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구원파'의 실체...이 정도밖에 안 되나?

[게릴라칼럼] 이제 '아빠 자격' 대신 '대통령 자격'을 물어라

등록 2014.08.28 14:14수정 2014.08.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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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삶은 구차하다.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도 화장실에 가고, 잠도 청해야 하며, 억지로 밥을 씹어 삼켜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구차한 삶이라도 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세월호 선장은 승객에게 경고도 하지 않고 배에서 빠져 나온 뒤 돈을 말리다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당시 보수언론은 선장이 얼마짜리 지폐를 어떤 식으로 말리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꼼꼼히 전하며 그의 '인면수심'을 비난하고 '돈이 지배하게 된 세상'을 개탄했다.

돈을 말리는 행동이 왜 문제였을까? 비극이 닥쳐와도 언젠가는 돈이 필요할 할 것이고, 젖은 돈을 말려야 할 때도 올 텐데 말이다. 예컨대 세월호 사고 후 100일이 되자, 정부와 언론은 표정을 바꾸어, 이제 가라앉은 경제를 살릴 때라고 입을 모았다. 다시 말해, 이제는 돈을 말릴 때라는 것이다.

이런 정부와 언론이 선장을 비난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시기였을 것이다. 그가 지폐의 물기를 없애려던 순간에 승객들의 생명은 물속으로 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민망한 돈'은 언제쯤 말려야 좋을까?

선장이 100일을 못 참고 젖은 돈을 꺼내든 게 문제였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에게는 시기뿐 아니라 자격의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목숨을 팽개친 채 도망친 이가 돈 몇 푼만은 구하려 했다는 사실 말이다.

선장이 승객들을 구하고 피신했더라면, 아니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기만 했어도, 그의 행위는 어느 정도 용서받았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지났느냐가 아니라 어떤 행위를 했는가다. 물론 승객의 목숨을 무겁게 여기는 선장이라면, 단 한 명이 목숨을 잃었어도 쉽게 돈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돈 말리는 대통령, 환호하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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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복도 못한 채 병실에 누운 '유민아빠' 세월호특별법제정촉구 단식 농성 40일째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유가족과 주치의의 설득으로 병원으로 후송 되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이희훈


삶은 본래 구차하다. 수백 명의 국민이 애통하게 죽은 후에도, 지도자는 화장실에 가고, 잠도 청해야 하며, 국정도 살펴야 한다. 여기에는 민생도 포함된다. 언제부턴가 대통령과 정부가 열심히 외치는 그 '민생'말이다.

사전에서 '민생'을 찾아보면 '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와 '목숨을 가진 국민'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나온다. 민생의 기초는 국민들을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목숨도 지켜주지 못하는 권력의 '민생 챙기기'가 헛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월호 사고의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는지 아닌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통령 책임론을 말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이렇다. 낡고 위험한 배를 고쳐 영업하게 해 준 것도 정부고, 안전점검도 소홀히 한 것도 정부며, 사고 후 구조는커녕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며 시간을 허비한 것도 정부인만큼 대통령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불온세력이 '교통사고'에 지나지 않는 사고를 악용해 대통령을 흔들고 있으므로, 오히려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물에 빠진 건 국민들인데, 구해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 되는 기이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두 상반된 견해는 도무지 좁혀질 것 같지 않으니, 대통령 당사자의 입장으로 대신하도록 하자.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 가족들의 여행길을 지켜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듭니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 5월 19일 대국민 담화 중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에 대처하지 못한 최종책임"을 어떻게 졌을까? 그가 흘린 눈물에 신령한 힘이 담겨 있어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한, 그의 사과는 분명한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이라곤 총리를 해임한 후 취소한 것과, 해경을 해체하기로 한 것뿐이다. 그러고는 이제 슬픔을 뒤로한 채 경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슬픔을 뒤로 하려면, 최소한 사고나 사건이 '과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배는 여전히 그 곳에 가라앉아 있다. '실종자'로 집계된, 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이 사람들을 가족과 친구들은 이 시간에도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뭘 뒤로 하고 뭘 극복하란 말인가. 세월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현재와 미래의 참사를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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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6일째 애타는 가족들 '세월호 침몰사고' 6일째인 지난 4월 21일 오전 실종자 생존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실종자 가족들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바다를 바라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 권우성


유족들은 묻는다. 왜 내 피붙이가 하루아침에 시신이 될 수밖에 없었느냐고. 누구에게 그 책임이 있고, 당사자가 그 책임을 충분히 졌느냐고. 대통령도, 여당도, 심지어 야당도 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다시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이런 비통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느냐고. 정치인들은 요구하지도 않은 '특례입학'이며, '의사자 지정' 조건을 내세워 가족들을 설득하려 했고, 먹혀들지 않자 자신들이 제안한 내용으로 유족들을 불온하고 탐욕스러운 세력으로 몰아갔다. 

가장 기막힌 것은 '양보론'이다.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 일부 종교지도자까지 나서서 유족들에게 '양보하라'고 말하고 있다. 뭘 양보하란 말인가. 자식들이, 부모가, 친척과 친구가 왜 죽었는지 알려 하지 말란 말인가? 그들의 죽음에 책임을 묻지 말란 말인가?

