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6개월 만에 받은 슬픈 연하장

고 김문식 선생을 기억하며... "나를 잊지 마세요"

등록 2014.08.21 11:58수정 2014.08.2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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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카오톡 메뉴를 잘못 눌러 카카오스토리로 들어갔습니다. 늘어나는 소셜네트워크(SNS)의 도구들을 다 따라잡을 수 없는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저의 글쓰기 공간인 기존의 블로그와 외국 친구들과의 소통을 위한 페이스북, 최근 소그룹의 업무공유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톡 외에는 더 이상의 툴을 늘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카카오스토리는 이런 이유로 사용을 하지 않고 있었지요.

카톡의 길을 잘못 들어간 카카오스토리에서 놀라운 조우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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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김문식선생의 카카오스토리 ⓒ 이안수


지난해 돌아가신 분이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올린 내용이었습니다. 

고 김문식 선생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특히 나무로 하는 소목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놀이에 관심을 두고 그 도구를 직접 제작하고 놀이법을 되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고인은 문화예술분야의 사람들과 즐겁게 교우했으며 탁아문제에서 통일문제까지 광범위하게 관심을 갖고 공적이거나 정의로운 일이라면 자신의 재능을 희사하는 데 주저하지 않은 분입니다.


잠자는 시간까지 아까워할 만큼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던 고인은 결혼도 하지않은 채 오직 자신의 일에만 매달렸지요.

연장을 사용하는 일이 잦아 간혹 몸을 다치곤 했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는 데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춘천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시던 고인은 서울에 오시면 꼭 제게 연락을 하고, 간혹은 헤이리까지 오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심분야인 전통놀이의 복원과 보급에 대해 구상을 털어놓곤 했지요.

#2

전화 통화를 한 지 한 달, 이번에는 전화나 방문이 아니라 메시지였습니다.

<부고>
김문식님께서 금일 오전 10시 별세하셨습니다.
빈소 : 강원대학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 : 9월 11일 오전 6시
09/09 오후 6:43

느닷없는 부고였습니다.

김 선생님의 부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며 그럴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게 황망하게 고인을 보낸 지 1년, 21일 뜻밖의 방식으로 그분과 조우한 것입니다.

카카오스토리속 첫 장, 즉 그 분의 마지막 포스팅은 '2013년 8월 18일 오후 7시 19분으로 돼 있었습니다.

"ㅋㅋ 이제 산소 호흡기까지 달았음."

스스로도 그 상황을 인정할 수 없음인지 헛웃음을 문두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아래에 올린 사진은 검게 변한 초췌한 얼굴에 산소 노즐을 코에 꽂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사실이어서는 안 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날린 그 허탈한 웃음이 세상에 남겨진 마지막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스무 이틀만에 부고를 받은 것입니다.

김 선생님의 마지막 포스팅 사진 아래의 마지막 댓글은 산 사람의 회한이었습니다.

김OO 2013년 9월 9일 오후 07:10
날마다 가보고 싶고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참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ㅠㅠ
유OO - 낭만가객 2013년 9월 10일 오전 11:38
이 모습이 마지막이네요. 어쩌죠? 난 아직 선생님께 배울게 많고 홀로 설 준비가 안됐는데요. 어쩌죠?

오른쪽의 스크롤을 천천히 내렸습니다. 병원을 찾은 모습, 그 아래에는 작업을 하던 무대의 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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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육림공원의 마술공연장의 입구를 성처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김문식 선생이 혼자 감당하던 작업. ⓒ 이안수


"2013년 8월 8일 오후 08:03
이제 스톤으로 도색만 하면된당. ㅋㅋㅋ"

더 아래에는 그 마술공연장의 입구 무대 작업을 시작하는 모습이...

그리고 더 아래에는...

제가 본적이 없는 연하장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모티프원의 서재에 저와 나란히 앉은 모습의 사진에 인사말을 넣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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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6개월전에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발신한 연하장을 발신인이 고인이 된 11개월 만에 받았습니다. ⓒ 이안수


"Don't forget me
이안수 선생님 건강하시죠. 올해에 원하시는 일 모두 소원 성취하세요."

2013년 2월 11일에 포스팅된 것이었습니다. 이 날은 음력으로 정월 초이틀, 즉 신년 벽두였습니다.

그 사진의 책상위에는 김선생님께서 실험적으로 만들어 보셨다면서 놓고 가신 작은 뗏목배가 놓여있습니다.

"Don't forget me"(나를 잊지 마세요)

김 선생님이 돌아가시고서야 발견한 연하장. 그 연하장속의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다시 가슴을 저밉니다. 고인은 7개월 뒤,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알고 이 말을 쓴 것일까요?

1년 6개월 만에 받은, 가장 슬픈 연하장입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거듭 소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motif.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김문식 #연하장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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