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성을 가진 한국사회, 성찰이 필요해

여수시민사회연대회의 초청 손석춘 교수 강의 열려

등록 2014.08.28 17:52수정 2014.08.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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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여수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손석춘 교수 초청 강의 모습 ⓒ 오문수


지난 27일 오후 7시께, 전남 여수시 학동 청소년수련관에서는 '한국시민사회운동의 현황과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의 강연회가 열렸다. 전 한겨레 논설위원이자 현재는 건국대학교 교수인 손석춘씨가 강단에 올랐다. 청소년수련관에는 약 70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참석했다.

손 교수를 초청한 단체는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여수고교연합동아리 'NGO저널'이다. 초청단체가 고교연합동아리여서인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많이 참석했다. 뒷좌석에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손 교수의 열강에 귀를 기울였다.

이현종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는 "여수지역 시민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초청이유를 설명했다.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성찰이 필요해...

전국언론노조 정책기획실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손 교수가 강의를 시작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한국처럼 좋은 나라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단된 한국과 외국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나라, 비정규직이 많은 나라, 자살율과 노동시간도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 시각도 있어요. 어느 쪽이 옳은 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어요."  

"군부독재시절 영부인역할을 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된 나라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는 지적에 청중들이 침을 삼켰다. 손 교수는 "두 가지 시각을 다 무시할 수는 없다"며 현실을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GNP가 2만 달러가 넘고 실제구매력은 3만 달러가 넘지만 전체 GNP이기 때문에 통계수치에 함정이 있다"는 그는 "분배문제를 생각해보면 부익부빈익빈의 허구성이 금방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손교수는 ▲ 출산율 198위 ▲ 자살율 1위 ▲ 노동시간 2위 ▲ 비정규직 수 1위 ▲ 자영업인구 1위 ▲ 음주량 1위 등 여러 통계를 제시했다.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명시하는 지표들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이 의미하는 것은 생명의 탄생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한다"고 덧붙인 손 교수는 한국인들이 절망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한국은 학벌중심사회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학생들이 소위 말하는 명문 SKY대학을 가려고 기를 쓴다. 대학졸업자와 고등학교 졸업자의 임금격차가 한국처럼 큰 나라가 없기 때문에 좋은 대학을 가려고 밤 11시까지 자율학습을 한다.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도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으로 쫒겨난다. 그러면 식당이나 커피 전문점같은 자영업에 뛰어든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6백만 명이 넘어 경쟁이 심하다.

전체 인구 4800만 명 중 노동인구가 1650만 명인데 이는 절대다수가 노동자 가족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어른들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행복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마시고 자녀들 앞에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준석 선장이 자기 혼자 세월호에서 탈출한 후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을 꺼내 말리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 이게 바로 한국의 현실이고 비정규직의 현실이지만 가족이 있으니 그만 둘 수 없어서 그냥 산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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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하는 손석춘 교수 모습 ⓒ 오문수


세 아이와 함께 자살한 엄마의 처절한 아픔이 있는 사회

인천에 살고 있었던 부부는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아이 둘을 두고 연립주택 5층에 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동네에서 천사로 불릴 정도로 좋은 아주머니였지만 남편 회사가 부도가 났다. 직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1년 가까이 월급 없이 살았다. 생활비가 부족해지자 부부는 하는 수없이 적금을 깨고 은행에서 카드빚을 썼다.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인 충청도에 내려가 있는 동안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부인은 취업을 할 수 없었다. 친구에게 죽고 싶다는 마지막 전화를 한 부인은 8살과 5살 아이의 두 손을 잡고 아이들이 그렇게도 살고 싶다던 고층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올라가 먼저 5살짜리 아이를 밑으로 떠밀었다.

"동생이 떨어져 죽은 걸 본 8살짜리 아이는 '엄마 저 살고 싶어요'라며 절규했지만 엄마는 그 아이도 밑으로 떨어뜨리고 등에 업은 아이와 함께 떨어져 죽었어요. 여러분, 이 사건이 일어난 게 노무현 대통령 집권 1년 전 일이에요. 이명박 대통령을 거쳐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던 박근혜정권이 됐지만 달라진 게 있나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격차는 더 커졌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도 더 커졌습니다."    

달동네 사람들이 부자정당에 투표를 많이 하는 게 사실이라며 손 교수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촛불집회에 나가지 않고 아무 말 안하는 것은 현 정권을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TV뉴스에서 데모하는 장면이 나오면 생각 없는 사람들은 'XX하네'라고 말합니다.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면 박근혜 대통령한테 도움이 돼요. 스웨덴은 대학학비가 없고 병원에 가면 병원비가 없어요. 취업이 안 되면 봉급의 80%를 국가에서 지급해줍니다. 한국에서는 선생님도, 부모님도 이런 사실을 안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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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교수의 강연회에 참석한 고등학생들 ⓒ 오문수


스웨덴 초등학교에서는 임단협 모의실습 공부까지 실시해

손 교수는 스웨덴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 참관수업을 갔을 때 얘기도 곁들였다. 담임선생님이 "여러분 오늘은 임금 및 단체협약(아래 임단협) 모의실습을 하겠습니다"며 수업을 하자 손교수가 담임선생님한테 "왜? 어린이들에게 이런 교육을 하세요?" 라고 이유를 물었다.

"이 반에 자본가의 아들은 아무도 없어요. 전부 노동자의 아들이고 이 아이들도 커서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임단협 공부를 시키는 겁니다."

임단협은 노사가 함께 협의해 임금을 협상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손 교수는 대학등록금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대학등록금을 반으로 줄이는 데 6조 원이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부자감세정책을 통해 세수를 엄청 줄였어요. 법인세, 상속세, 종합부동산세를 엄청 깎아주었습니다. 해마다 줄어든 세금이 20조에 달합니다."

"정말 철학이 있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면 한국사회가 확 달라질거에요"라고 말한 그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청중들이 해야 할 일을 제시했다. 스웨덴은 전국적으로 동아리 모임이 잘 조직되어 있다며, 책 한 권 읽고 발표하는 모임을 가질 것을 권했다. 스웨덴의 힘은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공부하며 공감대를 형성한 힘이라는 말을 하며 다음과 같은 말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정말 고통에 잠겨있는 시민을 위해서는 아주 쉬운 일부터 시작해야 해요. 여러분의 아들과  딸들이 오늘날 같이 우울한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도록 준비해주세요."

질의응답시간에는 한 고등학생의 질문에 많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한국에는 진정한 좌파가 없고 우파들끼리 싸우고 있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손석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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