사하다고 하면서 지금도 공부하기에 딱 좋은 나이라고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

아래는 <내 나이가 어때서>의 연출을 맡은 윤수진씨와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예술로 힐링을 추구하는 것인지?
"무슨 일이 있어서 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서전을 쓰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르신들의 삶은 그 자체로 중요한데 사실 그분들은 자신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질 않거든요.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삶이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걸 깨달으시고 가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과 도시에 계신 어르신들은 상당히 차이가 있어요. 도시에 계신 분들의 경우엔 한글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을 거예요. 유쾌 발랄 청춘 음악극 <내 나이가 어때서>에 나오는 어르신들의 경우엔 기역(ㄱ), 니은(ㄴ)도 쓸 줄 모르셨던 분들이세요. 그랬던 분들이 한글부터 공부를 해서 자서전을 쓰고, 공연까지 올리게 된 거죠.

3년 전에는 <심청전>을 했는데, 그때 어르신들이 상당히 자신감을 갖게 되셨다고 해요. 이번 공연은 그보다 더 어르신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회복되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왜 진안에서 연극을 하게 됐는지?
"서울에서 알고 지내던 목사님이 전북 진안으로 귀농하셨고, 그분이 작년 초 저에게 할머니들의 자서전 쓰기를 하려고 하는데, 그 이야기로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대본을 부탁하셨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예술치료사이기도 한 저는, 대본만 달랑 써서 보내는 것보다 그 어르신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예술치료도 함께 하겠다고 했어요.

어르신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면서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어르신들을 만나온 게 1년 3개월이에요. 처음엔 서먹하고 거리가 있던 관계가 시간들을 함께 보내면서 가까워지고, 만나게 되는 시간을 서로 기다리는 사이가 됐죠."

- 공연의 목적은?
"나이가 들었어도 충분히 그 나이의 삶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이 공연을 통해 젊은 사람들도 '나이 들어감'이 결코 서글프거나 뒤떨어진 삶이 아니라 당당하고 밝게 살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밝고 즐겁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나이 들어감'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어르신들의 삶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죠. 그것이 하나의 문화적 장르로 계승이 됐으면 좋겠어요. 기획을 하신 박후임 목사님의 뜻이기도 하지요."

a

어르신들. ⓒ 이은주


* 행복한 노인학교는 진안·무주·장수 3군이 만나는 학선리 마을의 노인들이 모여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학교다. 생명과 녹색교회를 꿈꾸는 봉곡교회가 2008년 1월에 배움과 여가활용을 목적으로 시작하여 1기가 4년간 8학기로 졸업했다. 다시 2기가 시작되어 현재 6학기가 진행 중이다. 행복한 노인학교의 특징은, 농촌의 작은 마을이라 문화적인 혜택을 쉽게 누리지 못했던 노인들이 자기가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야에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해 마음껏 배움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윤수진 #내 나이가 어때서 #진안 #음악극 #자서전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창녀에서 루이15세의 여자가 된 여인... 끝은 잔혹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