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 건에 500만원... 이런 '기자'도 있다

열악한 언론 환경에서 생겨난 변종 언론 '비즈 언론사'

등록 2014.08.29 18:50수정 2014.09.0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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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기자를 꿈꾸는 독자가 있는가? 2014년 대한민국에서 기자를 꿈꾼다는 것은 그리 낭만적인 생각이 아닐지 모른다. 노무현 정부 때 언론사 등록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되면서 그동안 국내에는 숱한 신문사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중에서 제대로 된 언론사의 역할을 하는 곳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은 형편이다. 

언론사의 등록이 신고제로 바뀌면서 이제 누구나 언론사를 세울 수 있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언론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2014년 현재 문화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정기간행물 총 등록 수는 1만6043개에 이른다. 이 중에서 인터넷 신문사는 4천여 개에 이르지만 이 중 400개 정도만 최소한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400개도 일부 매체를 제외하곤 대부분 정체성이 모호하다.

사무실 주소지와 등록 기자 2명만 있으면 한 개인이 등록할 수 있는 신문사의 수에 제한이 없다. 때문에 한 개인이 몇 십 개에서 몇 백 개의 신문사를 등록해 놓은 경우도 있다. 문광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한 개인이 1~2명의 기자를 두고 여러 곳의 언론사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비즈 기사'만으로 운영되는 매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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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기자를 꿈꾸는 독자가 있는가? 2014년 대한민국에서 기자를 꿈꾼다는 것은 그리 낭만적인 생각이 아닐지 모른다. ⓒ freeimages


어떻게 1~2명으로 많은 기사들을 생산할 수 있는지 일반인들은 의아할 법하다. 그것이 가능한 건 기사를 언론사에 제공해주는 통신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AP 및 UPI, 우리나라에는 <연합뉴스><뉴시스> 등이 있는데 이곳에선 자체적으로 생산한 기사나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판매한다.

언론사들은 승인을 받은 후 일정한 사용 요금을 내면 통신사 기사를 사용할 수 있다. 보도 사진도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 통신사 기자명을 밝히지 않고 통신사 기사를 가공하는 방법도 있다. 중소매체, 특히 소규모 언론매체에서는 상근 편집기자들이 기사 내용에 대한 약간의 가공을 거쳐 자기 회사의 기자명으로 바꾸고 제목도 변경해 내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업무다.

이런 식으로 언론사를 운영하기만 하면 혼자서도 언론사 운영이 가능해진다. 때문에 취재 활동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언론사들도 많다. 권력을 감시, 견제하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보도한다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언론의 정체성'이 모호한 이런 곳에서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 이렇게 '복사 기사'로 운영되는 언론사의 수익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일반적으로 광고나 자체적인 수익 사업으로 운영되지만, 지금은 중앙 신문사들의 매출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기에 중소매체들의 수익 활동 여건이 그리 만만한 건 아니다.

오염된 강에서 변종 생물이 생겨나듯이, 생존력이 취약한 일부 영세매체들 가운데 특이한 방식으로 수익 활동을 하는 언론사들이 나오게 된다. 이른바 '비즈 기사'들만으로 운영되는 매체들이다.

비즈 기사란 보통 비즈니스 기사라고 해서 경제 산업 분야의 기사를 말하는데, 한편에선 기사 형태를 취한 광고를 일컫기도 한다. 비즈 언론사란 비즈 광고 기사들로 지면을 채워 운영되는 곳이다. 주로 인터뷰 형태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CEO와 그 기업을 소개하는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다면 그것을 지면에 내보낸 후, 인터뷰이에게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는 '협찬'이라고 한다.

반대급부로 돈을 직접적으로 받지는 않는다. 자칫 언론사를 빙자해 갈취했다는 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련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는 해당 과월호 책을 인터뷰이가 구매해 주는 형태로 수익을 만든다. 즉, 과월호 잡지를 한 권에 만 원으로 친다면, 협찬 비용이 300만 원일 경우 300권, 500만 원일 경우 500권을 구매해주는 식이다.

​비즈 언론사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자라고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닌다. 이들은 기자 일을 하던 사람도 있고 광고영업을 하던 사람도 있는데, 실상 후자가 더 많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언론사에서 광고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비즈 언론사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로 여의도 근방에 많고, 지금도 계속 생겨났다 문을 닫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월간 또는 주간으로 발행되는 경제, 시사 잡지 중에 이런 곳이 많다. ​비즈 기사로 운영되고 있는 한 시사 잡지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한명호씨(가명, 47)는 "나는 원래 어느 중앙일간지의 광고영업사원으로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종사하고 있다. 그의 회사는 여의도 국회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그는 "정확한 건 아니지만,  IMF 시절 국내 한 중앙신문사에서 (비즈 기사를) 처음으로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는 비즈 기사라는 게 생소했던 시절이라 그 일을 하는 기자(?)들은 돈을 많이 벌었다. 한 달에 천만 원은 우습게 벌었다.

