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계속 해야죠,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인터뷰] 'RT국보법' 무죄 확정판결 난 박정근씨

등록 2014.08.28 18:36수정 2014.08.2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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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28일 오전 서초동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을 받은 박정근씨가 두팔을 벌리고 "끝났다"며 기뻐하고 있다. ⓒ 권우성


트위터(@seouldecadence)에 예고한 대로, 그는 양복을 차려입고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30도 가까운 날씨에 땀을 흘리면서도 웃옷을 벗지 않았다.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

이 한 마디를 자축하기 위해서였다.

북한의 대남선전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계정 글을 리트윗(RT), 북 체제를 찬양·고무했다는 혐의로 기소 당했던 박정근(27)씨가 마침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8일 오전에 열린 상고심에서 공소사실을 전부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했다.

판결 직후 서울시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40분 정도 인터뷰를 하는 내내 박정근씨의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 트위터, 전화로 '축하한다'는 연락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항소심 판결 때처럼 "싸우길 잘했다"고 말했다.

벌써 3년 전 일이다. 2011년 9월 21일 오전 10시, 당시 강동구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박씨가 막 문을 열었을 때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소속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그의 가게와 집을 8시간 동안 압수수색했다.

이듬해 1월 11일 검찰은 박씨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영장을 내어줬다. (관련 기사 : "북 관련 글 리트윗했다고 구속... 세계 최초") 박씨는 1월 31일 기소됐고, 2월 20일 보석금 1000만 원을 내고서야 풀려났다. (관련 기사 : '북 관련 글 RT' 구속 박정근씨, 보석 석방) 2012년 11월 21일 1심 재판부는 일부 혐의를 유죄로 판단,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22일 항소심 재판부는 전부 무죄로 봤고, 1년 뒤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했다. (관련 기사 : 'RT 국보법' 전부 무죄 박정근 "싸우길 잘했다")


"제가 고생을 하긴 했죠?"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는 "솔직히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는) 1년 내내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유무죄도 중요하지만 같은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친구들 때문이었다.

박씨는 "그 친구들 때문이라도 판결이 잘 나와야 했는데… 그래서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박정근'들이 조사를 받고, 그때마다 '박정근이랑 무슨 사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는 점이 제일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관련 기사 : 'RT만 해도 국보법 위반'... 제2의 박정근 더 있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는 "판결문을 봐야 알겠지만, 제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증거부족으로 입증이 안 되어서 무죄라는 것"이라며 언젠가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여전히 국보법이 존재하고, 자신이 구속된 걸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미 위축됐으니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과제라고 덧붙였다.

박정근씨는 조만간 계정을 옮기되, 트위터는 계속 할 생각이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며.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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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국보법 사건' 박정근씨 무죄 확정 북한 트위터 '우리민족끼리' 계정 글을 리트윗(RT) 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던 사진가 박정근씨에게 28일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을 받은 박정근씨가 대법원 부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 기자들을 만났다. ⓒ 권우성


"검사한테 '내가 왜 여기 있냐'고 물었다"

- 마침내 대법원 상고심까지 끝났다.
"어제 잠을 못 잤다. 2심에서 무죄가 나왔어도 대법원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솔직히 1년 내내 불안했다. 대법원 판결이 더 늦어졌으면 진짜로 머릿속이 하얗게 됐을 것 같은데 때맞춰 나왔다. 어머니랑 재판 뒤 통화했는데 '이제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라' 하셨다. 집에서도 보였나보다. 제가 예전과 다르게 무기력해서 마음에 걸리셨던 거다.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기뻐하신다."

-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게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인데, 평소처럼 우스갯소리하고 그 중 하나로 '우리민족끼리' 트윗을 RT한 거 아니었나. 이런 일로 구치소, 법정까지 갈 것이란 생각은 못 해봤을 텐데.
"전혀 생각 못했다. 대법원까지 갈 것이란 생각도 못했고. 막상 걸리니까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저는 정신없이 막 휩쓸려갔다. 처음 구속됐을 때는 너무 황당해서 검사한테 '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구속 안 되면 트위터할 것 아니냐'는 논리를 댔다."

