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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우리시대의 영웅을 기다리며!

[리뷰] 김한민 감독의 대작영화 <명량>

14.08.06 15:05최종업데이트14.08.0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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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의 신작 <명량>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개봉 일주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놀라운 기록이다. 1500만 관객도 가능하리란 전망도 나왔다. 그럴듯한 추산이다. 개봉관이나 화면의 엄청난 수효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지만, 객석 점유율이 따라준다는 얘기 아닌가? 이쯤이면 신기록 수립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객석에서 눈물을 보이는 여성관객이 적잖다. 2-3분에 한 번씩은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것이 한국영화 흥행공식 가운데 하나다. '눈물 속의 웃음'으로 천만신화를 보여준 <7번방의 선물>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그런데 <명량>에 오면 사정이 판이하다. 웃음기나 가벼움이 사라진 전란의 한복판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700만 관객의 <최종병기 활>에서 김한민은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허구에 의지한다. 신흥강국 청나라에게 속절없이 무너지고 짓밟힌 한스러운 역사 앞에 동원된 애국적 메시지의 결과다. <명량>에서 그는 사실재현에 큰 비중을 할애한다. 인간적인 영웅 이순신의 면모를 다각도로 접근하려 한다. 

인간 이순신 – 아들이자 아버지 이순신

영화 <명량>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1597년 9월 16일 '명량대첩'에 집중한다. 하지만 영화의 시간은 정유재란, 그러니까 1597년 초 재개된 왜군의 제2차 공세로부터 시작한다. 암군 선조가 왜군밀정 요시라와 서인의 농간에 빠져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 시점이 겹쳐진다. 갖은 고초 끝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순신.

백의종군하던 순신에게 들려온 어머니의 별세. 권율의 육군 휘하에 있던 그는 유교세계의 관례인 삼년상에도 참례하지 못한다. 그저 어머니의 위패만 모신 채 향불 피우고 예의를 갖춰야 하는 불효자가 되는 것이다. <명량>은 이런 불초한 자식의 면모를 감내해야 하는 이순신의 내밀한 아픔을 보듬는다. 어디 이뿐이랴!

장남 회에게 순신은 흉중을 토로한다. 순신이 통제사로 부임하고 있었을 당시 패배를 몰랐던 조선수군은 정유재란 발발이후 원균의 지휘 아래 6월 안골포와 웅포 해전, 7월 칠천량 해전에서 궤멸적인 패배를 당하고 만다. 거기서부터 발원한 병사들의 바닥모를 공포가 전군을 휘감고 있다. 전략회의에서도 공포 분위기는 지속된다.

순신은 회에게 내심을 털어놓는다. 비책을 가지고 있으되, 그것의 실현방도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순신. 그를 찾아오는 원혼들에게 술잔을 권하는 이순신. 영화는 언제나 고독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던 인간이자 자상한 아버지 순신을 잡아낸다. 우리에게 익숙한 위대한 영웅의 모습이 아닌 인간으로 현현하는 순신!

장수 이순신 – 전략가이자 지도자 이순신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한국인 누구나 알고 있는, 가슴 떨리는 이 문장에서 우리는 두둑한 배포와 전략가로서 이순신을 대면하게 된다. 일본수군과 비교하여 절대적인 열세에 있던 조선수군을 폐하고, 순신과 휘하군사를 권율의 육군에 재편성하려는 선조. 그런 군왕에게 순신이 보내는 장계에 실린 구절이 '열두 척의 배'와 일본수군의 두려움이다.

조선수군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면, 일본수군 역시 이순신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1592년 임진왜란 개전 이후 단 한 차례도 이순신을 이겨보지 못한 일본수군의 말 못할 공포! 순신은 왜군의 이런 공포를 이용하고자 한다. 두려움과 두려움이 정면충돌하는 전장에서 누가 선방을 날리는가?!

순신이 선택한 불멸의 어휘가 등장한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오,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必死卽生 必生卽死!"

그의 선택은 자명하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사지의 한복판으로 대장선을 인도하는, 자신의 죽음으로 병사들의 공포를 극복하게 하려는 지극한 전략가이자 지도자로서 이순신의 면모가 약여하다.

