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10년, 나아진 게 없다

제도 개선 위해 다양한 의견 청취해야

등록 2014.08.17 16:03수정 2014.08.1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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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자로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만 10년이 되었다. 고용허가제 도입 초기 이주노동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 제도가 이주노동자 권익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 기대에 못 미칠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이주 인권 현실의 퇴보만 가져왔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형편이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기 전에 국내 취업 경험이 있던 이주노동자들은 과거 산업연수생 제도와 비교해서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퇴보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반면 정부에서는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이 분명히 이뤄졌고, 무엇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감소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말한다. 고용주들은 긍정적인 면으로는 인력수급 안정화에 도움이 되는 반면, 3년 혹은 4년 10개월이라는 고용 기한으로 숙련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정부와 시민단체, 이주노동자와 고용주의 입장에 따라 고용허가제 10년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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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고용허가제’는 반드시 폐지 되어야한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고용허가제 어떻게 도입됐나?

고용허가제 도입은 시대적 요구였다. 산업기술연수생이 도입된 이후 불거진 잦은 인권침해는 국내외적으로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가져왔고, 시민단체들은 10년 넘게 폐지 운동을 벌였다. 결국 2003년 8월 17일,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1년 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당시 정부는 법률 제정 목적으로 법 제1조에 "이 법은 외국인 근로자를 체계적으로 도입, 관리함으로써 원활한 인력수급 및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당시 정부는 그동안 이익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가 운영해 오던 외국인력 도입을 정부 주관으로 바꾸어 내국인 고용시장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노동력 확보를 꾀하고, 이주노동자 인권보호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감소를 꾀하여 외국인력 제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당시 산업연수제 폐지를 강력하제 주장하며 석 달 이상 농성을 이어갔던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와 같은 시민단체들은 고용허가제가 선별적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산업연수제 전면 폐지가 아닌 점진적 폐지 조항 외에도 사업장 이동 제한과 같은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하면서도 산업연수제가 워낙 악한 제도였기 때문에, 비판적 지지 입장을 취했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고용허가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체류 기한에 따른 미등록 이주노동자 선별적 사면합법화 조치를 시행한다. 이 조치와 함께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과 강제추방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문제는 정부의 단속과 강제추방이 거셌던 2003년 11월에 성남에서 스리랑카인 다라카를 시작으로 방글라데시인 비꾸, 러시아인 안드레이아, 우즈베키스탄인 브르혼, 카미, 김포에서 방글라데시인 자카리아, 중국동포 강태걸, 나이지리아인 메케까지 8명의 자살 도미노, 길거리에서 동사한 중국동포 김원섭 등 자살과 죽음이 수도권에서 두 달 동안 이어졌고, 그 후 2004년에는 중국동포 정유홍에 이어 코스쿤 살렘 등등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자살이 전국에서 이어졌다는 것이다. 언급한 자살 사건들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소속 단체들이 치른 장례에 한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살이라고 하지만, 당시 이주노동자 연쇄 자살은 제도적 살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업연수제는 고용허가제 시행 2년 뒤인 2006년도에 완전 폐지된 것이다. 이어 2007년 8월에는 뒤늦긴 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산업연수생 관리지침이 외국인근로자의 권리에 대하여 내국인 근로자와 차별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였다"는 판결로 '산업기술연수생 제도'에 대해 역사적 단죄를 내렸다. 당시 산업연수제가 이미 폐지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해당 판결은 노동의 권리에 관한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명확히 한 판결이었고, 산업연수제가 위헌적 토대 위에서 이익 집단의 배를 불려 왔었던 악한 제도였음을 확인해 준 판결이었다.

그러나 제도 시행 전부터 독소 조항이라는 논란이 있던 사업장 이동 제한 부분은 최근 과거 산업연수생 제도로 회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출국 후에야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변경하는 등 사실상 고용허가제는 도입 이후 줄곧 퇴행만 거듭하면서, 점진적으로 독소 조항 철폐와 제도 개선을 희망해 왔던 이주노동자들의 희망을 져 버렸다.

고용허가제는 왜 퇴행을 거듭했을까?

고용허가제의 퇴행은 이주인권을 개선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며 등장한 이명박 정부 이후 철저하게 고용주 편의 위주로 제도가 바뀌면서 그 도입 취지가 퇴색하면서 노골화되었다. 그와 더불어 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중소기업중앙회 등 고용허가제 대행기관들의 끊임없는 로비는 고용허가제가 퇴행을 부추겼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쉽게 주목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사적 단죄 혹은 청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2007년 8월에 산업연수제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을 당시, 헌재 판결 후속 작업으로 산업연수생에 대한 기본권적 노동권을 억압했던 주체들에 대한 단죄나 책임자 문책 등이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이 유야무야되고, 위헌 판결 후에도 단죄를 받아야 했던 이들에 의해 외국인력 정책이 좌지우지되었다는 점은 지금처럼 고용허가제가 퇴행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압류, 급여 강제적립과 통장 압류 등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탈을 막으려 했던 산업연수제는 그 과정에서 숱한 인권침해를 일으키며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정부는 고용허가제에 위헌 판결을 받은 산업연수제의 형식과 내용을 담아내려고 끊임없이 제도를 변경해 왔다. 결과적으로 산업연수생 제도보다 못한 제도가 되어 버렸고, 고용허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가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역사 바로 세우기에 실패한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연수생 제도보다 못한 제도가 돼버린 고용허가제

