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뽑고 '산부인과' 가면 밝히는 여자?

[밝히지 못하는 여자 - 관리] '브라질리언 왁싱'과 '산부인과 검진'에 대한 편견

등록 2014.08.28 16:58수정 2014.08.2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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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세상 속 사회적인 성(Gender)', 인도의 하이데라바드 시에서 8월 18일부터 5일간 제12회 '세계여성학대회'가 열렸다. '유엔 여성총회'라는 별칭이 붙은 이 행사는 지난 2005년 한국에서 '화통'을 주제로 개최된 바 있다. 주요 의제는 성차별을 비롯해 식민지주의, 구조적 빈곤, 전쟁 문제 등 여러 종류의 억압·불평등 등이다. <오마이뉴스>는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는 한국 여성들의 삶을 '쾌락', '관리', '파괴'라는 주제로 풀어봤다. [편집자말]
# 대학생인 최아무개(27)씨는 3년째 여자 친구와 사귀고 있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당신 여자 친구가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면 어떨 것 같아?"라는 질문을 받았다. 최씨는 "누드비치에 가보니까 외국 여자들은 거기 털 다 밀었더라고, 흐흐"라며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근데 내 여자 친구가 그걸 한다면 대충격"이라며 안색을 바꿨다. 

# 대학생인 김아무개(23)씨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방광염에 쉽게 걸린다. 그때마다 산부인과에서 치료를 받지만, 어머니에게는 비밀이다. 예전에 산부인과에 간 걸 어머니께서 알고는 "솔직히 말하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크게 당황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나 브라질리언 왁싱 하러 간다"라고 말하는 것과 남성이 "나 장어 먹으러 간다"고 말하는 것의 공통점은? 바로, 자기 '관리'다.

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와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관리한다. 하지만 대부분 비밀스럽다. 자기만족이나 위생적인 이유로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는 것도 그렇고, 미혼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는 것도 그렇다.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여성에게 '순결'이라는 일방적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은 스스로 검열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여성이 어떠한 행동을 할 때 인간으로서 높은 수준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선택을 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리① 브라질리언 왁싱] 섹시해 보이려고 '이거'했다, 뭐가 문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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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마녀사냥>에서 브라질리언 왁싱 경험담을 말하는 출연자들. (화면 캡쳐) ⓒ 송지희


"'브라질리언 왁싱'이 유행한다는데, 포르노 영향으로 사람들이 미쳤나 보다."

지난 7월 한 일간지 기자가 브라질리언 왁싱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자 여성 트리터리안들이 강한 불쾌감을 쏟아내며 트위터 상에서 단숨에 화제가 됐다.


"헐, 브라질리언 왁싱에 무슨 포르노 얘기까지 나오냐. 난 브라질리언 왁싱하는 거 찬성. 생리나 평소 위생에 얼마나 좋은지" (@cindi***)
"다짜고짜 포르노 영향 이러니까 요즘 애들이 폭력적이게 되는 것은 다 게임 때문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perfect_s***)
"브라질리언 왁싱 자체가 비키니 등 옷류에 따라 하는 건데. 그럼 겨털제모는? 개인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심이 모두 악인가?" (@YAnPYint***)

비난의 댓글과 맨션이 계속 달리자 그 기자는 "발언이 좀 지나쳤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라는 트윗을 올리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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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 입은 여인 이미지. ⓒ pixabay

브라질리언 왁싱이란 왁스를 이용해 항문과 음부의 잔털을 뽑고 정리하는 것이다. 브라질리언 왁싱의 대중화는 1940년대 미국에서 비키니열풍으로 시작됐다.

비키니를 입었을 때 삐져나오는 털들을 정리하면서 그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왁싱이 등장하게 된다. 사람들이 음부의 털을 정리하는 것을 두고 브라질리언 왁싱이라고 통칭해서 말하지만 사실 브라질리언 왁싱은 비키니 왁싱의 한 종류이다. 비키니 왁싱의 종류는 브라질리언 왁싱, 일부를 남기는 프렌치 왁싱, 비키니 라인만 정리하는 비키니 왁싱 등 다양하다.

브라질리언 왁싱은 미국 TV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다뤄질 만큼 미국 여성들에게는 대중적인 체모 관리법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종편방송의 한 성인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왁싱 경험담을 털어놓으면서 화제가 됐다.

명동이나 이태원, 강남 일대에는 한 건물에 왁싱숍이 3~4개가 있을 만큼 찾는 사람이 많아 예약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천아무개(24·대학원생)씨는 "영국에 놀러 가서 (브라질리언 왁싱을) 처음 접했는데 (생리 때) 신세계가 열렸다"며 "이제는 안 하면 찝찝한 기분마저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브라질리언 왁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다소 외설적이다. 지난 20일 기자가 서울 명동 예술극장 사거리에서 젊은 남성 10명에게 "여자 친구가 브라질리언 왁싱한다면 어떨 것 같느냐"고 질문했다. 이들 중 1명만 "취향이니 상관없다"고 답했고, 나머지 9명은 난색을 표했다.