전략가이자 지도자 이순신의 실체가 기막히게 실현되는 장면은 소름 돋는 명량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맞이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현된다. 이것은 백성과 국가를 살리고자 스스로를 죽이고자 했던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되고도 지극한 것이다. 풍전등화 같던 나라와 백성을 구해낸 위대한 야전사령관 이순신의 진면목이다.

우리는 왜 영웅을 기다리는가!

임진왜란이 조선의 승리로 귀착된 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한다. 명나라 군대의 개입과 원조, 의병들의 활약, 이순신의 해상권 장악이다.

첫 번째 원인은 우리를 심히 부끄럽고 민망하게 하는 것이어서 논외로 하자. 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대원군은 청나라 군대파병을 요청하고,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자 명성황후는 일본군의 출병을 요청한다. 뼈아픈 사대망국의 장면들!

두 번째 원인은 가등 청정이나 고니시 유키나가 같은 왜군장수들을 크게 당혹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왕이란 자는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는데, 백면서생들과 스님들이 백성들과 세력을 규합해 게릴라전을 전개하다니! 100년의 전국시대를 경험한 왜인들의 눈에는 참으로 해괴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환호하는 것은 세 번째다. 23전 23승에 빛나는, 세계 해전사상 불후의 금자탑을 쌓아올린 이순신! 그가 없었다면 조선은 일찌감치 사라졌거나, 명나라와 일본의 강화조약에 따라 반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영웅을 기다리는 것이다.

토마스 칼라일은 <영웅의 역사>에서 영웅의 두 가지 요건으로 성실성과 진실성을 꼽았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평가받는 이순신의 미덕 두 가지가 성실성과 진실성, 아니었을까! <명량>은 그것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충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 ⓒ CJ E&M


회가 순신에게 묻는다.

"군왕은 아무 죄도 없는 아버님을 잡아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려 들지 않았습니까?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신다 해도 군왕은 다시 아버님을 가두고 죽이려 들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버님은 군왕에게 충성을 다하려 하십니까?" 

서른 살 장남을 지긋이 바라보며 순신이 나직하게 말한다. 

"충은 의리다. 의리는 왕이 아닌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

장수의 충성은 백성을 향하고, 백성이 있어야 군왕도 나라도 가능하다는 이순신. 위대한 무인이자 동시에 <논어>의 불멸하는 구절 "民無信不立 민무신불립"을 말하는 인문학적 인간 이순신.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이런 장면으로 인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설득력을 가진다. 허다한 주검을 동반한 해전이 끝나고 격군들과 병사들이 승리의 웃음꽃을 함빡 피운다.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개 고생한 걸 알까, 몰르겄네!!"
"모르면 호로 새끼지~!"

글을 마치면서

<명량>의 상영시간은 두 시간을 넘는데 객석은 지루하지 않다는 표정이다. 관객의 몰입을 유지하는 영화의 힘이 도저한 것이다. 명량해전의 박진감 나는 해상전투는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특히 '충파(衝破)'는 압도적이다.

정면으로 부딪쳐 깨트린다는 의미를 가지는 충파.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주력은 소나무로 만든 판옥선이었다. 반면 왜군의 전투선은 삼나무와 전나무로 만들어진 세키부네였고, 그것을 지휘한 배는 안택선이었다. 거북선 없이 싸워야 했던 이순신은 '충파'전술로 물살 드센 울돌목(명량)에서 적선 31척을 수장시킨다.

이순신의 신묘한 전술과 전략도 그렇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간직했던 그의 풍모 또한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하되, 우리는 이순신의 고독과 두려움과 종당에 찾아온 영웅적인 죽음의 의미를 오늘날 되살리고 있는가. 그가 보여준 지도자 정신과 불굴의 투혼, 성실성과 인내 그리고 진실성은 우리의 자양분으로 승화되고 있는가.

안팎곱사등이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돌아보면서 숨이 막히는 것은 나만의 일인가. 구루지마 미치후사, 와키자카 야스하루, 도도 다카토라 같은 왜장들은 흘러간 과거인가? 그렇다면 집단적 자위권의 아베 신조는 또 누구란 말인가?!

이순신 명량대첩 정유재란 민무신불립 김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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