아이러니하게도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하여 내국인 노동자와 차별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위헌 판결을 받았던 중소기업청 '외국인 산업연수제도 운영에 관한 지침'을 보면 지금 고용허가제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우선 연수업체 자격요건을 보면, 5인 이상 300인 이하 중소기업에 한하고 있어서, 지금처럼 내국인을 한 명도 구하지 못해 이주노동자만 있는 업체는 이주노동자를 쓸 수 없었다. 그리고 연수업체는 기숙사 및 3식 무료 제공을 의무적으로 요구받았고, 유망 중소기업이나 매출액중 수출비중이 20% 또는 연간수출실적이 50만 달러 이상인 업체, 중소기업 우수제품마크 인증업체, ISO9000 인증획득업체, 품질경영 우수업체, KS표시 허가업체 등의 기준에 부합할 경우 누계 점수에 따라 연수생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현재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업체들은 산업연수생을 고용하던 업체들에 비해 더 영세하고, 숙식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등 노동조건이나 생활여건이 나쁘다. 더 열악해진 환경에 이주노동자들을 몰아넣고, 최소한의 권리마저 빼앗겠다는 것이 지금의 고용허가제다.

현실적으로 훨씬 열악해진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가능하면 노동조건이 좋은 곳으로 근무처를 이동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업장 변경은 산업연수제 때보다 더 어렵다. 위헌 판결 받은 제도도 이렇게 악하진 않았다. 단지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어진다.

고용허가제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한 정부

정부는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이주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었다고 늘 자화자찬해 왔다. 과거와 달리 제도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여 송출비리와 과도한 송출비용 문제도 사라지고, 최저임금도 준수되고 있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줄었고, 3D업체 인력난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정부가 자랑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송출비용은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과도하게 요구되고 있다. 심지어 귀국 보증금이란 명목으로 송출 비용을 과거보다 더 많이 요구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는 우리 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근절 요구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농어업 분야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최저임금이 준수되고 있다는 주장은 억지다.

다만 2003년과 2004년도에 각각 15만 4342명, 20만 9천841명이던 미등록체류외국인이 2014년 6월말 기준으로 18만 7340명으로 체류 외국인이 2003년(67만8687명) 대비 100만 명 이상 증가(169만8983명, 2014년 6월말 기준)한 것을 감안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감소했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즉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인 단순기능인력만 놓고 보면, 6월말 기준으로 총 54만 4936명 중,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6만 4657명으로 전체의 11.9%로 산업연수생 제도 시행 당시와 비교해서 절대적인 수에서나 비율에서 상당히 감소했다는 점은 일면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숱한 자살과 사망 사건,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제도 개선 위해 다양한 의견 청취해야

정부와 기업, 이주노동자와 시민단체의 평가가 상이한 고용허가제는 시행 10년을 맞아 객관적인 평가와 함께 제도 개선과 발전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부터 기획조정실장을 팀장으로 전문가들과 외국인력발전방안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고용허가제 관련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10월말까지 중장기 발전방안을 마련해 연내 개선이 가능한 부분은 바로잡고, 중장기적인 부분은 별도로 진행한다고 한다.

고용부 발표에 따르면 중점을 두는 단기 대책으로는 이주노동자 선발 방식에 있어 사업주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도 사업장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직종별 필요 숙련도에 따른 보완책을 찾고, 농어촌 이주노동자 등의 최저임금 적용 및 인권문제 등을 점검해 개선할 방침이라고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외국인 전문인력에 대한 발전방안을 마련하고 정주화 및 이민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고 한다.

현재까지 나온 정부가 내놓은 발전방안들은 농어촌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외에는 여전히 기업 이익만을 대변하기 위해 제도 변경을 시도하지 않나 하는 우려가 나온다. 해당 논의에서 입국할 때부터 3년 장기계약으로 사업장 이동을 철저하게 제한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 고용주가 이주노동자 체류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도록 하는 사업장 이탈 신고로 인한 인권침해, 출국 후 퇴직금 지급 문제, 6년째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주노조 설립 반려 건 등 고용허가제 시행 초기부터 논란이 돼 왔던 문제들은 도외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부가 제도 개선과 발전 방안을 제대로 하려면 지금처럼 정부 입맛에 맞는 단체들과 일부 학자들의 의견만 갖고 공청회 모양새만 갖춰서는 곤란하다. 관련단체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이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산업연수제 #외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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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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