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서 손짓하는 그놈,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맞벌이 가족 리씨네 유럽캠핑 에세이 16] 스페인 코르도바

등록 2014.08.29 10:45수정 2014.08.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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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도바에 왔으니 그 유명한 '메스키타'에 가기로 했다. 캠핑 운영자 말로는 어른 걸음으로 걸어서 15분이라니 아이를 동반한 우리는 넉넉잡아 30분 정도 걸릴 것이다. 천천히 걷든지, 아니면 버스를 타고 다녀오자는 내 말에 남편은 가까우니까 차로 이동해 보자고 한다.

돌로 만든 바닥, 건물, 길은 참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그런데 생각보다 주차하기가 영 힘들다. 도로는 협소하고 주차 구역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코르도바는 중세시대에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이슬람교 색채가 남아있다. 번성기였던 10세기에는 50만 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니…, 정말 주차도 만만치 않다.


좁은 길을 돌고 돌아 딱 좋은 곳을 발견해서 주차하고 보니 그곳은 특정 호텔 게스트만 주차 할 수 있는, 부럽고도 슬픈 자리였다. 특정인만 주차할 수 있다는 문구를 쓸쓸하게 읽고는 다시 힘을 낸다.

"그냥 다리 건너편으로 가자. 어제 보니까 자리가 있어 보이던데."

손짓하는 남자... 수상하다

다리를 건너기를 잘했다. 주차 자리가 곳곳에 보인다. 그때 주차요원인 것 같은 남자가 저쪽에서 손짓을 한다. 손짓에 끌려 반사적으로 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유니폼도 입지 않은 요원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기에 우리는 직감했다.

"아무래도…. 그런 놈이야!"


역시나 무료 주차구역임에도 자기가 주차관리인이라며 주차비를 내란다. 워낙 오래도록 코르도바 좁은 골목길을 구석구석 누빈 덕에 남편의 불쾌지수는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이곳은 돈 내는 곳이 아니야. 신분증 좀 보여줘."

그는 우리 집 책장 어딘 가에도 여러 개 쑤셔 박혀 있을 거시기한 빨간 카드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어떤 공권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제시한 그것이 너무 허접해 힘이 더 빠진다.

"경찰 불러도 돼?"

이미 말은 뱉어졌다. 나는 남편이 여행을 하며 그런 류에 대한 면역력을 많이 높였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좀 빨리, 그리고 멀리 갔다고 생각한다.

"여보, 그냥 가자. 그러다 저놈이 우리 차 해코지하면 어떻게 해. 응?"

잠시 후 남편은 차에 탔고 다리에서 좀 더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차를 세웠다.

"이렇게 자리가 많은데. 아주 나쁜 놈이야."

덥긴 하지만 날씨는 참 좋다. 다리 건너에 있는 코르도바 대 모스크인 메스키타의 멋진 위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다리를 건넜다. 메스키타는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의 건축 양식을 함께 볼 수 있는 매우 큰 사원이다.

900년대 확장공사를 한 뒤에는 2만5000명까지 수용했다더니 과연 다리 쪽에서 바라봐도 그 규모가 느껴진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은 '해코지'라는 내 말 때문에 붕붕이가 있는 그곳에 두고 왔나 보다. 남편은 우리에게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작은 광장에 있으라'고 한 다음 여권·면허증 등 중요한 소지품을 챙겨오겠다는 말을 하고는 다리를 건넜다.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마음'을 찾아왔으면 좋겠다.

성의 없는 길거리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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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너 보이는 곳이 메스키타이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건축 문화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 이성애


다리 끝 성문 그늘에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녀를 볼 수 있는 뒤쪽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는 더 가까이 가서 보겠다며 그녀의 턱밑으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그녀가 서 있는 곳이 하필 그런 곳인 것인지는 몰라도 거의 모든 관광객이 바이올린을 켜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지나쳤다. '힐끗'이란 그 시간은 그녀로 하여금 완벽한 한 곡을 연주하고 싶은 의욕을 완전히 앗아갔는가 보다. 여하튼 내가 그곳에 앉아서 가만히 지켜보는 동안 그녀는 한 곡도 제대로 연주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작은악절이나 연주하나 싶을 정도로 짧게 조금 켜다가 MR 반주만 바꾸고, 또 바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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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성실한 청중이었지만 그녀는 무심한 연주자였다. ⓒ 이성애


동양미가 뚝뚝 떨어지는, 작은 눈을 앙증맞게 부릅뜬 다섯 살 주가 그녀 앞에 다소곶이 앉아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제대로 된 연주곡 하나 들려주지 않고 팁박스를 챙겨 자전거에 올랐다. 청중 탓인지, 연주자 탓인지 모르겠지만 난 오늘 가장 수준 낮고 기분 나쁜 길거리 연주자의 연주를 봤다. 그때 남편은 중요한 소지품만을 추려 돌아왔다.

: "다 가져왔어?"
남편 : "응, 여권이랑 돈이랑 중요한 건 다 챙겼는데 찝찝하네. 차를 다시 댈까?"
: "그래, 그곳은 한적해서 해코지하기 쉬워. 찝찝하면 큰길 사람 다니는 곳에다 대. 자리도 많던데…."
남편 : "다시 갖다 올게."
: "그래."

남편은 다시 '왠지 모를 찜찜함을 떨쳐내기 위해 주차를 다시 하러 다리를 또 건넜다. 우리는 길거리 연주자가 떠난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가던 여행자의 정면으로 시력이 나쁜 게 분명한 비둘기가 날아들었다.

여성 운전자는 몇 초간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는가 싶더니 자전거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나라도 뛰어가야겠다고 생각해 엉덩이가 들썩이는 순간, 지나가던 유대교 랍비 같은 복장의 두 남자가 얼른 다가와 그녀에게 괜찮은지 물어봤다. 그 뒤에는 맥없이 어떤 오토바이가 휙 자빠지고…. 이상하다 싶어 가만히 보니 바닥이 미끄럽다. 흔하지 않은 광경을 한날, 한자리에서 연이어 보는 게 마치 무슨 판타지 영화 같다.

잠시 뒤 남편이 아까보다 많이 편안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더위에 먼 길을 반복해서 오간지라 얼굴에 땀이 번질거린다. 그래도 표정은 개운해 보인다.

"에이, 괜히 그 놈이 찝찝하게 하는 바람에…. 이제 메스키타를 향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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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조사하면 다 나오겠지만 리씨네 여행 특성상 설명은 패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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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키타의 건축양식에서 가장 언급이 잦은 이단 아치다. 이것이 이슬람 건축양식인 돔을 받치는 기둥이 된다. 매우 많다. ⓒ 이성애


덧붙이는 글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리씨네 여행기 #유럽캠핑 #코르도바 #메스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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