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세월호 CCTV, 정전 때문? 유가족 또 울린 언론들

[取중眞담] 복원된 세월호 CCTV, 현장에 없는 언론, 양산된 오보

등록 2014.08.26 10:42수정 2014.08.2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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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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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세월호 CCTV 상영 세월호 내 64개소의 CCTV 화면을 저장한 영상저장장치(DVR)의 복원 작업이 완료돼 22일 오후 2시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비공개 상영됐다. 실종자 가족과 변호인들이 복원한 DVR을 보기 위해 광주지법 목포지원 101호 법정에 들어가고 있다. ⓒ 소중한


"OOOO 기자, XXX 기자, 어딨어요?"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다. 22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비공개 상영한 '복원된 세월호 CCTV'를 보던 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법정에서 나와 특정 언론사를 거론하며 화를 냈다. 시각은 오후 7시 30분께. 이날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와 변호인단이 오후 2시부터 영상을 보기 시작했으니 4시간 넘게 영상을 본 이후였다(저녁식사 시간 제외).

"(세월호 CCTV가 꺼진 이유는) 정전이 아니라니까, 정전이라고 썼네. 그렇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오보를 내더니 왜 또 이래요."

이 유가족은 손에 든 스마트폰을 내보이며 현장에 있지도 않은 두 언론사의 기자를 향해 "기사 고치라고 하세요"라고 토로했다. 한숨을 내쉰 그는 다시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OOOO사와 XXX사는 국내 대표적인 통신사와 방송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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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 해양경찰청 제공


비공개 상영 후 뒤집어진 '정전' 가능성... 침묵한 언론

유가족이 화를 낼 만했다. OOOO 가 낸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복원된 세월호 CCTV) 영상에는 전기적 요인 등으로 정전 사고가 발생한 탓에 침몰 전후의 상황이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복원된 세월호 CCTV가 주는 암시는 이와 달랐다. 이날 CCTV 비공개 상영 직후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와 변호인단은 "배가 아주 평온한 가운데 갑자기 세월호에 있는 CCTV 64개가 모두 꺼진다"며 "(때문에) 정전으로 인해 CCTV가 꺼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당초 알려진대로 세월호 CCTV는 16일 오전 8시 30분 59초에 꺼졌다(관련기사 : '오전 8시32분 녹화 중단'... 세월호 CCTV 미스터리). 그리고 이날 복원된 세월호 CCTV가 상영되기 전까지 해당 언론사의 보도대로 '배의 침몰에 따른 정전'이 가장 설득력 있는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이날 상영된 영상을 통해 뒤집어진 것이다.

특히 유가족이 화를 낸 이유는 '정전 오보'가 단순한 사실 착오로 끝낼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전으로 인해 CCTV가 꺼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청난 차이다. '침몰→침수→정전→CCTV 멈춤'은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반대는 자연스럽지 않다.

이날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가 밝힌 것처럼 "정전으로 인해 CCTV가 꺼진 게 아니"라면 "누군가에 의해 (CCTV) 작동이 멈춘 것"이라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하다(관련기사 : "세월호 CCTV 갑자기 꺼졌다... 누군가 작동 멈춘 것"). 누군가 CCTV를 껐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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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CCTV 복원, 상영 기다리는 유가족 세월호 내 64개소의 CCTV 화면을 저장한 영상저장장치(DVR)의 복원 작업이 완료돼 22일 오후 2시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비공개 상영됐다. 실종자 가족들이 복원한 DVR을 보기 위해 광주지법 목포지원 101호 법정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 소중한


"반성하겠다" 외친 언론, 진짜 반성했나

더 큰 문제는 OOOO가 국내 대표적인 통신사이기 때문에 많은 언론사가 OOOO 오보를 그대로 받아썼고, 포털사이트에 '정전에 의해 세월호 CCTV가 꺼졌다'는 내용이 도배됐다는 점이다. 더해 오후 5시 30분께 입력된 해당 언론사의 기사에는 "가족들은 (중략)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5시간 넘게 지켜봤다"고 나와있다.

오후 5시 30분이면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와 변호인단이 3시간 남짓 영상을 본 시점이다. '미리쓰기'가 관례라곤 하지만 전후 사정이 확 바뀐 이날 현장에까지 그런 관례가 적용돼선 곤란하다.

두 언론사를 포함해 정전 오보를 낸 모든 언론사는 이날 현장에 없었다. 이날 비공개 상영이 끝날 때까지 현장에 남아 '취재'를 한 언론사는 필자가 확인하기로는 <오마이뉴스>, <JTBC>, <뉴스타파> 세 곳. 상영이 시작된 오후 2시 정도에 이보다 2, 3배 더 있던 취재진은 날이 어두워지자 자취를 감췄다.

복원된 세월호 CCTV 영상은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몇 가지 힌트를 더 줬다. ▲ 선원들이 업무를 보는 공간에 CCTV가 전혀 없었다는 점 ▲ 기존 알려진 것과 다른 승선시간 ▲ 사고 전 갑자기 기계실 내부를 수리하는 선원의 모습 등은 이날 비공개 상영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다.

현장에 없던 언론사 기자는 '정전에 의해 세월호 CCTV가 꺼졌다'는 오보와 함께 위 힌트를 놓쳤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당시 'CCTV가 갑자기 꺼졌고, 정전 가능성이 낮으며, 누군가 강제로 CCTV를 껐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 그리고 위의 힌트는 <오마이뉴스>와 <JTBC> 외엔 보도하지 않았다(<뉴스타파>는 매체 특성상 아직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반성하겠다"를 수도 없이 외친 언론. 하지만 언론은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의 가슴에 지금도 못을 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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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내 64개소의 CCTV 화면을 저장한 영상저장장치(DVR). DVR을 복원해 볼 수 있게 된 CCTV 화면이 22일 오후 2시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비공개 상영됐다. 사진은 단원고 학생 고 김빛나라양의 아버지 김병원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장의 휴대폰에 담긴 DVR 사진을 찍은 것이다. ⓒ 소중한


#세월호 #CCTV #정전 #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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