- 처음 사건이 벌어진 날이….
"압수수색이 들어왔을 때다. 2011년 9월 21일 오전 10시에 가게(사진관) 문을 열었을 때엔 손님인 줄 알았다. 근데 경기청 보안수사대였다. 압수수색을 8시간 동안 했는데, 가게를 털어서 안 나오니까 집까지 했다. 집에 친구한테 빌린 북한 책 복사본과 한국 출판사에서 낸 <현대북한> <러시아혁명사> 몇 권만 있어서 경찰들도 '어? 가져갈 게 별로 없네' 이랬다. 북한 책은 웃기게 생겨서 빌려온 것이었고, 원래 북한대학원 교수 소유라고 들었다. 물론 북한에 관심이 없진 않았다. 저도 남한 사람이니까. 오타쿠(마니아를 일컫는 일본말)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웃음)"

- 일종의 풍자로 RT하지 않았나. 전체 맥락을 봐야 했을 텐데.
"타임라인의 구체적인 맥락이 다 있는 건데, 수사기관한테는 트위터 하나하나가 혐의더라. 그걸 수집하는 방법은 기존에 인터넷 게시판 글을 긁어모으는 방식이었고. 낡은 수사방식이었다. 또 여전히 그런 행태가 이어지고 있는데, A라는 사람이 북한의 <구국전선> 같은 사이트에서 글을 읽었다고 하자. 그 일로 조사를 받으면 수사기관이 변호사한테 '보세요, 이렇게 쉽게 뚫어서 볼 수 있다'고 알려준다.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인터넷 검열이란 게, 못 보게 막아놓고선 뚫렸을 때는 '이렇게 쉽게 뚫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게 웃긴 거죠."

- 1심 재판부는 일부 혐의를 유죄로 봤다. 항소심에서 '전부 무죄'로 바뀌긴 했지만.
"2심 때는 증거를 더 많이 제출했다. 사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때 판사에게 '제가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구속됐죠. 뭔가 탄핵 증거를, 북한을 싫어한다는 증거를 내야했는데. 너무 이상했다. '내가 북한이 싫고 말고를 왜 저 사람들이 판단해야하지?' 그래도 변호사님이 재판을 이끌어가려면 자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준비했는데, 법정이 개판이었다.(웃음) 웃긴 내용이나 김정일 합성한 이미지 등을 변호사들이 진지하게 증거로 제시하니까. 친구들이 웃어서 판사가 법정소란죄로 쫓아낸다고도 했다.

그런데 1심에선 트윗 500~600건 정도만 증거로 냈다. 결국 유죄가 나왔는데, 그로부터 얼마 뒤에 트위터에 전체 트윗을 내려 받을 수 있는 기능이 생겼다. 그때까지 제가 작성한 글이 7만여 건이었는데, 그걸 항소심 재판부에 다 냈다. 이런 지점에서도 수사기관이 남루한 방식으로 수사를 하는 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트위터로 일어난 일인데, 트위터로 볼 장 보는 게 맞잖아요? 그래서 항소심 때 트윗 7만여 건을 CD에 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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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받은 사진가 박정근 곧장 출근하기 위해 카메라 가방을 가져온 박정근씨가 밝은 표정으로 대법원 청사를 나오고 있다. ⓒ 권우성


"'북한 싫다' 입증해야 하는데... 존엄성 깎이는 기분"

- 최후변론 말할 때는 어땠나.
"2심 때 공판 검사가 '아들 데리고 현충원을 갔더니 나라 구한 분들이 많았는데 박정근씨는 그런 걸 생각하시는지' 이런 얘기를 하더라. 사실 변론을 길게 준비해갔는데 말문이 막혀서 제가 했던 말이 '굳이 정치범 취급을 받고 싶진 않은데 제가 이런(북한 관련) 말을 했다고 왜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고 가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데에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했다.

1심 때는 변론을 읽다가 멈췄다. 도저히 못 읽겠더라. 마음에 있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직접 쓴 글이었지만, 제가 남북관계를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최후 변론이니까 그런 얘기를 해야 하잖아요? 북한을 싫어한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있으니까. 그런데 저한테는 그걸 갖고 집을 다 뒤지고 트위터 글 다 본 다음에 입맛대로 짜 맞춰서 '넌 이런 사상을 갖고 있지?'라는 상황이 더 중요했다. 남한이 좋냐 북한이 좋냐를 떠나서 제 존엄성이 깎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 여러 힘든 시기를 거쳐서 오늘까지 왔는데, 그래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을 꼽는다면.
"(한숨 한 번 내쉰 다음) 항상 친구들이 도와줘서 덜 힘들긴 했는데… 1심 끝나고 나서 곧바로 친구들이 같은 일로 조사받고, 항상 수사기관에서 '박정근하고 무슨 사이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들었을 때 제일 고통스러웠다. 그때가 가장 괴로웠어요."

