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다른 미술관... 작은 배려가 만든 큰 차이

[나오시마 르네상스 이야기 ③] 지중미술관

등록 2014.08.28 09:38수정 2014.08.2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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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15분이 되어 표를 끊고 우리는 지중미술관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수련 연못을 지난다. 잠시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러나 금방 그칠 것 같다. 우리는 미술관 정문을 지나 건물로 접근해 간다. 이곳 역시 전형적인 안도 다다오식 건물이다. 콘크리트 벽이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고, 문 형태의 열린 공간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지중미술관은 말 그대로 지하에 있다.

지하 1층에 카페, 기념품점, 정원이 있고, 지하 2,3층에 전시실이 있다. 2층에는 클로드 모네와 제임스 터랠 전시관이 있다. 그리고 3층에 월터 드 마리아 전시관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지하 3층으로 내려가 위로 올라가면서 관람하는 방식을 취한다. 우리도 먼저 지하 3층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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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석이 깔린 삼각형 안뜰 ⓒ 이상기


지하 3층에는 빛이 들어오는 안뜰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사각형으로 만들어졌고 그곳에 풀이 자라고 있다. 다른 하나는 삼각형으로 만들어졌으며, 바닥에 화강석을 깔았다. 사각형 안뜰로는 들어갈 수 없지만, 삼각형 안뜰로는 들어가 화강석 위를 거닐 수 있다. 그래선지 화강석 위를 거니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는 별 거 아닌 것이 건축이 되고 예술이 된다. 그게 바로 안도 다다오의 힘이고 매력이다.

안뜰을 보고 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월터 드 마리아관으로 향한다. 미술관 한 층 전체를 배려할 정도로 월터는 위대한 예술가일까? 자료를 찾아보니 그는 미니멀 아트와 개념예술의 대가로 알려 있다. LA미술관장인 마이클 조반(Michael Govan)은 월터의 위대성을 '유일하고 장엄하며 직설적인(singular, sublime, direct)' 데서 찾고 있다. 그의 위대성을 알기 위해 전시관으로 들어간다.

이곳 전시관에 들어가려면 또 다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적당한 인원이 최적의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다. 먼저 들어간 사람이 나오는 만큼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입구에 도슨트들이 서서 순서대로 들여보낸다. 조금 짜증이 난다.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될까? 자연스럽게 순환이 될 텐데 말이다. 이게 바로 일본식의 조직성과 철저함이다. 그러나 그게 되레 매너리즘과 순응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지하 삼층에 있는 월터 드 마리아의 '유한, 무한,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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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드 마리아의 '유한, 무한, 영원' ⓒ 이상기

전시장은 계단을 통해 아래서 위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중간에 넓은 평면을 만들어 한 가운데 화강석 구(球)를 배치했다. 지름이 2.2m나 되는 공으로, 검은색을 띠어 강인한 느낌을 준다.


사방 벽에는 금박을 입힌 기하학적 형태의 각목을 상하로 배치했다. 모두 27개로 창문같은 느낌이 난다. 그리고 천정에는 네모난 구멍을 뚫어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했다.

자연 채광, 그것은 안도 다다오 건축의 트레이드 마크다. 자연의 빛이 월터 드 마리아관을 신비롭게 만든다. 지상의 예술이 천상의 빛을 받아 신비로움을 더하게 된다. 콘크리트의 회색, 화강석의 검은색, 각목의 황금색이 잘 어우러져 생각보다 차분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의 제목이 '유한, 무한, 영원(Time/ Timeless/ No Time)이다. 제목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유추해 보자.

시간 속에 존재하는 유한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는 황금색의 각목이다.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럼 무한은? 검은 색의 화강석이다. 돌은 나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럼 영원은? 빛이다. 유한한 자연과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빛은 영원하다. 그 빛이 쏟아져 들어오면, 유한한 존재인 대상들은 그 모습이 조금씩 변해 간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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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수련 연못' ⓒ 이상기


월터의 작품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간 나와 아내는 모네를 먼저 볼지 터렐을 먼저 볼지를 논의한다. 아무래도 지명도가 더 높은 모네를 먼저 보기로 한다. 이곳 역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지중미술관이 이곳 나오시마에서 가장 인기가 높고, 또 전시공간이 좁아 수용인원이 적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려는 생각에 다들 잘도 기다린다. 한 15분쯤 기다렸을까? 우리 차례가 된다.