"우리는 언론 홍보업... 이 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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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언론사란 비즈 광고 기사들로 지면을 채워 운영되는 곳이다. 주로 인터뷰 형태가 많다. 사진은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잡지들. ⓒ 김재용


기본급이란 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기자들은 대부분 백 퍼센트 수당제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건 아니다. 기자들은 각각 개인사업자의 형태로 일을 한다. 지금은 비즈 기사라는 것이 많이 알려져 비즈 언론에서 취재 요청을 하면 광고라는 것을 대부분 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련된 베테랑들은 여전히 한 달에 천만 원도 번다. 하지만 고정적인 월급이라는 게 없으니 못하는 사람은 밥도 못 먹는다. ​협찬 계약을 성사 시킨 기자들은 판매액의 20%~40%를 자기 몫으로 가져간다. 예를 들어 인터뷰가 성사되고 잡지에 실린 후 해당 과월호 500권 판매 계약을 맺었다면, 섭외한 기자에게는 판매액의 30%(인센티브 비율은 회사마다 다르다) 즉 150만 원이 떨어진다.

비즈 언론사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전직은 다양하다. 보험영업 등의 갖가지 영업에 종사하던 사람도 있고 그냥 직장을 구하다가 우연히 일을 하게 된 사람도 있다. 일반 언론사 기자 출신들도 있다고 한다. 한명호씨는 "그들은 기자 생활할 때 받는 월급에 만족 못했던 것이다. 이곳에서 잘만 하면 직장인 이상의 돈을 만질 수도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주로 여러 가지 매체나 광고를 통해서 알게 된 업체나 관계자의 연락처로 연락을 한 후 인터뷰를 성사 시킨다. 기사 가격의 시세(?)는 정해져 있지 않다. 액수는 담당 기자의 소위 '말빨'에 달려 있다. 기자의 영업 능력에 따라 비즈기사 액수가 달라지는 것이다.

기자라면 당연히 직접 취재를 하고 기사도 써야 하지만 전화로 섭외만 성사시키고 인터뷰와 기사 작성은 외주를 주는 종사자들이 많다. 소위 '고스트 에디터(유령 편집자)'에게 대행을 시키는 것이다. 이 분야에도 이렇게 하청 시장이 형성돼 있다. 기사 대행을 주는 이유는 기자 외 출신이 많고 이들은 기사 작성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즈 기사는 사전에 고객(?)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후 지면에 나간다. '협의'란 물론 기사 내용에 관한 것이다. 꾸준한 고객 관리를 위해서도 고객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이렇게 판매된 기사들은 결국 홍보성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용의 사실성과 객관성 측면에도 신뢰가 보장되기 어렵다. 또한 기사의 전문성과 품질이 떨어져 독자가 언론매체를 더욱 불신하게 만드는 원인도 된다. ​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기사형 광고 심의규정에 의하면 기사형 광고에 '취재', '편집자 주', '독점인터뷰', '글(또는 취재)○○기자', '전문기자', '칼럼니스트' 등 기사로 오인하게 유도하는 표현을 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광고'라는 명시 없이 기사형 광고에 '특집', '기획', '신상품소개', '협찬' 등과 같이 기사로 오인할 수 있는 표시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도 나와 있지만, 비즈 언론사에서는 이런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비즈 언론사 먹이구조가 사라지기는 쉽지 않다. 신생 기업을 포함해 중소기업들에게 홍보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그렇다고 영향력 있는 방송사나 신문사에 광고를 하는 것은 자금이 넉넉지 않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기업들에겐 너무 높은 문턱이다.

그런 기업들은 기사의 권위로 자신들의 사업체를 소개시켜 주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즈 기사에 구미가 당기기도 한다. 수요는 발생하는 셈이다. 작년에 한 비즈 시사 잡지를 홀로 창간한 박종훈(가명, 50)씨는 "시사월간지에 실린 자기 회사의 CEO인터뷰 기사를 오려다가 사무실에 떡 걸어 놓는다. 그럼 회사의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몇 백만 원 이상의 값어치를 할 만한 홍보물이 되지 않겠나? 그래서 열심히만 하면 섭외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섭외를 한다는 게 수월한 일만은 아니다. 중소신문사에서 취재기자로 일하다 5년 전에 한 비즈 언론사에 입사했다는 권동하(가명, 36)씨는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분야도 적응에 애를 먹는 사람들도 많다. 난 그나마 잘 적응해서 한 달 평균 3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린다. 하지만 매년 편차가 커서 내년에는 어떨지 장담할 순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요새는 우리 같은 곳에서 연락하는 기자들이 많아서 웬만한 업체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다. 기사를 내보내는 건 환영하는데 대부분 협찬을 요청하면 꺼리는 편이다"라고 밝혔다. 그래서 홍보가 시급한 신생 기업을 찾아서 섭외하는 등의 새로운 방식을 계속 궁리하고 있다고 한다.

기자 명함을 내밀고 취재 활동이 아닌 영업 활동을 하는 비즈 언론사 종사자들은 어떠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지 물었다. 권동하씨는 당당하게 말했다.

"나도 원래 중소신문사 기자 출신이다. 하지만 그때 받은 월급 이래 봐야 백만 원 대 초반이었다. 그런 수준으로 미래를 꿈꿀 수 있겠나? 이게 우리나라 언론사 종사자들의 답답한 현실이다. 어차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이런 식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언론사들은 우리 분야만이 아니다. 큰 언론사에서는 나쁜 짓도 많이 하지 않은가? 언론사의 사명도 좋지만 그래도 한 개인이 미래를 꿈꿀 수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고객(취재원)들도 다 알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꺼림칙할 게 없다. 우리는 일종의 언론 홍보업이다. 난 지금 이 일이 좋다."

권동하씨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말에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를 탓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점 불안정해지는 사회적 일자리 여건이 관련 종사자들을 변종된 양태로 모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언론사 #기자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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