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의혹' 제기하면 검찰 만나야 하나

[분석] 산케이신문과 박지원 수사의 공통점... "공포와 억압 의도 보여"

등록 2014.08.29 21:22수정 2014.08.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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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28일 박지원(72)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또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8)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기소가 임박한 상황이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서울중앙지검 형사부가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케이 사건은 형사1부(부장 정수봉)가 맡고 있고, 박지원 의원 사건은 형사1부와 형사4부(부장 이수형)가 동시에 관여하고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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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일본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란 제목의 기사를 실어 논란이 되고 있다. ⓒ 산케이신문


<산케이신문>은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낮 7시간 행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칼럼성 기사를 내보냈다가 타국에서 형사 소송에 휘말리게 됐다(관련기사 :  '박 대통령 행적 의혹 보도' 산케이 서울지국장 검찰 출석).

박지원 의원의 공소사실은 이영수 전 한나라당 청년위원장과 소위 '청와대 비선라인 만만회' 주인공들인 이재만(청와대 총무비서관)·박지만(EG 회장)·정윤회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 등 여러가지지만, 핵심은 박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다. 만만회로 언급되는 사람들이 모두 대통령의 친동생 등 대통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 명예훼손 사건도 사실상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볼 수 있다(관련기사 : '박 대통령 명예훼손'... 검찰, 박지원 불구속 기소).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에 싸인을 보내는 방식

주목할 점은 형법상 명예훼손은 친고죄는 아니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라는 사실이다. 청와대는 <산케이신문>에 기사가 나온 초기에는 민형사상 강력한 대처 의지를 피력했다가, 이후 실제 고소고발은 하지 않은 채 "제3자가 고발한 내용에 대해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박지원 의원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이 아직 당선되기 전인 2012년 4~5월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의 일을 고소한 사건이다. 즉, 고소한 이후 2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대통령이 된 뒤에 기소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뒤늦게 기소가 이루어진 데 대해 검찰은 "작년부터 여러 차례 박 의원에게 나오라고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곧 박 대통령이 유력 대통령 후보 시절에 표했던 고소 의지를 대통령 임기가 시작한 지 1년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철회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선거정국에서 이루어진 정치권의 고소고발은 승패가 결정되면 서로 취하하는 것이 보통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외국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직접 고소하지는 않지만 '예의주시'라는 태도를 유지하고, 반대 정파의 정치인에 대해서는 긴 기간동안 고소장을 취하하지 않아, 검찰에게 형사적 처벌 싸인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세 번째 공통점은 두 사건 모두 선별적으로 기소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산케이신문>에 문제의 기사가 나가기 보름 전에 이미 <조선일보>에 비슷한 내용의 칼럼( 7월 18일자 최보식 칼럼 '대통령을 둘러싼 風聞')이 보도됐다. 가토 지국장은 이 칼럼을 상당부분 인용했다. 하지만 현재 가토 지국장만 두 차례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았을 뿐 <조선일보> 칼럼도 형사처벌을 하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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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5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남소연


박지원 의원 건도 상황이 유사하다. 박 의원이 만만회 의혹을 제기한 전후를 살펴보면, 여권 원로 인사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박 의원 발언 직전 비슷한 내용을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또 비선 라인이 국정을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청와대 비서실장이면 하지 못하도록 역할을 하는 것이 비서실장의 역할입니다. 지금 사실 인사, 오늘 아침 박관용 전 국회의장께서도 단정적으로 인터뷰를 통해서 밝혔지만, 비선 라인이 하고 있다, 하는 것은 모든 언론과 국민들, 정치권에서 의혹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만만회'라는 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거예요."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2014년 6월 25일 <한수진의 SBS 전망대> 박지원 의원 발언)

"대통령은 많은 얘기를 들어야 하는 자리다. 여러 사람이 가져온 의견을 놓고 취사선택하고, 결단하는 자리다. 대통령의 자세에 대해 누군가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 7인회가 그런 역할을 못 하고 있나.
"7인회는 언론이 만든 용어일 뿐이다. 사실 아무 역할도 안 한다. 내부적으로 박 대통령이 가깝게 의논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을 말하나.
"구체적으로 말하긴 좀 그렇다. 공식 채널이 아닌 소규모 비선 라인을 통해 상당히 얘기를 많이 듣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역대 대통령 모두 장관이나 비서실장, 수석과는 별도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몇몇 사람들과 의논하는 경향이 있다. 비공식적인 의사결정은 대단히 위험하다." ( 2014년 6월 24일자 <중앙일보>의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인터뷰 내용)

상황이 이러함에도 검찰은 박 전 국회의장은 빼고 박 의원만 기소했다.

두 사건이 던지는 근본적 질문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고소고발이 들어왔느냐 안 왔느냐의 차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발언한 사람들 모두 처벌해야 하느냐"라고 말했다. 보수단체의 고발 대상이 박 의원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당장 새정치민주연합은 "고발 자체도 박지원 의원에게만 고발이 됐고, 비슷한 취지 발언을 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에 대해서는 고발도 이뤄지지 않았고, 검찰의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전광석화처럼 야당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재갈물리기의 다름 아니다"(박범계 대변인)고 반발하고 있다.

결국 두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 관련 의혹을 제기하려면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검찰을 상대할 각오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은 매우 드문 경우"라며 "지금 거의 유신시절 국가원수 모독죄 부활의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은 공인중에 공인이다, 공인에 대한 비판과 검증은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것이 우리의 판례"라며 "그것을 검찰이 모르지는 않을 테고, 결국 이 자체가 입을 묶는 냉각효과, 위축효과를 위해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영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처장은 "기소하는 쪽도 유죄나 무죄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누구든 대통령을 비판하면 이렇게 고소고발을 당할 수 있고, 수사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와 억압의 의도가 많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박지원 #산케이신문 #검찰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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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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