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에 가야 제 맛인 산, 강화도 마니산

강화도 남부 여행, 마니산 참성대와 정수사를 찾아가다

등록 2014.10.02 15:54수정 2014.10.0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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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은 개천절이다. 개천절에는 어디로 가야 할까? 내가 사는 대구에서 개천절에 갈만한 곳을 꼽는다면 두 곳이 있다. 우선 수성구 두산동 산13-7번지에 있는 단군성전이 제격이다. 오랫동안 선조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온 팔공산 비로봉 정상 천제단 자리도 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대구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다. 두산동 단군성전과 팔공산 천제단을 전국 최고의 개천절 답사지라고 강변할 수는 없다. 남한 내에 있는 최고의 단군 유적지는 어디일까? 북한을 제외하면 단연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이다.


남한 내 최고 단군 유적지, 마니산 참성단

개천절 당일에는 다녀오기 어려울 듯하여, 지난 9월 10일 마니산을 찾았다. 마니산 472m를 오르는 답사자들은 흔히 '마니산 국민관광지'에서 출발한다. 마니산 국민관광지는 화도면 면사무소가 있고, 이런저런 상가들이 번잡한 곳이다. '세계 춘화 박물관'이라는 야릇한 이름의 박물관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관광지 주차장 일대의 어수선한 풍경이 싫거나, 등산다운 등산을 즐기겠다면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관광지 쪽 등산로보다 산을 타는 쾌감을 몇 배 더 시원하게 맛볼 수 있는 정수사 옆 산길이다.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이 산길은 가파르고 험악해서 '한 말의 땀'을 요구한다. 반면 국민관광지 출발보다 왕복 시간은 오히려 덜 걸린다. '짧고 굵게' 등산을 즐길 길인 셈이다.

도로에서 정수사까지는 포장된 길이 이어진다. 포장되지 않은 황톳길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래도 아늑하고 고요한 산길이 계속된다. 그늘도 짙다. 정수사 진입로는 녹음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헤아리게 해준다. 땡볕이 뚜렷한 대낮에도 두려움 없이 걸을 수 있는 '자연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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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가는 산길에서 만나는 <해병 상륙 공작대> 비석. 북한에 특수 임무를 띠고 다녀온 이들이 세웠다. 특수 임무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 정만진


반쯤 오르던 중에 숲길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빗돌 하나를 만난다. "해병 북파 특수 임무 유공자회(1968.12.-1975.12.)"가 "강화 해병 전우회"의 "후원"을 받아 세운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북파 임무 유공자 해병 상륙 공작대> 빗돌이다. 큰 제목인 '해병 상륙 공작대'가 한자로 새겨져 있어 어린 학생들은 잘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빗돌을 세운 사람들의 '북파 특수 임무'가 무엇이었는지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이 빗돌이 왜 깊은 산중인 이곳에 세워졌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실미도> 영화를 본 답사자라면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북한에 파견된 군인들과 관련된 빗돌이 아닐까"하고 짐작할 뿐이다.

온통 바위로 된 등산로, 어디가 길?

정수사 왼쪽에 등산로 입구가 있다. 성인 1인당 2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산에 오르는 데 왜 입장료를 받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매표원에게 묻기도 뭣하다. 그에게 무슨 죄가 있나? 그래도 주차는 무료이니 그만 하면 양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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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가 온통 돌로 되어 있어 걷기도 힘이 들지만 초행자는 길을 찾을 수가 없는 정수사 뒤편 산길 ⓒ 정만진

주차를 한 다음 조금 올라가니 '정수사 500m'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그런데 문제는 능선에 이르는 두 등산로 모두가 육안으로 찾을 수 없는 길이라는 점이다. 흙길이 아닌 까닭이다. 온통 크고 작은 바위 사이사이로 찾아다니며 걸어야 하는 돌길인 탓에 사람의 발자국 흔적은 자취도 없다.

만약 등산화도 신지 않은 상태라면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실제로 올라보면 왼쪽 길이 훨씬 더 가파르다. 하지만 이 등산로를 처음 가는 사람이 그 사정을 예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왼쪽으로 접어든 사람은 가파른 돌길을 오르고 또 올라 능선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들어간 사람은 말안장처럼 푹 꺼진 능선의 네거리에 일단 닿았다가 다시 왼쪽으로 능선을 타게 된다. 오른쪽 길은 더 멀지만 상대적으로 왼쪽 길보다 평탄하다. 두 길이 다시 만나면 그때부터는 정상으로 가는 험악한 바위 능선으로 변한다.