- 제2, 제3의 박정근뿐 아니라 박정근씨 사건을 이유로 난민 신청한 사람도 있었다.
"…(눈을 한 번 감은 다음) 사실 괘씸죄 때문에 구속됐다. 조사를 받고난 뒤에 더 많이 RT하고, 검찰을 욕하니까 도저히 박정근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구속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제가 구속된 다음에 친구들도 그렇고 사람들이 위축되더라.

그러면서 다른 사건들이 진행되고. '박정근 후원회'에서 파악한 피해자만 8명이다. 제가 무죄 나도 이 사람들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제가 계속 떠든 이유는, 그렇게 방치당하는 게 싫었다. 조사하고, 뒤지고, 검찰로 넘긴다는 데 아무 연락도 없고. 저는 그게 오히려 재판받는 일보다 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본다. (수사기관에서) 아무런 말이 없으니까 항상 불안하고. 이게 진짜 국가폭력이다."

- 항소심 판결 뒤에 통화할 때 '싸우길 잘했다'고 말했는데, 그 생각엔 변함없겠다.
"아무래도 그렇죠.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많이 했다. 상세히 말씀드릴 수야 없지만 플랜 A, B, C, D 다 있었다. 저는 당사자니까 되게 갈팡질팡했는데, 친구들이 '끝까지 가야한다'는 말을 항상 해줬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다. 국보법에 걸리면 정말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다는데."

- 판결 자체는 만족스러운가.
"음, 판결문을 봐야 알겠지만 (이전까지) '증거부족으로 입증이 안 되어서 무죄'라고 했다. 제가 잘못을 안 했다는 뜻이 아니라. 어쨌든 국보법이 있고, 트위터에서 북한 얘기를 하다가 구속된 사람이 있는 거다. 물론 다른 분들은 이 판결로 표현의 자유 범위가 더 넓어졌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민족끼리>를 RT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게 더 기억나죠. 이걸 RT한 일보다, 그걸로 누군가 구속당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미 위축되어버린 부분을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점이 한국의 과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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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전화 받는 박정근씨 대법원 부근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걸려온 지인들의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 권우성


"제가 무죄여도 사람들은 'RT로 구속'만 기억할 것"

- 증거부족으로 무죄라면, 다른 사례에선 유죄가 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는 뜻인가.
"그렇죠. 어쨌든 국보법 7조 찬양·고무는 재판부가 이적 목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쨌든 판단은 재판부에 달렸다. 나름대로 체계가 잡혀있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게 맞다. 제가 무죄를 받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제가 다시 <우리민족끼리>를 RT한다고 사람들이 바뀔까? 아닌 것 같다. '또 잡혀 간다'고 얘기를 하지, 바뀌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 한동안 사진도 잘 못 찍고, 일부러 술도 안 마셨다고 했는데, 일상생활은 어떤가.
"사진관은 재밌게 하고 있다. 저를 도와준 자립음악생산조합이랑 같이 충무로에 공연하고 사진도 찍는 공간을 만들었다. 항소심 끝나고 나서 최대한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했다. 술은 건강을 위해서 예전처럼 많이 마시지 않는다. 사람들이 얼굴 좋아졌다고 하더라. 이 일로 3년 동안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일상을 재밌게 보낼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좀 쉬기도 하고. 당장 하고 싶은 일은 '휴식'이다."

- 구속 등 관련해서 형사보상금 청구 문제는 어떻게 할 계획인지.
"이제 변호사님하고 상의해봐야죠. 그것까지 완료되어야 끝난다더라."

-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제가 고생을 하긴 했겠죠?(웃음) 변호사님이 '정근씨 한 사람이 구속되면, 아무리 인간관계가 안 좋아도 가족, 친지 등 최소 5명이 구속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런데 저는 트위터로 구속됐으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구속을 당했다고 생각했을까. 다수는 아니어도 몇 명은 그랬으리라 보니까 그분들한테 미안하고 고맙다."

- 트위터는 계속 할 건지. 아까 다른 사람이랑 통화할 때 '페이스북으로 넘어간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이거는 (휴대전화를 흔들며) 판결문 받고, 상황을 좀 살핀 뒤에 계정을 옮길까 생각 중이다. 뭐랄까, 트위터로 볼 장 다 봤잖아요? 다른 계정으로 옮긴다고 해서 제가 헛소리 안 할 것도 아니고(웃음)."
#박정근 #RT국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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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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