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광화문까지, 4시간 16분간의 도보전시회

[현장] 사진작가·시민 70여 명, 세월호 참사 관련 사진 들고 행진

등록 2014.08.11 21:20수정 2014.08.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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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에 나선 사진가 및 예술가들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출발해 세월호 단식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까지 세월호 사건 작품을 들고 도보행진을 하며 '4시간16분 동안의 도보전시'를 하고 있다. ⓒ 이희훈


"'박근혜 퇴진', 이게 핵심이잖아요."

가로 1m, 세로1.5m 남짓한 현수막을 내보이며 채원희(45·여)씨가 말했다. 직사각형 현수막 안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사진이 새겨져 있다. 그 속에서 백 소장은 '박근혜 퇴진'이라고 쓴 노란색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세월호 관련 사진을 직접 들고 걸으며 전시하는 행사인 '4시간 16분 동안의 도보전시'에 참가한 그는, 참사 120일이 넘도록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나타내며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뱉었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마치 국민이 지치길 기다리는 거 같아요."

원희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부지런히 진도 팽목항과 서울 광화문광장, 시청 앞 광장을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 스스로를 "아직 조리개도 잘 모르는 아마추어"라고 표현한 그는 보급형 DSLR 카메라인 '캐논550d' 하나로 사진기자들 틈에서 부지런히 기록을 남겼다. 그는 "눈앞에서 아이들이 죽어 간 모습을 보고 3일 동안 밥도 못 먹었다"며 "오래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로 다짐했다"고 전했다.

그가 들고 있는 사진도 그런 기록 가운데 하나다. 지난 4월부터 찍은 사진은 이미 수백 장이 넘었지만, 흔한 SNS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훗날 세월호가 완전히 잊힐 때쯤 공개하리라 생각했지만 그 계획을 앞당겼다.

도보전시 참가를 앞두고 원희씨는 수백 장 중에 '박근혜 사퇴'가 쓰인 사진을 골랐다. 여야 원내대표의 특별법 합의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이번 참사의 가장 큰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어서다.


사진작가, 시민 등 70여명, 4시간 16분 동안 도보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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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16분 동안의 도보전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사진가들이 11일 정오 국회를 출발해서 유가족이 단식농성중인 광화문광장까지 4시간 16분동안 세월호 참사 관련 사진을 들고 걸어가는 '4시간16분 동안의 도보전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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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16분 동안의 도보전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사진가들이 11일 정오 국회를 출발해서 유가족이 단식농성중인 광화문광장까지 4시간 16분동안 세월호 참사 관련 사진을 들고 걸어가는 '4시간16분 동안의 도보전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원희씨를 포함한 시민과 사진작가, 대학생 등 70여  명이 '4시간 16분 동안의 도보전시회'를 위해 모였다. 정오에 국회 앞을 출발한 이들은 서울역과 시청 앞 합동분향소, 명동을 거쳐 광화문 농성촌까지 4시간 16분을 걸었다. 4시간 16분은 세월호 참사일인 4월 16일을 의미했다.

행사를 처음 제안한 다큐멘터리 사진가 홍진훤 작가(35)도 직접 찍은 사진 가운데 하나를 골라왔다. 지난 5월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유가족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도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인 날에 찍은 사진이다.

이날 시민들은 유족의 앞길을 막은 경찰버스에 노란색 종이배를 접어서 붙였다. 경찰마크가 노란색 종이배로 뒤덮인 사진을 든 홍 작가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니 사진으로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고립된 광화문 광장에 전시하는 것보다 시민에게 직접 찾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명 다큐멘터리 사진가들도 함께했다. <최후의 언어>(북멘토,2014), <파미르에서 윈난까지>(현암사,2011) 등을 펴낸 이상엽 작가(48·남)는 지난 5월 안산촛불문화제 때 찍은 사진을 선택했다. 흑백사진 속에는 여고생 3명이 '끝까지 밝혀줄게'라고 쓴 손팻말을 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노순택 작가(44·남)는 무표정한 얼굴의 한 남성이 '구조 0명, 이게 나라인가요'라고 쓰인 펼침막을 든 사진을 골랐다. 노 작가는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정부가) 답하는 게 중요한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라며 사진을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쉬는 동안 길바닥에 사진 전시... 발걸음 늦추고 감상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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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16분 동안의 도보전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사진가들이 11일 정오 국회를 출발해서 유가족이 단식농성중인 광화문광장까지 4시간 16분동안 세월호 참사 관련 사진을 들고 걸어가는 '4시간16분 동안의 도보전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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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기록 사진가들 '아프지만 기록합니다'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에 나선 사진가 및 예술가들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출발해 세월호 단식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까지 세월호 사건 작품을 들고 도보행진을 하며 '4시간16분 동안의 도보전시'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참가자들은 시민이 많은 곳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오후 3시께 서울 중구 명동 번화가에 도착한 이들은 들고 있던 사진을 바닥에 펼쳐두었다. 사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아들(11)과 함께 감상하던 조주연(41·여)씨는 가장 인상 깊은 사진을 꼽아달라는 말에 "하나를 꼽기 어려울 만큼 모두 마음 아픈 사진"이라고 답했다.

10m 넘게 이어진 사진 길 옆에서 시민들은 바쁜 걸음걸이를 늦췄다. 일일이 시선을 주며 천천히 감상했다. "아, 세월호..."라는 탄성이 군중 사이에서 들리기도 했다. 누군가의 발길에 채여 구겨진 현수막을 다시 팽팽하게 펼쳐놓고 가는 젊은 여성도 있었다.

30도 가까운 더위에도 참가자들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앞에는 카메라를 멘 홍윤하 작가(45·남)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세월호 유가족의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진을 전공하는 대학생 김민호(21·남)씨는 현수막 끝에 달린 각목에 스쳐 발목이 발갛게 부어올랐지만 "괜찮다"며 묵묵히 걸었다. 민호씨는 유가족의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인화해주는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오후 4시 16분. 참가자들이 국회-여의도공원-마포대교-공덕역-충정로-서울역-시청-명동을 거쳐 광화문 농성장에 들어서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시민들은 "멋지다", "장하다"라고 환호했다.

유가족농성장에서 29일째 단식 중인 '유민이 아빠' 김영오(47)씨도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종착지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농성장에 사진을 걸어두며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사진은 금요일에 진도 팽목항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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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16분 동안의 도보전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사진가들이 11일 정오 국회를 출발해서 유가족이 단식농성중인 광화문광장까지 4시간 16분동안 세월호 참사 관련 사진을 들고 걸어가는 '4시간16분 동안의 도보전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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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들에게 박수 보내는 김영오씨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사진가들이 11일 정오 국회를 출발해서 유가족이 단식농성중인 광화문광장까지 4시간 16분동안 세월호 참사 관련 사진을 들고 걸어가는 '4시간16분 동안의 도보전시'를 하고 있다. 단식 29일째인 단원고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광화문광장에 도착한 사진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 권우성


#세월호 #이상엽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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