가파른 바윗길을 일상적으로 오르고 내렸던 등산 애호가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도시 주변의 야산 정도를 다녀본 게 전부인 사람은 이제 약간 겁을 먹는다. 본래 산은 위로 올라갈수록 오랜 비바람에 씻겨 흙이 없어지고 바위들만 남는 법이다. 하지만 능선 자체가 이렇게 나무도 없이 거대한 바위들로만 이루어진 산은 보기 드물다. 국민관광지의 안내판에도 정수사 쪽 등산로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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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턱밑의 험악한 등산로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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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표시가 없어도 저절로 몸이 사려지는 정수사 쪽 등산로 ⓒ 정만진


'위험' 입간판이 서 있다. 하지만 거의 쓸모가 없다. 위험 경고판이 없더라도 모두들 조심조심 걸을 수밖에 없는 좌우 절벽길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왼쪽도 천 길 벼랑이고, 서울 방향인 오른쪽도 아찔한 낭떠러지다. 저절로 발바닥에 힘이 들어간다. 지나가는 하산 일행 중 한 사람이 "1년 등산 오늘 다했다, 이렇게 험한 능선은 내 생전 처음 본다!"하고 고함을 지른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 웃음기가 넘쳐 우리는 잠깐 유쾌해진다. 문득 온몸의 피로가 풀려나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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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정상부로 오르면서 내려다 보는 풍경. 아직 안개가 덜 가신 탓에 시야가 흐리다. ⓒ 정만진


마니산 참성단
마니산 정상에 있으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린 제단이라고 전해온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했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과 숙종 26년(1700)에도 고쳐 쌓았다. 여러 번 고쳐서 쌓았기 때문에 최초의 모습은 찾아보기는 어렵다. 제단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단(下壇)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단(上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경주의 첨성대와 비슷하다.

고려와 조선왕조는 때때로 이곳에서 도교식 제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을 단군시대의 종교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에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大倧敎)가 생기고 난 이후에는 민족의 성지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강화군청 홈페이지의 설명을 잠깐 보자.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 제천행사가 거행되며, 전국체전의 성화는 이곳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붙이고 있다.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단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국가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던 만큼 제전(祭田)이 지급된 것은 물론이다. 고려 원종은 참성단의 의례를 직접 주재하기도 하였다. (강화군청 홈페이지 설명)

이제 이 글의 주제로 돌아가야겠다. 10월 3일에 오를 전국 최고의 등산지는 마니산 참성대라는 제안에 충실한 글을 써야겠다. 평범한 날에 마니산을 오르는 것도 괜찮지만, 10월 3일에 마니산 참성대에 오르면 위의 사진과 같은 광경들을 볼 수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닌가? 마니산 참성대, 시간이 허락한다면 10월 3일에 오르는 것이 금상첨화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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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정상 참성단 개천절 제사 의식 장면(마니산국민관광지 안내판 사진 재촬영). 이 사진을 보아도 왜 마니산 참성단은 10월 3일에 올라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 마니산국민관광지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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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참성단(위의 두 사진)과 10월 3일 개천 행사 광경(아래의 두 사진)을 보여주는 이 네 장의 사진은 강화군청 홈페이지 게시물이다. 이들 네 장의 사진들 역시 마니산은 10월 3일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각각 두 장의 사진들이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는 말이다. 아래의 두 장과 같은 광경을 본 뒤라야 진정으로 "마니산에 갔다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강화군청


사실 10월 3일의 마니산 정상부 아닌 곳에서는 위와 같은 눈요기가 차려지지 않는다. 물론 강화군청 홈페이지는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단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고려 시대에 국가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런들 어떤가? 우리가 문화유산 답사여행을 다니는 것이 꼭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위의 사진들을 글 속에 실었다. 평범한 참성대가 아니라 10월 3일의 참성대를 보자는 뜻이다. 어찌 산만 볼 것인가? 서울, 인천, 경기 거주자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마니산과 너무 멀리 떨어져 사는 탓에 10월 3일 참성대를 찾기는 어렵다. 사정이 필자와 비슷한 분들은 '그림의 떡'인 위의 사진들을 감상하시라. 

639년 건립 고찰 정수사를 잠깐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보물 161호 법당이 있는 정수사를 잠깐 둘러본다. 강화군청 홈페이지와 현지 안내판에 따르면 이 절은 639년(선덕여왕 8)에 세워졌으며, 창건스님은 회정선사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찰들이 원효나 의상을 창건주로 모시는 데 견줄 때 오히려 현실적인 설명이다.

"앞쪽 창호의 가운데 문은 어여쁜 꽃병에 연꽃과 모란을 꽂은 모습의 화려한 조각을 새겨 뛰어난 솜씨를 엿보게 한다. 이 창살문의 창호 조각은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법당 안내판의 설명을 눈여겨 본다. 이 법당이 보물로 지정된 근거를 헤아릴 수 있게 해주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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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 정만진


정수사의 처음 이름은 정수사(淨修寺)였다. 그 이후 세월이 한참 흘러 조선 세종 때에 함허대사가 중건했다. 이때 건물 서쪽에서 맑은 물이 솟아났다. 그래서 절명을 정수사(淨水寺)로 고쳤다. 하지만 지금 어디서 그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안내문이 없다. 괜히 서운하다.

아쉬움을 달래며 전등사로 향한다. 전등사는 정수사 주차장과 국민관광지 주차장의 중간쯤인 길상면 온수리 635번지에 있다. 이제 전등사만 둘러보면 강화도 남부의 주요 역사유적지를 모두 둘러보게 된다. 그러나 온종일 강화도 전역을 돌아다닌 끝이라 지금은 어느덧 저녁놀이 몰려올 기세다. 등이 켜지기 전에 전등사에 닿아야 할 텐데. 몸보다 마음이 더 급한 나그네가 되어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니산 #참성대 #전등사 #정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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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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