문아무개(32·자영업)씨는 "대부분 남자가 여자친구가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자들끼리 이야기 할 때, (왁싱을 한 여성에 대해) 좀 밝히거나 싸 보이는 이미지로 묘사가 된다"고 말했다. 오아무개(25·대학생)씨도 "그거(브라질리언 왁싱)하면 좀 까진 여자로 본다"며 "여자 친구가 한 걸 보면 좀 당황스러울 거 같다"고 답했다.

이런 시선을 의식한 여성들은 왁싱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경험을 하고서도 비밀에 부친다. 최아무개(21·대학생)씨는 "인터넷카페에서 브라질리언 왁싱이 위생상 좋고 상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후기 글을 자주 읽었다"며 "수영장을 갈 때도 편하다고 해서 하고 싶지만, 눈치 보여서 못 한다"고 말했다.

천아무개(24·대학원생)씨도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지만 엄마가 알고 '처녀가 뭘 그런 걸 했냐'고 혼냈다"며 "아직도 (엄마) 몰래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고 있어서 목욕탕도 같이 못 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아무개(26·대학생)씨는 "남자들이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먹는 것은 관대하게 보면서 왜 여자들이 성적매력을 높이려고 하는 일에는 안 좋게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는 이유는 성적 매력, 자기만족, 위생 및 청결 등 다양하다. '성인 여성의 미용 왁싱에 대한 인식조사 및 시장성 고찰' 논문(2013. 정현숙.성신여대)에 따르면,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는 이유로 62.4%가 성적매력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15.2%는 자아만족, 19.2%는 여성성, 3.2%는 사회적 트랜드를 이유로 브라질리언 왁싱을 한다고 말했다. (대상 : 17세~60세 미만 성인여성 463명 설문조사, 조사 기간 : 2013년 3월 18일~4월 18일)

강미지 산부인과 전문의는 "외음부 관리나 생리 중 청결 때문에 일시적으로 왁싱을 하는 것이 도움되기도 한다"며 "생리 중 냄새가 심하게 나거나 분비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외음부 관리가 용이해진다"고 설명했다.

[관리② 산부인과 검진] 남자친구는 알아도 엄마는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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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에 가는 이유는? ⓒ 송지희


"(산부인과에) 가라고 해도, 엄마가 '왜 가냐'고 할 것 같아서 못 가겠어."

조아무개(25·대학생)씨는 "22살 때 동네에 있는 산부인과에 갔는데,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며 쑥덕거리는 느낌이 든 적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산부인과를 안 가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실제 20대 딸을 둔 김미연(50·주부)씨는 "딸이 산부인과에 다녀왔다고 말했는데, 남자친구도 없다고 했다"며 "계속 묻고 싶었지만, 딸이 태연하게 '질염 생겨서 다녀왔어'라고 말해 놀랐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것은 임신 문제가 아니어도 생리불순, 질염, 자궁경부암 예방 등 다양한 목적 때문이다. 특히 생리가 시작된 이후에는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2012) 자료집에 따르면,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여성 중 미혼여성은 29%를 차지했다. 이들 중 산부인과 진료에 거부감이 들었던 이유로 '사회적 시선'을 꼽은 사람은 21%로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진료자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여성들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산부인과에 가는 것을 주저한다고 답했지만, 남성들은 여성들이 산부인과에 가는 것에 별다른 편견은 없어 보였다. 지난 20일 서울 명동역 6번 출구에서 만난 젊은 남성 10명에게 "여자친구나 지인이 산부인과에 가거나 간 적이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들 모두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는 것은 당연한데, 왜 눈치를 보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아무개(41·직장인)씨는 "며느리나 여자 조카가 산부인과에 다녀왔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며 "오히려 빨리 병을 낫게 하려고 가는 것 같아 현명해 보인다"고 답했다. 정아무개(22·대학생)씨도 "아파서 당연히 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여자가 산부인과를 눈치 보면서 간다는 게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미지 산부인과 전문의는 "사회적 분위기상 미혼여성이 처음 산부인과를 내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듯하다"며 "(어떠한 진료가 됐든) 기록이 남는 것을 걱정하는 환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 "내원하시는 미혼여성의 약 50% 정도는 피임방법, 생리불순, 생리통, 스트레스성 부정출혈 등으로 처음 병원을 찾는다"며 "그 외 나머지 50% 정도는 질염이나 방광염 등 단순 염증치료 목적으로 내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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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사진 ⓒ 송지희


정호진 대한산부인과 의사회 부회장도 "여성이 싱글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진 만큼 순결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없어져야 한다"며 "무엇보다 자기 몸에 대한 검진을 적극적으로 하는 여성이 많아질수록 아직 남아있는 잘못된 사회인식을 점차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가영 서울여대(여성학) 교수는 여성들이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거나,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것과 관련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이유에 대해 "여성들의 행동 선택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지배적인 규범과의 관계 속에서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스스로 건강하고 인간으로서 높은 수준의 행복을 선택하는 문화가 정착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또 "(우리나라는) 여성에 대해 순결한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을 이분화 하여 여성들을 낙인찍는 이중적인 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여성들이) 남성으로부터 가치를 부여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중적 성문화가 극복 돼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정현숙(2013).성인 여성의 미용 왁싱에 대한 인식조사 및 시장성 고찰. 성신여대
여성민우회(2012).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 여성민우회

송지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20기 인턴기자 입니다.
#브라질리언 왁싱 #여성학 #산부인과 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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