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들게 하는 네온사인, 광고물이 아니라니

빛공해 광고물에 대한 애매한 법 해석, 민원인만 피해

등록 2014.08.18 12:08수정 2014.08.1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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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강동구 한 업체가 내걸은 번쩍이는 네온 사인, 덕분에 내 집 안까지 환하게 빛난다. ⓒ 성태경


집안이 갑자기 번쩍인다. 부엌 쪽에 뭐가 잘못됐나 살펴봤다. 라미네이트 벽에 빛이 반사되어 퍼렇게 번쩍이고 있었다. 창밖을 보았다. 건너편 건물 벽에 하얀 별 네 개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 밝기는 '반짝'이 아니라 '번쩍'이었다.

지난 7월 17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자기네 담당 업무가 아니라고 120 다산콜센터에 신고하란다. 다산콜센터에 신고하니 다음날 18일, 강동구청 도시디자인과로 접수 됐다고 문자가 왔다. 강동구청에 전화해서 알아보니, 간판 허가를 내 줬는데 업체사장이 간판 옆에 임의적으로 번쩍이는 별들을 달았다는 것이다. 저녁에 해당 업체에 조치를 당부했다고 문자가 왔다.

하지만 별들은 여전히 번쩍였다.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친 채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 아침 구청에 다시 전화했다. 구청에서 업체 측에 면박을 주자 업주가 화를 내면서 자기가 알아서 조치를 할 테니 열흘을 달라고 했단다. 꼬박 열흘을 창문 닫고 블라인드 치고 지냈다.

광고물인지 조형물인지 판단하는 데만 한 달...

열흘이 되던 날 번쩍이던 별들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했다. 업주가 드디어 '조치'를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쳐야할 정도로 밝았다. 구청에 다시 전화해서 항의했다. 담당 공무원은 공문을 보내고 법대로 강력하게 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틀 후에도 여전히 변화가 없어서 구청에 다시 전화했다. 바빠서 아무 조치 못했다는 식의 변명이 돌아왔다. 내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해결되겠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적당히 해결하려는 것 같았다.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을까? 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공문을 보내고 그래도 시정이 안 되면 벌금을 먹이는 것뿐이란다. 그래도 시정이 안 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법 집행은 하지도 않은 채 해봤자 소용없다는 식이었다. 나는 우선 법대로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30분 후 조명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광고물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빛나는 별들'을 광고물로 볼 수 없어서 조형물로 처리해 달라고 넘어왔다는 설명이었다. 간판과 함께 설치된 저 별들이 광고물이 아니라 조형물이라니 참 창의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 부서 저 부서로 넘겨지다 보면 문제는 해결 안 되기 십상이다. 조명 담당자에 의하면 "빛공해법이 지난 2013년에 제정되기는 했지만 빛공해 관리구역이 아직 설정되지 않아서 실효성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광고물 관리법으로 규제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조명 담당자는 다시 회의하고 전화해 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전화가 왔다. "광고물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어서 서울시 공공디자인과에 문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전화해 보니 "서울시 관할이 아니라 안전행정부에 문의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사이 2주일이 지났고 또 안전행정부 답변을 2주일 더 기다려야하는 상황이 됐다. 나는 꼬박 한 달을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치고 살아야 하는 신세였다.

미국에서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런 경우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할까? 내가 미국 고층 아파트에 살 때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집 안이 너무 환해서 살펴봤더니 건너편 클럽에서 광고용 조명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경찰에 신고했더니 그 조명은 반대편 방향으로 고정되어 더 이상 집 안을 비추지 않게 됐다. 허가를 받고 설치한 임시 조명이었지만 피해자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이 바로 조치한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경우 피해자 구제가 우선이다.

미국에서 이런 상황은 공해방지법에 해당된다. 일상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외의 빛이나 소음 등을 규제할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경찰이 개입할 수 있다. 허가 여부에 따라 시 규제 부서에서 경고장과 함께 시정명령이나 벌금형이 집행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광고물을 분류하는 '옥외 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2조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세로형 간판 : 문자·도형 등을 목재·아크릴·금속재 등의 판에 표시하거나 입체형으로 제작하여 건물의 벽면 또는 기둥에 세로로 길게 붙이거나 벽면 등에 직접 도료로 표시하는 광고물

그리고 또 허가를 받아야하는 광고물을 규정하는 4조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12. 전기를 이용하는 광고물(제1호부터 제11호까지의 광고물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한정한다)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광고물

가. 광원(光源)이 직접 노출되어 표시되는 네온류(유리관 내부에 수은·네온·아르곤 등의 기체를 집어넣어 문자 또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이하 같다) 광고물 또는 전광류[발광다이오드, 액정표시장치 등 전자식 발광(發光) 또는 화면변환의 특성을 이용하여 표시내용이 수시로 변화하는 문자 또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이하 같다] 광고물

나. 빛이 점멸하거나 동영상 변화가 있는 네온류 및 전광류 광고물

법 조항으로 보나 제정 의도로 보나, 아니면 상식으로 보나 저것은 광고물로 봐야하지 않을까? 입체형으로 제작되어서 벽에 세로로 길게 나붙은 저 번쩍이는 별 모양의 도형 네 개는 허가를 받아야하는 광고물이 맞지 않나?