진실 규명은 재발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나라가 정의가 살아 숨 쉬는 곳이 아니라, 힘이 정의 행세를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돈 없고 힘없어 자식을 잃고도 무시 받고 조롱까지 당하는 유족들이 수사권과 기소권 없이 진실을 밝혀낼 수는 없다.

정부가 갑자기 '경제 살리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생뚱맞다. 세월호 사고 이전에도 못 살리던 경제를 지금 살리겠다며 덤벼드는 것도 우습지만, 참사가 경기 침체 원인이라면, 사고의 인과관계를 규명해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경기부양의 지름길이다. 해결되지도 않은 사고를 기억에서 지우는 집단 망각이 대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제발 기억력 나쁜 게 '잘 살기 위한' 조건이라고 말하지 말라.

사실 세월호 사고는 과거로부터 되풀이 되어온 집단망각의 결과였다. 바로 지금처럼 참사 주범들이 힘센 사람들이었고, 이들을 등에 업은 언론과 정치세력이 국민들에게 잊길 요구했기 때문이다. 잊어야 산다고 윽박지른 탓에, 피난민으로 가득한 다리를 폭파하고 도망친 지도자는 '국부'라는 칭호를 얻었고, 무고한 국민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한 지도자는 '반인반신'이라는 성자의 지위에 올랐으며, 제 나라 군대를 동원해 수백 명의 국민을 학살한 지도자는 정치인들의 세배행렬이 끊이지 않는 '원로'로 존경받고 있다.

이번에 제대로 진상을 밝히지 않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세월호는 현재와 미래가 되어 끊임없이 희생자를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정치권과 언론은 적당히 잊으라고 할 것이다. 과거에도 그 요구가 먹혔으므로.

유족에게 '양보하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세월호특별법은 '유족'의 문제도 아니고, '양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목숨이 양보 대상이 될 수 없다면 말이다. 

국민 목숨을 제물 삼는 '대통령 구원파'

"대통령을 지켜주세요."

선거가 끝났는데도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안심하시라. 대통령은 무사하며, 앞으로도 무사할 것이다. 사고의 실체가 밝혀지고, 그 과정에서 정부당국과 대통령의 무능하고 안일한 대처가 드러난다면 어떨까?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르겠으나, 나는 대통령이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 넣기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왜 자꾸 멀쩡한 대통령을 '지켜달라'고 외치는 것일까? 무려 46일을 단식한 유민 아빠가 근처에 오지도 않은 대통령을 위협하겠는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어 그저 함께 굶는 것으로 연대의 손길을 내민 시민들이 대통령의 안전을 해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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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상명대학교 상명아트센터에서 열린 융복합 공연 '원데이(One Day)'를 관람하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무대로 향하고 있다. 이 공연은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주제로 한 것이다. ⓒ 연합뉴스


결국 '대통령 구원파'들이 걱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안전이나 지도력이 아니라 그의 체면과 '심기'다. 민간인이 참여한 일개 조사위원회가 '감히' 대통령을 조사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대통령 심기 구원파'인 셈인데, 나는 이들의 충성과 존경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의 맹목적 신상이 국민의 목숨까지 제물로 바치려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대통령 구원파'가 대통령에게 꼭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사고 당일 대통령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청와대는 '대통령도 사생활이 있다'고 말해 '의문의 7시간'을 세계 뉴스로 만들었다. 대통령이 근무해야 할 시간에 '사생활'을 이야기를 꺼낸 것도 놀라웠지만, '분명히 경내에 있었다'는 대답도 아둔하긴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국가 재난사태 때 (집무실도 아닌) '경내'에 있었다는 것으로 대통령이 할 일을 다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할과 자격을 너무 얕잡아보는 것이다. 스스로 "최종 책임자"라던 대통령은 목숨을 걸고 진실과 대책을 요구하는 국민들은 '너무 바빠' 만날 수 없다면서, 시장에 가고 영화를 보고 뮤지컬을 감상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가 사회 현안에 대한 무지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그 판단이 큰 착오였음을 깨닫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잔인한 불감증 말이다. 국민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국민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만들 방법을 알 리 없다.

아빠의 자격, 대통령의 자격

언론의 사명은 '편한 자를 불편하게 하고, 불편한 자를 편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언론은 '전원구조' 오보에서 시작해, '육·해·공군 전력 총동원 구조작전'이라는 정부의 거짓말을 받아  써서 시종 참사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이제 그들은 '세월호를 잊자'며, 유족들을 흑심 품은 불순한 사람들로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목숨 걸고 진실을 요구하던 딸 잃은 아비의 '아비자격'까지 논하고 나섰다. 한국 언론의 사명이 편한 자를 더욱 편하게 모시는 게 아니라면, '자격' 이야기는 피해자가 아니라 책임자를 향해야 한다. 삶은 구차하지만, 그래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예컨대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단식중인 유족 앞에서 시시덕거리며 닭다리를 뜯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유민아빠의 '자격'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지난 46일간 아버지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자식이 죽은 이유를 밝히고, 더는 그런 헛된 죽음이 없도록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냈지 않은가. 그에게 온갖 악담을 퍼부은 이들은 유민아빠 아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 짓이 아버지, 어머니로서 부끄럽지 않은지 말이다.
#세월호 #박근혜 #세월호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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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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