안으로 들어가면 네모난 공간의 사방에 수련 그림이 걸려 있다. 정면에 가장 큰 그림(2×3m) 한 점, 양 측면에 중간 크기(2×2m) 각 한 점씩, 입구 양쪽 벽에 작은 크기(1×2m) 각 한 점씩 해서 모두 5점이다. 그런데 이들 수련 그림이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림에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좀 더 인상적인 수련 그림들을 이미 좀 더 유명한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네는 1897년부터 수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수련 그림을 100점 이상이나 그렸다. 그 중 다섯 점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작품의 제목이 '수련 연못(Water-Lily Pond)'이다. 가운데 왼쪽으로 붉은 빛이 감돌고, 오른쪽 아래 부분에 수련이 피어 있다. 그런데 그 연꽃과 연잎의 대비가 뚜렷하지 않고, 전체 색조도 지나치게 어둡다. 인상주의적인 시대를 지나 표현주의적인 느낌까지 난다.

다른 네 점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들이 대장식화(Grande Décoration)의 개념으로 만들어져 오랑주리미술관에 전시되었다고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감동이 밀려오지는 않는다. 모네의 위대성을 이야기하자면, 사진과 광학의 시대에 오로지 자신의 눈을 통해 대상 세계를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예술은 온통 실험과 가상의 유희로 변화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모네의 작품은 여전히 현대회화의 고전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제임스 터렐이 만든 빛의 미학 

제임스 터렐의 빛의 예술을 보기 위해서도 한 20분은 기다린 것 같다. 왜냐하면 주어진 공간에 8명만 입장시키기 때문이다. 들어가면서 우리는 '에이프럼, 페일 블루(Afrum, Pale Blue: 1968)'를 볼 수 있었다. 에이프럼이 찾기(Navigation, Search)를 뜻하고, 페일 블루가 진청색을 뜻하므로, 우리말 제목으로는 '진청색 찾기'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작품의 특징은 각이 진 곳에 빛을 투사해 입체 또는 건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배경은 진청색이고, 그 가운데 육각형의 입체가 나타난다. 빛을 통해 관람객을 현혹시키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것을 지나면 도슨트의 안내로 계단을 올라 오픈 필드(Open Field: 2000)로 들어가게 된다. 정면으로 푸른색 평면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곳으로 들어가면 관람객이 입체 속에 있게 된다. 푸른색 빛이 공간에서 흔들리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는 그 공간 속을 움직이며 그 분위기를 즐긴다.

사실 터렐이 만들어낸 빛의 예술인데, 관람객이 움직임으로 해서 체험의 예술, 행위 예술로 승화된다. 수동적인 감상이 능동적인 행위로 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터렐이 추구하는 현대예술이다. 감상을 끝내고 나오면서 보면 다시 평면이 보인다. 그런데 들어갈 때의 평면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바라보는 방향과 각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내부 공간을 체험하면서 인간의 의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터렐은 빛과 건축이라는 머티리얼(Material)과 마음이라는 멘탈(Mental)을 결합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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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렐의 '오픈 스카이' ⓒ 이상기


다음으로 찾아간 작품은 '오픈 스카이(Open Sky: 2004)'다. 말 그대로 하늘로 뻥 뚫린 공간을 만들어 놓고, 벤치 형태의 벽에 앉아 하늘과 빛의 투영을 감상하는 것이다. 하늘의 색은 파란색으로 회색으로 그리고 검은색으로 변해 가고, 네모난 구멍은 해의 움직임에 따라 또 하늘빛에 따라 계속해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그 공간에 앉아 있을 때 하늘은 하얀색에 가까웠다 그리고 열린 공간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바닥에 거의 형체를 만들지 못했다.

20분을 기다려 빛을 체험한 시간은 20분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터렐의 미학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지나친 실험에 실망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예술이라는 것이 새로움의 추구라면, 이해하는 쪽으로 접근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제임스 터렐이 추구하는 예술절학은 다음과 같다. 이를 통해 터렐의 미학에서 관람객의 몫이 큼을 알 수 있다.

"나는 공간을 만들고, 우리가 그 공간을 통해 빛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든 빛을 모으거나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작품은 내가 보아서 만들어냈다고는 하지만, 내가 본 것 이상으로 여러분이 보아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카페에서 즐기는 지상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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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바라 본 바깥 풍경 ⓒ 이상기


지하 세계에서 그 어려운 예술을 감상한 우리는 지하 1층의 카페로 간다. 이곳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밖의 풍경을 감상한다. 앞에 마당이 펼쳐지고, 마당으로 나가면 세토내해의 섬과 운항하는 배를 바라볼 수 있다. 밖의 마당에는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다.

지중미술관의 입장료는 1인당 2,060¥으로 비싼 편이다. 그런데 15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무료다. 이것은 젊은 세대에게 예술을 감상할 기회를 주려는 배려로 여겨진다. 65세 이상 무료라는 우리의 정책과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12시 50분쯤 지중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베넷세 하우스행 셔틀버스를 탄다. 버스가 바로 있어 다행이다. 여기서 베넷세 하우스까지는 5분 정도 걸린다.
#지중미술관 #안도 다다오 #클로드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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