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글 썼다고 현직 교사 잡아가나"

[스팟인터뷰] 사전구속영장 청구된 서울 상도중학교 이민숙 교사

등록 2014.09.02 08:29수정 2014.09.0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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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도중학교 교사 이민숙(46)씨가 지난 5월 청와대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이민숙


주말을 앞둔 지난달 29일 퇴근길, 서울 상도중학교 2학년 4반 담임교사인 이민숙(46)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교조 법률지원팀 소속 변호사였다. 변호사는 "놀라지 말라"고 했다. 그는 경찰이 이씨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황한 이씨는 "청와대의 글을 썼다는 이유로 현직 교사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일이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했다.

이씨가 이날 밤 받은 사전구속영장 청구서에는 범죄의 중대성과 도주·증거인멸의 위험 등이 적시됐다. 경찰과 검찰이 말하는 이씨의 범죄는 그가 지난 5월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박근혜 정부에 세월호 침몰 사고와 무능한 대응에 대한 책임을 묻고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린 것이다. 검경은 이씨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구글의 지메일을 사용한 것을 두고 신원 확인에 지장을 야기했다며 도주·증거인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았다.

이씨는 오는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 이씨는 구속된다.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교사 선언에 참여한 200여 명의 교사 중 유일하게 이씨만 경찰의 표적이 된 이유는 뭘까?

경찰은 사전구속영장 청구서에서 이씨를 두고 "평소 전교조 내 강성투쟁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이른바 '법외노조' 관련 법원의 판결선고를 앞두고 전교조가 대응방향을 결정하던 와중에 투쟁을 선도하여 전교조 조직을 압박하면서 대정부 투쟁으로 유도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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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숙 교사 등 교사 43명은 지난 5월 13일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선언하는 글을 올렸다. ⓒ 청와대 자유게시판 화면 갈무리


"'선생님 우리 떠나는 거예요?'는 학생 말, 가슴 아파"

이씨는 1일 오후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경찰은 저를 전교조 투쟁의 배후조정자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제가 올린 박근혜 정권 퇴진 교사선언이 이후 반복되는 교사선언과 전교조의 반정부 투쟁 기류를 촉발시켰다고 보고 있다, 황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은 7월 30일 저를 조사하면서 전교조의 조직적인 논의를 거쳐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게 아니냐 식으로 몰아갔다"면서 "전교조 소속 교사와 전교조에 소속되지 않은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글을 올린 것을 두고 지침에 따라 올린 것으로 폄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과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제게 시간이 남아 직접 청와대 게시판에 제 이름으로 교사선언을 올린 것"이라면서 "제가 SNS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했고, 그후 교사들이 교사선언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교사선언을 한 절반의 교사는 SNS로 아는 사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청와대에 글을 올린 것을 두고, 현직 교사에게 범죄의 중대성을 운운하며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인가, 우리 사회가 그 정도로 후퇴했느냐"면서 "충분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면 된다, 민주적인 사회라고 한다면 폭력적인 방식이 아닌 의사표현에 대해 재갈을 물리면 안 된다"고 밝혔다.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이씨가 학생과 함께 하는 날은 2일이 마지막이다. 그는 "관련 기사를 본 학생들이 오늘 제게 조용히 와서, '선생님, 우리를 떠나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별거 아니라'고 답했지만 가슴이 아팠다"면서 "충격 받을 학생들이 걱정된다, 우리 사회의 수준을 학생들에게 보여준 것 같아 씁쓸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제가 한 일은 구속사유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가 구속되면, 청와대에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교사선언을 올린 게 현직 교사를 구속할 사안인가 하는 사회적 토론이 불붙을 것이다, 또한 세월호 침몰 사고를 두고 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는지 다시금 주목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청와대 게시판에 글 썼다고 사전구속영장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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