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선 이 할머니... 어버이연합과 다르다

[현장] 서울 관악구 주민들, '세월호 진상 규명' 촉구 현수막 325개 걸어

등록 2014.08.29 21:37수정 2014.08.29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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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이 말이 어려워. 그래서 그냥 '세월호 서명해주세요'라고 해."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테이블을 지키고 있던 서울 관악구 주민 황분녀(77) 할머니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 지역 노인들의 모임인 '은빛사랑' 소속인 황 할머니는 세월호 참사 이후 신림 9동에서 주민들의 서명을 꾸준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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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 주민 황분녀(77)할머니는 세월호 참사 이후 신림동에서 시민들에게 유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꾸준히 받고 있다. ⓒ 손지은


세월호 참사를 보고 "말도 못하게 속상했다"고 말하는 황 할머니는 인터뷰 중간에도 지나가는 이를 향해 서명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서명을 마친 시민들에게는 '손 잡아주는 이 없는 정치가 불신 불렀다'라는 문구가 박힌 지난 21일 자 <한겨레> 신문을 한 부씩 건넸다.

최근 들어 황 할머니 주변 노인들 사이에서도 유가족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는 사람이 늘었다. 서명에 동참한 이들에게 넉넉한 웃음을 짓던 할머니는 유가족을 폄훼하는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를 전할 때만큼은 심각한 얼굴로 바뀌었다. 

"거기에 속는 사람 많아. 나도 헷갈렸다니까. 그래서 더더욱 진실이 밝혀져야 돼."

인터뷰 내내 조근조근 작은 목소리로 말하던 황 할머니가 유일하게 힘주어 말하던 순간이었다. 할머니 옆에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서명해달라고 호소하는 입간판이 서 있었다. 입간판의 흰색 부분에 거뭇거뭇 때가 묻어있었다. 오늘이 참사 136일째라는 게 실감났다.

"세월호 진상규명 해달라"... 동네에서 40여 명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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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관악구 주민 40여 명은 남부순환로에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적은 현수막을 걸었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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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관악주민 40여 명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노란 현수막을 남부순환로에 걸었다. ⓒ 손지은


29일 오후 서울 신림역 2번 출구 근처에는 황분녀 할머니를 포함한 관악구 주민 40여 명이 모였다. 관악주민연대, 관악사회복지 등 시민단체와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이 모여 신림역부터 서울대입구역까지 4.16km에 달하는 거리에 노란색 현수막을 설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가로 60cm, 세로 120cm 남짓한 현수막은 시민들이 보내 준 돈으로 제작했다. 현수막에는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세월호 진실! 못 밝히시나요? 안 밝히시나요?' 등 저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바라는 메시지가 적혔다.

"100명을 목표로 했는데, 325명이 참여했어요. 이걸 다 어떻게 걸어야 하나 걱정했다니까요."

오늘 행사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다는 교사 유효진(46)씨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수사권, 기소권 보장 특별법이 두려운 자, 이 참사의 책임자임을 선언하는 것'이라는 문구로 현수막을 제작했다.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유씨는 학교에서 참사 소식을 들었다.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수업에 들어간 그는 오후 늦게야 그것이 오보임을 알았다. 눈앞에 있는 제자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는 소식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 광화문에서 서명도 받고, 동조 단식도 참여한 그는 지역 주민들과 동네에서 무언가를 해보자며 뜻을 모았다.

이날 참가자들은 7차선 도로를 따라 가로수와 가로등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현수막을 걸었다. 두세 명이 한 조가 되어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오르거나, 사다리를 타며 현수막을 매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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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관악구 주민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적은 현수막을 가로등과 가로수에 걸었다. ⓒ 손지은


노란 바탕에 검정색 고딕체 글씨는 멀리서도 선명했다. 퇴근길 버스에 몸을 실은 시민들은 창 넘어 현수막을 유심히 살폈다.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운 뒤 응원을 하고 떠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당원 이거산(29)씨는 자신의 키보다 곱절이나 긴 사다리를 타고 가로수에 올랐다. '유가족이 원하는 진실과 대책 없이는 노답'이라는 문구로 현수막을 제작한 그는 "지역에는 모르는 분이 많아 이렇게라도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이 무엇인지 알리고 싶었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오늘 밤늦게까지 해보고 안 되면 내일 마저 걸려고요."

검정색 티셔츠 곳곳에 하얀 먼지가 묻은 그는 서둘러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사다리에 올랐다.
#세월호 특별법 #세월호 참사 #관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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