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갈로그어 연극, 무대에 올린 이 남자

[인터뷰] 신승일 극단 ‘자투리’ 예술감독... "연극도 공부해야"

등록 2014.08.11 10:03수정 2014.08.1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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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팔거나 쓰다가 남은 천의 조각'이라고 나온다. 자기를 치장하거나 포장하기 바쁜 요즘 시대에 얼핏 초라해 보이는 이 단어를 극단의 이름으로 쓰고 있는 예술감독 신승일(47, 사진)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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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일 극단 ‘자투리’ 예술감독 ⓒ 김영숙


직장인 등 시민 참여하는 연극 만들고 싶어

신 감독은 1987년 대학에 입학해 풍물패 활동을 했다. 1991년 '강경대 폭행치사사건'이 있던 해, 이 사건과 간접적으로 연루돼 수원구치소에서 3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그때 함께 복역했던 비전향 장기수 선생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단식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장기수 선생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소 후 작품을 준비하다가 군대에 갔고, 제대할 즈음 장기수 선생들은 북으로 송환됐다.

그가 중학생일 때, 그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갔다. 그 후 가족들이 한 사람씩 이민을 가기 시작했다. 신 감독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1995년에 미국으로 갔다. 그 이후 3년간 미국과 한국을 오갔다. 그러다 집안에 문제가 생겨 1998년부터 7년가량 미국에 거주해야 했고, 그때부터 연극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저주라면 저주지요. '좋아하는 일은 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연극에 모든 감각을 집중해 살았지만, 직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는 미국을 오가며 '시민연극'에 비전을 뒀다. '시민연극'은 1990년대 후반, 생활연극과 직장인연극이라는 표현으로 회자됐다.

"자기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연극을 해야 한다고 봐요.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갖고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 연극을 하자는 거죠. 그래서 직장인연극단체협의회를 조직했습니다."

단순히 직장을 다니고 있느냐 만이 조건이 아니다. 일상 생활을 하며 생활에 뿌리를 내린 예술을 하자는 의미다. 풍부한 아이디어로, 아마추어지만 삶의 얘기를 반듯한 연극으로 풀어내자는 취지였다.

"2007년 남구 학산소극장의 감독을 제안받고 인천으로 왔어요. 학산소극장은 연극인들 입장에서 아주 잘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좋은 극장이 방치돼 있어 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활동했습니다. 마침 공연도 해야겠기에, 2009년에 공연을 준비하면서 배우들을 모았어요. 그게 '자투리'지요"

신 감독은 중세 유럽의 동업조합인 '길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연극인 길드'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서울을 벗어난 인천 지역에서 연극을 하면서 부딪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길드의 형태보다 협동조합 형식의 배우공동체를 만들게 된 까닭이다.

"처음에는 배우들이 '자투리'라는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온전한 것이 되지 못한 것들이 하나를 이루기 위해 모인다는 의미가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불완전한 것들이 온전한 하나를 만드는 과정이 소중하다고 생각한 거죠.

협동조합 '자투리'는 올해 6월에 정식 사회적 기업으로 승인받았다.

"실패도 많이 했어요. 예비 사회적 기업을 하면서 동지적 관점이 퇴색하기도 했지만 다시 개척하는 자세로 하고 있습니다. 지역 연극을 활성화하기 위해 함께 공부하고, 교육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보고 싶습니다."

그는 연극이 급박한 삶에 잠시 쉼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연극을 보기 위한 교육과 훈련도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살아요.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아야 해서 사는 것 같아요. 느리게 사는 슬로우(slow) 정신이 필요합니다. 자기를 돌이켜보는 시간이 중요하지요. 여가생활을 한다고 해도 급하게 시간 내서 영화를 보는 일이 많잖아요. 이런 삶이 건전한 삶은 아니라고 봐요."

그는 그 대안으로 교육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연극작품 몇 개를 봐야 한다는 규정을 두는 것이다. 이것을 이루려면 전문화된 아카데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기존 학점은행제를 통해 예술가들에게 학사 또는 석사학위를 줄 수 있는 공연아카데미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저도 연극인이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냥 보기가 어렵습니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머리 아프다고 생각해요. 연극을 보게 하는 힘은 따로 있지요. 어떤 궁금한 것들에 대한 정보를 알면 관심이 생기는 것처럼 뭔가를 알아야 연극도 재밌습니다."

그는 그 예시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을 들어 설명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씬(scean)은 대사가 주옥같은데 번역을 제대로 안 하면 아름다움이 사라져요. 영어 원본의 아름다움을 알고 가면 그 장면이 기다려지죠. 이처럼 연극을 보게 만들려면 교육을 해야해요. 돈만 많이 벌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어떻게 살면 삶이 아름다워질까?'를 고민하게 하는 겁니다." 

당신과 나의 언어...'이중언어연극제'연다

극단 '자투리'는 작년부터 '이중언어연극제'를 열고 있다. 말 그대로 하나의 작품을 이중의 언어로 공연하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필리핀 작품인 <귀국상자>를 우리나라 팀은 우리말로, 초청된 필리핀 팀은 필리핀어(따갈로그어)로 공연했다.

"우리나라 이민정책이 약간 왜곡된 부분이 있어요. 이민자에 대한 제대로된 인식과 정책적 실현도 부족하지요.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존재로 보지 않고, 시혜를 베풀 복지 대상자로만 바라보는 겁니다. 이중언어연극제는 언어권이 곧 기본권이라는 걸 내세웁니다."

언어권이란, 이민자가 자신을 변론해야하거나 문화생활을 즐길 때 자신이 태어나서 배운 말로 소통할 수 있는 기본 권리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 기본권이 유보되고 있을 뿐 아니라 결혼이민자들을 다문화라는 개념으로 또다른 차별을 하고, 그들에게 시혜적 차원에서 한국어 학습만 강조하고 있다. 신 감독이 이민자 문제에 이토록 관심이 많은 이유는 뭘까?

"제가 바로 이민자의 자식이기 때문이죠. 이민자 공동체는 어느 나라든 존재하지만 본국의 인식 부족과 차별로 힘든 삶을 이어가죠. 이민자 출신 연극인으로 살다보니 아이디어가 생겨 이중언어연극제를 만들었습니다."

신 감독은 인천이 이중언어연극제 개최에 가장 적합한 도시라고 강조했다.

"인천은 근대 연극이 시작된 도시이자, 근대 이민이 시작된 도시잖아요. 제 상황과 도시의 조건이 딱 맞아떨어진 거죠."

극단 '자투리'의 이중언어연극제는 오는 9월 22일부터 9월 28일까지 열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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