민원 사항 발생시 효과적인 대처법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첫 번째 대처방법은 행정절차다. 행정기관의 부당한 처분이나 부작위로 피해를 본 경우 상급기관에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빠르고 비용이 안 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행정심판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두 번째로 행정심판의 결과가 석연치 않으면 행정소송으로 갈 수 있다. 즉, 행정기관의 조치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받는 것이다. 행정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행정기관의 '실수'를 제대로 잡는다는 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한 번 바로 잡아놓으면 행정기관은 그 판례에 따라 법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대처방법은 지역구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지역 의원은 주민의 대표다. 의원들은 표를 위해서라도 주민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서서 발 벗고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구 의원의 도움을 요청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법·행정 절차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지역구 의원이 법을 고치거나 만드는 데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행정부에 사법부와 입법부까지 총동원하는 셈이 된다.

마지막 대처는 정치적 행동이다. 공무원의 윗사람은 정치인, 즉 시민이 뽑은 단체장과 의원이다. 그런 정치인들의 윗사람은 시민이다. 공무원의 행정이 부실하거나 무능하다면 단체장이 책임져야 하고 시민은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물을 권리와 투표권이라는 권한이 있다. 공무원들이 윗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한다면 그 윗사람들은 시민의 눈치를 봐야하는 것이다.

강동구청과의 대화만으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송명화 강동구의원에게도 전화를 했다. 강동구청 백모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송 의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단다. 백 팀장은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문제는 번쩍이는 별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별들을 광고물이 아닌 조형물로 보는 구청도 문제였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백 팀장은 별들을 광고물로 볼 수 없어서 공식적으로 조치할 수는 없고 업체와 조율하는 수밖에 없다고 확고하게 대답했다.

그 날 오후 송 의원으로부터도 전화가 왔다. 업체에서 별들을 이번 달(8월) 중순부터 자정 이후에는 끄겠다고 했다 한다.

적당한 선에서 해결? 나같은 피해자 또 없어야

이 정도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느냐 할 수도 있다. 물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융통성 있게 사는 게 덜 피곤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번쩍이는 네온 조명이 광고물이 아니라고 인정하게 되면, 이 업체나 아니면 다른 업체가 또 그런 조명을 허가 없이 달 수 있다. 그러면 또 누군가가 피해를 입게 된다. 광고물이라고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다음에는 구청이 바로 철거명령을 내릴 것이다. 시정되지 않을 때, 시민이 강제로 집행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런 행동에는 정의나 양심 등의 거창한 단어가 필요 없다. 단지 실용적이기 때문에 행동한다. 조금 피곤하더라도 문제 하나를 제대로 풀어서 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나 하나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는 그런 면에서 실용적이지 않다.

한국 사회에는 무능과 비리가 만연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러 불신은 더 보편화됐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된다"고 말한다. 시민이 행동할 때 '그래도 되는 것'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된다. 그렇게 사회는 개선된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고 체념하면 그 사회는 무능과 비리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내 일이 아니라고 행동하지 않으면, 세월호 같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탄 배, 또는 내 아이가 탄 배가 세월호가 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작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끝까지 추적해서 결말을 보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제 곧 출국해서 미국으로 돌아간다. 나를 대신해 송 의원이 주민들을 위해 확실하게 마무리 지을 것이라 믿고 떠나겠다.

18일 강동구청에 다시 문의한 결과, 안전행정부로부터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답변 내용은 "광고물로 볼 수 없다"였다. 강동구청의 설명에 따르면 "별 모양만 봐서는 어떤 기업이나 업체의 광고인지 특정할 수 없다"며 "홍보 내용이 없는 단순한 별 모양의 조명이기 때문에 옥외 광고물로 볼 수 없다"고 한단다. "빛공해 방지법으로 관리해야할 조형물"이라는 얘기였다.

빛공해 담당 부서에서는 "빛공해 관리구역 지정 권한은 서울시에 있으며, 2014년 말까지 지정될 계획"이라며 "관리구역이 지정될 때까지는 구에서 강제로 제제를 가할 권한이 없어서 민원인의 민원을 충분히 해결해드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빛공해 관리구역이 지정된 후에는 적극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고물 #빛공해 #강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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